영화를 보러 갔다. 

쳇,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영하는 관도 몇 개 없고, 시간도 하루에 달랑 세 타임. 로봇영화에 밀려 이렇게 좋은 영화가 이런 대접을 받다니.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영화관 불꺼지고 광고가 끝나갈 즈음 떼거지로 들어 온 아줌마 부대. 내가 앉은 줄 뒷자리 한 줄을 다 차지하고 앉아서 쉴새없이 떠든다. 과자도 바스락거리며 먹는다. 

소곤거리지도 않는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럴거면 커피숍을 가지 왜 영화를 보러 왔을까. 뒤를 노려봤다. 살짝 조용해진다.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소곤거린다. 기침을 했다.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잠깐 있다가 또 소곤거린다. 심지어 앞을 발로 찬다. 내가 앉은 자리를. 열 받아서 한 마디 하려다가 이 영화.. 언제 내릴지 모르고, 시간대도 지금 못 보면 밤 12시꺼 밖에 없기에 참는다. 그래, 소곤거려라.. 이 매너없는 사람들..ㅠㅠ 

영화가 한창 달려갈 때 즈음.. 내 옆자리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보통의 반응은 놀라서 끄지 않나.. 폴더를 열고 누구한테 왔는지 한참을 보다가 그 자리에서 받는다. "지금 전화 받기 힘들어서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다 들린다.   

웃기게도 뒤에서 전화벨 소리 난 아주머니를 욕한다. 시끄럽다고.. 당신들이 더 시끄럽거든.. 그래도 벨소리는 한 번이지만, 당신들은 계속이야.. 

속으로 비웃어주고 영화를 보는데.. 이번엔 뒤에서 아줌마 한 명 큰 소리로 "이거 줄까. 이거 먹어" 란다. 그렇게 자꾸 먹으니까 자꾸 화장실을 가지.. 하필 난 통로 쪽에 앉아서 뒤에 아줌마들 영화 보는 내내 화장실 가는 거 의식해야 했다. 젠장 

내가 본 영화는 음모자였다. 

재판 과정에서 메리 서랏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분개하다가도 뒤, 옆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니 영화에 몰입하다가도 산만해지고 짜증이 나고, 짜증난다고 뒤를 쳐다봐도 그 때 뿐이고 날 더러 어쩌라고.. 다시 보기 힘든 영화인데 말이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냥 나가든지, 아니면 자든지...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안 줘야 될 거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은 20명도 채 안 됐다. 이렇게 사람 없는데 그렇게 시끄러웠다니.. 재수에 옴 붙었구나.. 라고 나를 원망했다.  

 

 

영화 끝나고 폰을 확인하니 아빠한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걸었다.  

엄마, 아빠는 싸우면 왜 나한테 화풀이 하시는걸까... 어제의 다정한 아빠도 상냥한 엄마도 오늘은 아니다. 싸운 건 두 분인데 왜 나한테 심한 말을 할까.. 그러려니.. 화풀이 할 때라도 있어야 화가 풀리지 싶어 아무 말 없이 듣는게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동네북이 되어 있다. 오늘은.. 안 그래도 화가 났는데 그래서인지 눈물이 났다. 눈물 참는다고 힘들었다. 남들은 영화가 슬펐던가..하는 눈으로 나를 흘깃거렸다. 가던 길 가세요...라고 버럭 하고 싶었지만, 남한테 화풀이 해서 뭐하랴.. 

난, 절대, 내 아이에게 화풀이 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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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7-1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화풀이 들어주셨군요.
영화관에서 떠드는,이라고 말하려다가 저도 친구랑 얘기하고 웃고 그런 적 있는지라..ㅠ
음모자, 괜찮다고 하던데 감상을 망치는 분위기였군요. 에효 아쉬워라.

꼬마요정 2011-07-11 21:41   좋아요 0 | URL
원래는 엄마만 저한테 화풀이 하셨는데 올해 들어서는 아빠까지 저한테 화풀이 하시네요... 평소에는 그러려니..하고 흘리는데, 오늘은 좀 많이 상처받았어요ㅠㅠ

웃고 떠드는 영화나 액션 영화 같은 건 중간 중간 웃기고 감탄사 나오고 해서 괜찮은데, 오늘 이 영화는.. 엄청 심각했거든요. 대사도 음미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좀 그랬어요..ㅠㅠ 아.. 역시 오늘은 별로 별로 별로인 날이에요ㅡ.ㅜ

반딧불,, 2011-07-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그런 날이 있어요. 화라도 내주지 그랬어요, 그랬음 지금쯤 나았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마지막 단락은 저도 그런 적이 많아요ㅠㅠ;; 참 어이없게도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참는데..하는 말도 안되는 타자화가 되기도 해서 더욱 슬픈 적도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부모에겐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화가 났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적 있으니깐요. 상담받다가 대신 화를 내다가 그것만으로도 화가 풀리는 것에 놀라기도 했죠.
어차피 꼬마요정님이 아니니 같을 순 없겠지만 그냥 위로하고 싶어요. 비가 그만왔으면 좋겠습니다..저도 오늘 내내 좋은 영화들 다 내려서 정작 보고픈 영화 못 보는 것.
내내 컨디션 안좋아서 보니 지난 주에 반드시 보고 싶었던 영화가 끝나 있다는 것이 화가 났답니다. 정작 풀어야하는 것은 안하고 거의 오년 만에 파마를 했다죠ㅠㅠ

꼬마요정 2011-07-11 21:43   좋아요 0 | URL
비 오는 날에 파마 하셨어요? ^^ 하긴 요즘은 비 와도 상관없다고 하긴 하던데요.. 여기 부산은 비는 한 방울도 안 오고 무지 더웠답니다. 습도도 높고 햇빛도 장난 아니게 부시고..

위로 감사해요.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털었더니 훨씬 기분이 좋아요. 오늘은 좀 많이 상처 받았거든요.. 흑.. 벼르고 벼르던 음모자 본 건 다행이에요. 어찌됐든 다 봤으니까요. 해리포터 개봉하면 이 영화 흔적도 없어질 것 같아요..ㅠㅠ

반딧불,, 2011-07-11 21:49   좋아요 0 | URL
에효.그러게 말입니다. 트3 그닥인데 말입니다. 리뷰도 안적고 싶을 정도로..아주 악평을 마구마구 해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데 말이죵ㅎㅎ
비는 거의 안내렸스요. 잠깐 내리던 때는 머리 말고 있었구요.

괜찮아요. 그런 날도 있는거고 실은 그렇게 해서 풀린다면 얼마나 다행이에요? 요사이 다시 ..뭐 어때?..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서 더욱 그렇답니다. 님도 헤르미온느모드 유지하시고요. 더 털어놔도 된답니다. 어때요 뭐.

꼬마요정 2011-07-11 21: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뭐 어때.. 정신이 필요해요.. 어떻게든 되겠지.. 정신도 필요하구요!! 다시 정신 재무장 해야죠.. 흠흠..

음모자 정말 괜찮은 영화였어요.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지금 리뷰 썼다가는 엄마, 아빠 험담만 할 거 같아서 감정 정리 하고 내일쯤 리뷰 쓰려구요.. 다시 조용하게 보고 싶어요..ㅋ

블루데이지 2011-07-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속 상한 날이셨군요^^ 꼬마요정님께 빨리 오늘이 가고 신나는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요~~

꼬마요정 2011-07-12 12: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ㅋ 큰 컵으로 커피 마시고 잤더니 오늘은 상쾌하네요..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요~^*^

마노아 2011-07-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인데 감상의 맥이 풀려버렸네요. 아쉬워요. 전 예전에 워낭소리 보러갔을 때 딱 그랬어요. 엄청 떠들고 전화 오면 다 받고... 사람들이 이상해요..;;;
전 오늘 수영장에서 물도 들입다 마시고 오리발 하는 날이었는데 돌아가면서 얼굴 맞고 머리 맞고 걷어차이고, 이렇게 몰빵으로 맞는 건 처음이어서 마가 끼었나 했어요. 마지막에 얼굴 직빵으로 맞았을 때 물까지 같이 들이켜서 막 울고 싶어지더라구요. 오늘 하루를 잘 털어내자고요...

꼬마요정 2011-07-12 12:28   좋아요 0 | URL
탈!탈!탈!
이제 다음날이에요. 오늘은 행복한 하루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노아님, 우리 함께 행복해지자구요~~^^

비연 2011-07-1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안좋은 일이 몰려드는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내일은 오늘보더 더 좋은 날이 올테니 편히 주무세요 꼬마요정님~

꼬마요정 2011-07-12 12: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문 사진 귀엽네요. 나 아직 안 죽었어! 보니까 더 힘차게 살아야겠어요~~^^ 비연님두 파이팅!!^*^

페크pek0501 2011-07-1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방문함... 기분 망치셨겠어요. 이해가 되네요. 좋은 일 뒤엔 안 좋은 일이, 안 좋은 일 뒤엔 좋은 일이 오는 법이니 기분 푸시기 바랍니다.^^

저는 영화를 가족과 같이 보거나 혼자 보는 편이라 안 떠들어요. ㅋ
친구들과 뭐하러 영화를 보러 가나요? 그 시간에 차라리 수다를 떨겠어요. 대화란 필요한 것. 소통이 되죠.
영화는 역시 혼자 조용히 감상하는 게 제일!!!
'음모자'는 못 봤고, '써니'는 봤는데요... 재밌었어요. 강추함!!!!!!!!

꼬마요정 2011-07-13 14:0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pek0501님~^^
이제 기분 많이 좋아졌어요. 많은 님들께서 위로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음모자 정말 재미나요~ 꼭 보세요~~^*^
써니는 아직 못 봤는데 다들 재밌다고 하네요, 것두 보러 가야겠어요~ㅋ

영화관에서 안 떠드신다니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