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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ㅣ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평점 :
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심너울 작가의 이야기들은 모두 훌륭했다. 그런데 왜 별을 네 개만 줬을까. 아마 마지막에 읽었던 <최고의 가축>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별을 줬을 때의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래서 읽고 빠른 시간 내에 리뷰를 써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어쨌든 요즘 읽는 책마다 정말 좋으면 별 다섯, 정말 마음에 안 들면 별 셋, 마음에 들면 별 넷을 주는데, 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대부분이 별 넷이니까.
첫 번째 이야기인 <정적>은 정말 좋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미처 몰랐던 것,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알려줬다. 어느 날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는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거다. 김보영 작가의 <다섯 번째 감각>도 생각났는데, 사람들은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서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이 곳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리는데, 이 곳에서만 들리지 않는거다. 말을 할 때도 진동은 느껴지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이 일대에 있는 사람들이 듣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리는 있지만 들을 수 없는거다. 학교는 휴교를 했고,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까페도 문을 닫아 '나'는 정처없이 걷다가 한 까페를 발견한다. 필담으로 주문을 하던 게 익숙해져 '나'는 핸드폰에 원하는 메뉴를 적어 건냈고 까페 주인은 수화를 했다. 알고보니 이 까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단체가 세운 비영리 수화 까페였다. '나'는 이 곳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알게 되고, 수화를 배우게 된다. 듣지 못하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자유로웠다. 이명도 들리지 않고, TV에서는 자막을 늘 제공했으며, 인공달팽이관을 건드리는 사람도, 장애인 편의 시설을 없애라고 시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가 돌아왔다. TV 자막은 사라졌고, 사람들도 돌아왔다. P씨의 이명도 돌아왔다. 그래도... 까페는 남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난 부산에 살기에 경기도민의 애환을 알지 못한다. 내가 부산 끝에서 부산 끝으로 갈 일은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양산에 사는 친구를 자주 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산 사는 친구가 부산까지 매번 오기도, 내가 양산으로 매번 가기도, 번갈아 왔다갔다 하기도 참 번거로우니까. 물론, 친구에게 귀여운 자녀가 셋 또는 둘 있다는 게 함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절친한 친구가 일산에 책방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인테리어도 돕고 구경도 할 겸 일산을 방문했다. 하루를 친구와 함께 술 마시고 놀다가 다음날 집에 가려고 백마역으로 가려는데, 친구가 '나'를 말렸다. 왜? '나'는 백마역에서 타고 한남역에서 내리면 될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하고 연장을 챙겨준다는 친구를 뒤로 한 채 승강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은 무슨 저주가 내렸는지 살아있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기차가 연착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 지하철역에 붙박이 정념이 된 듯한 그들을 보고 당황하고 있는데, 유명 웹툰 작가를 만나게 된다. 4년째 풀컬러 전일 연재라는 기적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업 비결은 바로... 이 곳이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오지 않는 곳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차를 기다리며 작업을 하니 연재가 밀리지 않는 거였다. 기자가 직업인 '나'는 작가인 성하리의 도움으로 겨우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고, 경의중앙선에 대해 알린다. 코레일은 배차 시간을 줄여준다기보다 스크린도어에 시가 아닌 단편소설을 적어 넣겠다고 공모전을 하는 이상한 짓을 하긴 했지만 경의중앙선에 열차를 하나씩 더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성하리 작가가 6년 만에 하루 휴재를 예고했다. 출, 퇴근 시간에 극악한 대중교통의 실태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놔서 즐겁게 읽었다. 과연 즐겁게 읽어도 되는 걸까 싶지만.
세 번째 이야기는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이다. 금요일은 설레는 요일이다. 아무리 짧다지만 주말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일이니까. 그래서일까, 근추동 행정복지센터 말단 주무관 김현은 금요일에 잠들면 금요일에 의식을 차린다. 아니, 일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이해가 가는데 금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좀 잔인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김현은 이야기 한다. 어차피 평일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숨 쉬는 게 고통이며, 노동으로 자아 개발 이런 건 다 헛소리라고. 의식론 연구소의 주니어 연구원 윤희랑은 피실험자들이 의식 없이 6일을 살게 되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이상한 민원과 화풀이에 스트레스 지수는 엽기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실험의 부작용에 동의했으며 어떻게 보면 썩은 동앗줄일지라도 구원일지도 모른다고 완벽하게 자기합리화를 이뤄낸다. 힘들 때 다른 대안이나 해결책이 있으면 좋을텐데 우리 사회는 그런 안전장치가 너무 없다. 세상엔 즐겁고 신나는 일들도 분명 있는데 그런 일을 즐길 만한 감정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네 번째 이야기는 <신화의 해방자>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잔인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용순'이가 너무 기특해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정말 인간은 너무 잔인하다. 마법공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한 소현은 셀트린 연구소에 취직했다. 그 곳에서는 용아세포를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켜 쥐의 등에 이식해서 6개월 후에 성장한 조직을 채취했다. 물론 모든 조직이 원하는 상품성을 지닌 조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품성 없는 조직을 가진 쥐들은 그냥 폐기 처분 됐다. 끊임없이 쥐에게 세포를 이식하고, 끊임없이 쥐들을 잡아 죽이고... 소현은 그 곳에서 등에 있는 조직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선별하는 일을 했다. 소현은 동물을 좋아했기에 죽일 쥐를 선별해서 죽이는 일은 너무 무참했다. 하지만 취준생으로 2년을 살았던 소현은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텼다. 그나마 윤리 규정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런 윤리 규정은 피실험체를 위한 게 아니라 실험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내던 소현은 기숙사에 돌아와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흰 쥐가 튀어나온 걸 보고 기겁한다. 용아세포가 이식되어 마력을 가진 흰 쥐는 보라색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이동을 할 줄 아는 이 쥐는 소현을 간택한 거였다. 소현은 그 쥐에게 용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길렀다. 과연 둘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셀트린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둘까. 소현은 자신도 살고 용순이도 살리기 위해 용순이를 풀어 줄 계획을 세우지만 용의 마력을 내뿜는 용순이를 풀어주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소현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 갈까. 모든 것을 버려야 바라는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죽음에서 생명이 태어나리니.
마지막 이야기는 <최고의 가축>이다. 용이라는 신화적 존재조차도 가축으로 길들여버린 인간의 놀라운 재능이라니.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이스켄데룬은 생각한 것일까. 죽더라도 자유를 찾겠다는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 인간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조롱 섞인 숭배를 받아들인 이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봐야할까. 애초에 아이발리크와의 싸움에서 한 쪽 날개를 잃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깊은 잠에 들었다가 과학 기술로 무장한 인간 세상에서 눈을 뜬다. 용아 세포를 제공하고 얻은 안락함은 좋았지만 자유를 원했던 이스켄데룬은 또 다시 날개를 잃고 만다. 합의된 계약 관계에 그들이 바치는 조공과 숭배에 만족하자고 길들여진, 인간이 길들인 가장 위대한 존재인 이스켄데룬은 언젠가 힘을 되찾아 자유를 향해 힘차게 날개짓 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도 그렇게 자유를 찾아 갈 수 있을까, 용순이와 소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