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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밤 여행자 1 ㅣ 밤 여행자 1
자오시즈 지음, 이현아 옮김 / 달다 / 2022년 10월
평점 :
세상에는 인종이나 나라를 초월하는 인연 혹은 사랑이 있다. 그리고 시간대를 초월하는 사랑도 있다.1930년에 지어진 699번지 아파트는 곡선형 빌딩으로 총 7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중심부에 있지만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조용했고 한 세기 동안 전쟁과 변화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p.31/433) 이 699번지 아파트는 기묘하지만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는 곳이었다. 2015년에 쭝잉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1937년에 성칭랑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1937년 7월 11일, 밤 10시 성칭랑이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현관 등이 꺼졌다. 2015년 7월 11일, 밤 10시 쭝잉이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현관 등이 깜박거렸다. 한 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단 하나, 현관 등. 이 등은 1937년 상하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성칭랑을 2015년의 상하이로 데려왔다. 37년 당시 일본은 만주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해 전쟁 중이었고, 상하이는 조계가 있는 지역조차 전쟁 위험이 감지되던 때였다. 성칭랑은 성씨 가문의 공장을 중국 내륙으로 옮기고자 노력했고, 한 번도 가문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곧은 성격과 책임감으로 일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여전히 가족들은 성칭랑을 믿지 못했고, 오로지 여동생인 성칭후이만 우호적이었다.
2015년 7월 쭝잉은 의사였으나,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수술을 하지 못했기에 법의관이 되었다. 쭝잉의 부모님은 모두 신시제약의 임원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쭝잉의 어머니는 쭝잉의 생일에 사망했고, 2015년 현재 쭝잉의 이복동생과 신시제약의 임원인 싱쉐이(새어머니의 동생)가 터널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 이 사건은 상하이를 흔들었고, 쭝잉의 사진이 신문에 날 정도였다. 신시제약과 선을 긋고 있던 그녀로서는 난감했으나, 이 사건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이야기는 1937년과 2015년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1937년 상하이 전투가 끔찍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2015년에는 쭝잉의 개인적 건강 문제와 집안 문제가 날실과 씨실이 얽힌 마냥 진행되고 있었다. 밤 10시,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은 성칭랑이었고 그와 닿아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같이 시간을 이동했다. 덕분에 쭝잉은 수차례 1937년의 상하이를 방문했고, 성칭랑의 가족들을 만났다. 뜻하지 않게 성칭랑의 형 성칭샹의 다리 절단 수술에 관여했고, 모르는 이의 출산을 도왔으며,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맡기까지 했다. 그렇게 조용하지만 단호했던 그녀는 성칭랑의 세상에서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남겼다.
성칭랑 역시 자신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의 영역에서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쭝잉에게 의지가 되어 주기도 하고, 자신이 위안을 받기도 했다. 터널 사고와 관련하여 쭝잉의 어머니 사건까지 성칭랑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선후관계 및 우선순위를 정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에 비하면 다른 사건들은 작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일본은 베이징에서 텐진을 거쳐 수도인 난징으로 가는 대신, 바다를 통해 바로 상하이를 거쳐 난징으로 가려고 했다. 일본은 국제연맹도 탈퇴했겠다, 상하이가 외국인 조계 지역임에도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폭격을 시도했고, 끝끝내 상하이를 함락한 뒤 난징으로 가 대학살을 감행했다. 그 석 달 가량의 기간이 성칭랑과 쭝잉의 시간이었다. 둘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서로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주고 힘을 보태주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으니, 그 아슬아슬한 감정 상태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한 발만 내딛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쭝잉의 동료이자 친구인 쉐쉬안칭이 성칭랑을 의심하여 그를 푸둥 공항에 내려주게 된다. 그 날은 상하이 전투에서 황푸강 우안에 있는 적군을 위협하기 위해 중국 제8 집단군이 푸둥 수비에 나선지 이틀 뒤였다. 복숭아 맛이 나는 입맞춤 뒤 헤어진 두 사람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쭝 선생 시대의 아파트는 내부가 거의 다 바뀌었고, 이 현관 등 하나만 남아 있더군요."
성칭랑이 한 손으로 신문과 우유병을 든 채로 현관 등을 보면서 말했다.
"저 등이 나의 길을 비추고 쭝 선생의 길도 비춰주니 귀한 인연이네요."
성칭랑이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74/433) - P74
거리 끝에서 서서히 해가 밝아오는 모습은 백 년을 이어온 이곳의 풍경이었다.(30/433)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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