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많이 왔다. 밤새 내린 비는 반짝거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풀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거나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 위로 지나다니는 생명들이 비치면서 말이다. 난 비 온 뒤 그 반짝임이 좋다. 그리고 깨끗한 물내음도 좋다. 내 마음도 비가 한 번 씻어주면 좋겠다 싶다.
2. 아무 생각 없는 한 주를 보내려고 했다. 월요일 밤, 11년을 함께 했던 반려냥 누롱이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그 조그만 몸에 그렇게 커다란 종양이라니. 그 고약한 놈은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명을 파 먹었고, 순하던 녀석은 뭐가 그리 급한지 총총 가 버렸다. 남은 냥이들을 돌보면서도 비어 있는 누롱이의 밥그릇을 보면 눈물이 난다. 이제 이 밥그릇은 채워지지 않겠지. 또 다른 인연이 생기지 않는다면. 숫자로 치면 고작 1일 뿐인데, 집 전체가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누롱이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크고, 한 동안 물기 가득한 순간들을 보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바래질지언정 잊혀지지는 않을 추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3. 억수같이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비가 거리를 씻어주는 것처럼 내 마음의 슬픔도 씻겨가게 해 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슬픈 건 그만큼 사랑했다는 거니까, 그 사랑했던 마음까지 가져가 버릴까봐 그냥 이 슬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있는 모든 건 죽는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돌아온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거자필반... 덧없다 여기면서도 사무치게 아프다.
4. 마음이 아파서 집어든 책을 아무렇게나 펼쳤더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얻는 것과 잃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병이 되는가?'
얻는 것이 없다면 잃는 것도 없을테니 병도 없겠지. 또한 얻고 잃음에 초연할 수 있다면 병 또한 없겠지. 하지만 함께 해서 기뻤고, 헤어져서 슬픈 것을 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이런 구절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집착이든 욕망이든 어떤 이름을 붙이던 상관없이 난 충분히 슬퍼하고 싶을 뿐. 슬플 땐 슬퍼해야지. 슬프니까.
얻으면 좋고 잃으면 슬프다... 그 또한 당연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