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빛나는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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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영화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제목을 가진 노래는 좋아한다. 김윤아 님의 유리가면 앨범 첫 곡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노래가 생각났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현대인은 누구나 불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나도 내 동생도 내 남편도 모두 말이다. 그 불안의 정도도 개개인마다 다 다르고, 그 불안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의 여진과 규환 역시 각자의 불안을 안고 그 불안을 어쩌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결혼은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을 법이나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사회적 규약이다. 그 제도는 그 사회가 '허락'하는 사람들을 가정의 테두리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 '허락'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사회의 문제라고 하는 저출생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결혼 안에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고, 이제는 '가정'  혹은 '생활 공동체'의 범위를 재조정해야 할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는 저출생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진과 규현은 서울에 진입하고 싶어했던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수도권인 경기도의 어느 신축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했다. 여진은 자신은 아직 여기지만 자신의 배에 있는 아기는 서울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래를 꿈꾼다. 규환은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것을 여전히 실감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아직 아기가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여진이 산부인과를 다녀오거나 입덧을 하면서 배 안에 생명이 있음을 느낄 때마다 자신도 아기를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도 그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거라며 애써 자신을 다독인다. 


무엇이 문제일까. 여진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때문일까? 아직 태몽을 꾸지 않아 아기가 떠날까 무서운 걸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대출을 갚으며 어떻게든 아이의 앞날이 잘 되었으면 하고, 자신의 가정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여진이 규환보다 먼저 그 '푸른 벌레'인 ***를 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푸른 곰팡이 같은 그것은 건드리니 하늘로 날아올라 흩어졌다. 그 뒤로 여진은 그 푸른 벌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불안에서 시작된 집착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규환을 보면서 더 커진다. 푸른 벌레를 눈으로 보지 못한 규환은 대출 5.5억이 걸린 이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여진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규환은 하루종일 일터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임신한 아내인 여진을 다독여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왜 결혼을 했을까? 일하고 돌아와 오롯이 혼자 회복하는 시간을 버리고서 말이다. 그는 아내인 여진에게 이사할 때 있을 카페, 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경로 등을 세세히 알려 줄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매우 불편해한다. 그래서 자신이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을 믿기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해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의 성격을 넘지 못하고, 경제적인 압박이 주는 불안을 이기지 못한다. 무엇이 먼저일까? 심리적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부부관계가 먼저일까, 대출로 쌓아올린 신혼집에 대한 압박이 먼저일까? 그렇게 둘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에 사로잡힌다. 결혼, 막대한 대출 금액, 임신까지 불안은 중첩해서 쌓여가고 둘의 영혼을 조금씩 잠식하며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구멍을 낸다.


그게 푸른 벌레의 정체일지도 모르겠다. 자기를 좀 먹고 영혼을 잠식하여 마침내는 멍울진 마음까지 부서지게 만드는 그 두려움. 


두 번째 단편인 <우물> 역시 불안이 숨어있다. 사회에서 유리(遊離)되어 소외된 이들의 불안 말이다. 그 불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로 잠재우지만 시한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마침내 살인마저 가능하게 하니, 인간답게 살고 싶어 액취증을, 비염을, 암을 고치고자 했으나 결국 무엇을 위함인지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첫 번째 단편은 <열린 문>이다. 짧지만 강렬하다. 어린 두 남매는 늘 바쁜 엄마에게 소외되어 있다. 엄마 역시 아이들과 단절된 상태이다. 아빠는 집을 나갔다. 그런 남매에게 유일한 낙은 인터넷 게임이었으나,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통의 부재는 아이들이 감당하기는 버겁지 않은가? 그래서 문을 열고 '덫'에 걸린 도둑을 잡고자 하지만 그들이 만난 것은... 그렇다, 아이들이 감당하기는 너무 힘겹고 벅찬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매혹적인 걸지도. 공포를 이기는 것은 호기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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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21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ngst Essen Seele Auf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는 봤습니다!
파스빈더 감독이 만든 !ㅎㅎ

한 때 영화狂 이여서 이런류 영화 무진장 섭렵했었거든요 ㅎㅎ

우리 일상 속 불안을 담은 이 작품

읽고 나면 섬뜻함이 엄습 할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22-12-21 19:27   좋아요 2 | URL
스콧님은 정말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셨네요!! 체력과 열정이 정말 부럽습니다^^
전 이 책 읽으면서 요즘 20, 30대 초반 젊은이들이 많이 불안하겠다 싶더라구요. 아마 우리는 모두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세대와 급격한 경제 발전, 불안한 정치 상황, 경기 침체 등을 함께 겪어냈기에 불안하지 않으면 이상한 게 아닐까 싶네요. 차곡 차곡 종류별로 불안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22-12-23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따뜻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예요.
따뜻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꼬마요정 2022-12-24 12:09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ㅎㅎ
날이 너무 춥습니다. 따뜻한 거 많이 드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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