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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산 ㅣ 누벨바그 4
곽재식 외 지음 / 아르띠잔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여전히 부산에서 살고 있다. 어릴 때는 남포동 근처에서 살았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바다를 접했다. 지금은 매립된 동삼동 어느 곳에서 저 멀리 커다란 배가 떠 있는 것을 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서 놀기를 즐겼다. 발가락으로 담치(홍합)를 따고 놀았고, 높은 바위에서 물 위로 뛰어 내리며 아빠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마, 어린 시절 힘든 일이 많았어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란 건 저 넓은 바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산 너머 보던 풍경>은 내가 좋아하는 곽재식 작가님의 글로 '나'의 첫사랑 이야기다.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을 그 아련한 첫사랑 말이다. '나'는 남몰래 태희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친구인 교진이가 태희와 사귄다는 거다. 아니, 나는 좋아한다는 티라도 날까봐 눈도 못 맞췄는데, 교진이는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사귀게 된 거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할 기회는 딱 한 번이라는(p.19) 그냥 흘려들을 국어 선생님의 말에 사로잡혀 '나'는 태희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학교 뒷산을 오르게 된 '나'는 정상까지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저 넓은 바다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자경을 만난다. 국어 선생님의 말은 정말 딱 맞았다. 불 같이 타오르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젖어드는 감정도 사랑이다. 산 정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햇살에 반짝이며 눈부시고, 바다 절벽은 마치 하늘에 걸친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어떨까? 가까이에서 본 바다는 여전히 눈부시고 절벽은 더 거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평범한 신도시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환상 속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김설아 찾기>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했으나 대학에 가고 각자 자리를 잡으며 멀어진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세상 변치 않을 것 같은 우정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무색해지기도 한다. 흑역사들이 가득한 싸이월드가 사라지니 마니 할 때, 우연히 접속한 그 곳에 김설아가 단 내용 없는 댓글이 있었다.
자신이 놓아버린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다. '해란'은 이제 자신이 설아를 찾기로 한다. 소중한 줄 몰랐던 소중한 친구. 먼저 손 내밀어 줬으니 그 손을 잡아야 하니까. 그런데 어떻게? 핸드폰 번호도, 사는 곳도 아무 것도 모른다. 동창들에게 물어 물어 우연히 부산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봤다는 증언을 확보, 해란은 '인싸'인 부영과 함께 부산에서 설아를 찾기로 한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인연이 닿는다면 찾아지지 않을까. 서로의 마음이 있다면. 누구는 부산에서 누구는 서울에서. 한 편의 로맨스만큼 아름다운 우정 드라마 한 편 본 기분이다.
<포옹>은 좀 슬펐다. 5년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접게 된 마지막 날, 운명처럼 나타난 남자, 형우는 오늘 광안대교에서 뛰어내릴 것이라 말한다. 한강보다 넓은 곳에 뛰어내리고 싶다는 그는 우연히 들어 온 또 다른 남자, 선균과 가게 주인 덕분에 산다. 셋이 나눈 온기는 생의 의지를 지펴주었을까? 나도 며칠 전 온 선배의 전화를 받았더라면, 선배는 그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광안대교에서 보는 바다는 새카만 하늘과 닿아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으스러진 채로라도 미래의 어느 밤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기묘한 느낌이 형우를 삶으로 당겨온 건지도 모르겠다. 추운 밤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고 온 사람은 둘의 온기와 열기로 살아남았으나, 외면하고 간 사람은 얼어죽었다던 우화가 생각난다. 사람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불면의 집>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을 잘 보여준다. 돈이 성공의 잣대이고, 비싼 집에 살면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에 안착한 것 같은 요즘, 해운대의 금빛 찬란한 아파트는 부와 성공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곳에 산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혹은 마음 붙일 곳을 못 찾은 듯 남자는 자신을 잃어간다. 그리고 밤마다 쥐가 무언가를 갉는 소리를 듣는다. <아메리칸 사이코>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자,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걸까. 해질 무렵 바다를 바라보면 뛰어내리고 싶어진다는데, 그래서일까. 우울증과 불안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잔인한 곳이다, 그 곳은.
<떠나는 시간의 음>은 버리지 못한 아버지의 카세트 오디오와 불행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적도 있던 가족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전쟁을 겪은 부모님을 둔 IMF 때 가장이던 사람들이 다들 겪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의 기억과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억, 독재의 기억, 국가 부도의 기억, 촛불 혁명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다 함께 어우러진 신기한 곳이다. 어찌보면 다 이해해 줄 것도 같지만, 또 어찌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을만큼 반목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때 피난처였던 부산에서 가진 것 없이 비석촌에서 겨우 살던 아빠 김중근은 가난이 싫어 가수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갔지만, 가수가 아닌 노동자가 되고, 택시 운전자가 되고, IMF를 맞아 사업에 실패하고 그렇게 카세트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십여 년을 보낸다.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 준 '고래'라는 지인을 만나 세상 속으로 나온 아빠는 '고래'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되는 듯 하다. 아빠의 장지가 부산인 탓에 부산까지 다녀 온 엄마와 나는 '김중근'과의 기억을 따라 그를 추억하게 된다.
<흔들리다>는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이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어묵 가게 알바를 하는 영석은 안타깝다. 건설노동자인 아버지가 임금을 떼여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고, 어머니는 추락하는 아버지에게 깔려 병원에 누워 있다. 영석은 학교를 그만두고 알바를 하며 이모와 함께 사는데, 친구들과 낚시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읽다보니 찰스 디킨스가 생각나는데, 그래도 디킨스네 아이들보다는 영석이 더 튼튼하고 돌봐주는 사람도, 살아갈 능력도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엄마를 둔 동철과 은행원 아버지와 교사 엄마를 둔 민수 역시 각자의 아픔이 있다. 이 세상은 안 아프면 망하기라도 하는지 이렇게 어린 애들도 아프고, 다 큰 어른들도 아프고, 하여간 다 아프다.
그래도 영석에게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고,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시간이 흘러 낚시터의 그 우정이 색을 잃고 옅어진다 하더라도 그 기억으로 추억으로 미래를 살아가면 좋겠다.
<오월의 여행>은 사실 공감 가지 않았다. 삶이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고, 더 이상 설레는 것도 없고 단조롭다면 운동을 하는 건 어떨까요? 요가도 좋고 주짓수도 좋아요. 아니면 글을 쓰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책을 읽는 건? <보바리 부인>을 읽어봐요. 권태 때문에 바람이 났다가 삶이 사라졌는데. 아니면 맛집 여행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다면 이혼을 하고 오는 건 어떨지... 불륜 여행지로 매년 부산을 가는 건, 부산이 아무리 설레는 여행지고 낭만이 있다해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매년 늘어나는 유혹적인 신발에게도 못할 짓이 아닐까?
책을 덮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떠올랐다. 참 크고 예쁜 곳이었는데... 내가 긍정적인 데는 바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넓은 학교를 다녀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개나리와 지랄 분수와 닭둘기가 있던 그 곳. 지금도 있을라나...
친하게 지내면서 어울리고 자꾸 만나고 하면서 살살 이쪽으로 끌어당겨서 나한테 빠져들게 해서 좋아하게 만들어야 기회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거절당한 관계 같으면 그 후로는 그냥 사심 없이 친하게 지내면서 어울리기도 어려워지겠지요? 사실 아무 상대한테나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무례한 일이기도 하고 같이 지내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는 딱 한 번뿐인 겁니다. 평생에 단 한 번, 내가 한평생 못 잊고 좋아할 가장 살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는 백 년을 살던, 이백 년을 살던 처음 딱 한 번 뿐이란 말입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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