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노볼 드라이브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평점 :
동그란 원 속에 아기자기한 집이 있고, 흔들면 반짝이는 눈이 날리는 스노볼을 안다. 영원히 썩지 않고 변치 않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는 살아있는 것은 없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런 세상을 향해 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아이들이 어디 한 둘일까. 나조차도 어린 시절, 시험 전날이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일이 있는 날 전날이면 내일 지구가 멸망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진심이라기보다는 닥쳐올 일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었지만. 막상 그 일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물론 결과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모루는 그런 생각을 한 것을 두고 두고 후회했다. 모루가 그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녹지 않고, 썩지 않고, 사람의 살을 태우는 듯한 그 눈은 어린 모루 같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저지른 일의 결과일 것이니까.
어느 날 스노볼 속의 눈처럼 녹지 않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살갗에 닿은 그 눈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세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제 더 이상 지구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가 팬데믹으로 고통 받았던 것처럼, 여기서는 녹지 않는 눈 때문에 고통 받았다.
이 눈을 처리하는 건 소각 뿐이었고, 백영시는 거대한 소각장이 되었다. 그리고 눈을 빙자한 각종 폐기물, 시체, 오물 등이 이 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필품은 높은 가격에 희귀한 물품이 되었고, 과일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모루는 백영중학교에서 이월을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날, 이미 엄마를 잃은 모루는 이모의 실종과 마주하게 된다. 트럭을 몰면서 온갖 것을 운송하는 이모는 차를 내버려둔 채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모를 찾고자 하는 모루의 싸움에, 부모의 무관심에 지치고 악세서리 취급 받는 삶에 지친 이월이 끼어든다. 가깝고도 먼 그들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각자의 고통과 외로움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될까?
이월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게 살았으나 정신적으로는 공허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한 반려견 하루를 잃고 그 상실을 감당하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았다. 아버지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새엄마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월은 텅 비어버린 채 시간을 보냈고, 녹지 않는 눈과 박제된 개는 살아있지 않아 슬펐다.
그냥 평범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슬프고 아프고 고통받고 외로운 아이들이 가득하고 그 아이들이 몸만 자라 어른이 된 채 살아가면서 자신 같은 아이들을 계속 만들어내는데, 재난이 덮친 세상에서는 어떨까. 어떤 세상이든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당장 힘들어도 옆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덕에 세상은 완전히 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녹지 않은 채 닿으면 고통을 주는 그 눈이 계속해서 세상을 뒤덮더라도 인간을 구하는 건 인간일지도. 어차피 상처 받는 세상,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 버리며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모루의 이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