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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미친 장난감? 이 제목에서 말하는 장난감은 무엇일까? 세상일까? 실비오가 만든, 혹은 설계한 대포나 기계 등일까? 아니면 돈을 숭배하고 노동을 천대하며 놀이를 멸시하는 세상을 미친 장난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실비오가 열 네살 때 그는 도적 문학을 좋아했다. 멋진 의적이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나눠주는. 어쩌면 실비오는 그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자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계급 혹은 돈 자체에 종속되어 그 생산수단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의적을 꿈 꿨고, 시궁창 같은 현실이 아닌 것을 꿈 꿨다. 똑똑하지만 가난했던 실비오는 책을 사서 보지 못하고 빌려 봐야 했고, 실용과학기술에 능했으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고급 일자리에는 가지 못하고 단순 노동을 하는 일자리에서는 해고 당했다.
'동굴'로 표현되는 첫 일자리는 암울했다. 책을 좋아하는 실비오는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그 곳은 책을 책으로 보지 않는 곳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고, 서점 주인인 가에타노 씨는 인격마저 돈에 팔아먹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구역질 나는 하느님'인 미겔은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일을 한다. 어쩌면 그 모습은 실비오가 도달할 미래의 모습인 것일까?
도서관에서는 책을 훔치고, 서점에는 불을 지른다. 방화에 실패하지만, 실비오는 그 서점에서 해방되었다. 실직, 부당한 해고 등은 실비오를 좌절하게 만들고, 급기야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만, 다행히 불발된 권총이 그를 살렸다. 그리고 그는 종이를 파는 영업사원이 된다. 시장통에서 영업을 하며 실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느끼고 절망한다. 그리고 알게 된 '절름발이' 사기꾼에 도둑인 그는 실비오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게 되고...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 또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파멸로 몰아가야 할 때도 있고요.... 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p.262)
유다의 죄를 지었으나 그것이 선한 일이기도 한 모순 속에서 실비오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삶이었다. 짓지도 않은 죄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것, 죄를 지었으나 그것이 죄가 아니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삶은 그러한 것이라는 깨달음 말이다. 실비오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숱한 고통과 우울이 그를 덮치더라도 삶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 또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파멸로 몰아가야 할 때도 있고요.... 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 - P262
난 절대 미치지 않았어요. 진실은 존재해요. 그렇죠... 내게 인생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울 거예요. 그게 바로 진실이에요.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기쁨이, 기쁨으로 가득 찬 일종의 무의식이 있다고요.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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