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60대 여자 암살자. 소재가 너무 멋졌다. 책 초반에 나오는, 헬스장에 가면 트레이너가 이 연세에 이런 근육 어쩌고 저쩌고, 고객님(혹은 어머님) 연세의 다른 분들은 근육이 없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안 간다고 하는 부분에서 울컥했다.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으니 그 때 60대 여자들은 자신의 근육을 만들 기회가 있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조각'처럼 그런 직업을 갖지 않는 한 말이다. 반복되는 집안일이나 직장에서 하는 반복되는 노동, 출퇴근길에 하는 저강도 걷기는 근육을 키우는 데는 효과가 없다고 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젊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고 단백질을 먹어주고 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게 근육이니, 정말 흔하지 않았겠지.
냉장고에 덩그러니 들어있는 갈변한 채 뭉크러진 복숭아에서 시작됐다는 이 이야기는 생생하던 시절의 색을 잃고 탱탱한 속살은 질퍽거리게 되어도 신선의 과일이라는 복숭아는 그 의미를 잃지 않았다. 아무리 반짝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빛을 잃게 되듯이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서 젊음을 유지하는 건 없다. 하지만 젊지 않다고 하여, 빛나지 않는다고 하여 생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켜켜이 쌓은 시간이 한 인간의 감성을 피어나게 했다. 생명을 앗아가면서 사랑과 같은 감정을 가지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언제나 감춰야만 했던 감정의 파편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강박사의 모습에서 과거의 류를 발견한 것일까.
어수선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조각은 과거의 자신이 한 일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투우의 존재는 어쩌면 조각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게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보내야 했던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조각과 함께하는 무용은 행복했을 것이다. 활자들 사이에서 그 잔잔한 행복이 느껴졌다. 영화 <존 윅>의 시작은 개의 죽음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 좋았고 따뜻했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작을지라도 따스한 온기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의 기억, 약속,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