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사이,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애써 정돈하려는 삶 가운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상)> -  

내게 스웨덴 소설은 너무나 낯선데, 기껏해야 헤닝만켈의 [한여름의 살인]이라는 장르소설을 읽었을 뿐이다. (지젝이 헤닝만켈에 대해 언급한 글을 보고 좀 어이가 없긴 했다. 오늘날의 가장 위대한 범죄소설 작가라고? 시차를 이용하는 유일한 예술가라는 말을 보며 ... '가장 위대한', '유일한' 등을 이렇게 자신있게 붙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어깃장...)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의 기자였다고 한다. SF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박식함으로 '스칸디나비아 SF소설협회'의 수장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스웨덴 사회당의 활동가였다고도 하고.  

이 [밀레니엄]이라는 대작을 내놓고 얼마 안돼 삶을 마감했다고(2004) 하니, '노후보장'으로 썼던 소설이 보장은 커녕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한 힘든 노역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안타깝군. 

[밀레니엄]은 몇달 전에 주목해뒀던 책인데 부담스럽긴 했다. 이번에 완결편이 나온 것을 계기로 사들여 야금야금 읽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어제밤은 불면의 밤이었다. 그래서 지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하고, 다시 좀 누웠다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소설을 통해 한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스웨덴에 대해 무지하구나, 일면적인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스티그 라르손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의 열광적인 팬이라는데 [밀레니엄]의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이 삐삐의 20대 느와르 버전인 듯 하다. 어둡고, 고독하며, 숙명적이다, 게다가 자기만의 윤리를 실행한다. 아주 아주 흥미롭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문득 다시 떠오른다. 한국영화에서 금자씨 캐릭터가 나오기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이라거나 매력을 많이 느낄 수 없었는데, [밀레니엄] 소설 속의 이 여자 캐릭터... 흠, 생각해볼 일이다.    

이미지 썸네일

그렇다. 며칠 사이, 아주 미세하고도 미묘한 어긋남들이 발생했다.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고, 또 다시 결정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다. 화요일부터는 휴가다. 벌써부터 지친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못되다보니 외려 이런 며칠간의 휴식기간이 부담스럽다. 해야할 일이, 해주길 바라며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  

"결과를 분석하라" - 리스베트 살란데르 

발생할 결과를 생각하란다.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 그렇긴 한데..., 내가 그다지 생각을 잘 하는 사람은 못되는 편인데... .

   

  

 

 

 

p.s.  

이렇게 분량이 많은 소설은 역시 부담스럽다. 관성처럼 밀어부쳐 끝을 본 다음은 늘 허무감 같은 게 들기 마련이니까. 3부가 형편없진 않지만, 힘이 떨어진다.  

리스베트가 부상당함으로써 맥없이 있어야 하는 상황은 결코 환영할 수 없다. 이 느와르 삐삐 아가씨가 말이다.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면서 리스베트를 위한 연합군(사포의 공식채널까지 포함한)과 프레드릭 클린턴이 지휘하는 '살라첸코'팀 간의 치열한 작전이 더 맞붙었어야 하는데, 느슨하고 좀 착하다.   미카엘은 또 어쩜 그리 태평스러워졌지? 갑작스런 에리카의 이야긴 뭐고?  

북유럽의 복지국가 정도로만 알고 있던 스웨덴 또한 쉽지 않은 정치적 역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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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에 동네서점에서 레이 브레드리의 [화씨451]을 구입했다. 동네서점이라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도 몇 권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는데, 예상대로 같은 작가의 신작 [민들레와인]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턱 기대누워 들고 읽은 책은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름다움을 훔치다]였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건데, 그 동안 손도 못댔다고 생각해 손이라도 일단 대보자라는 심정으로 집어들었다가 의외로 빠져들었다.  

 

 

 

 

 

 

  

p.s. 참, 딱히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소설이다. 영화의 레퍼런스를 찾자면 글쎄,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 같기도 하고, <쏘우>나 <향수> 같은 류의 잔혹 공포의 세계 얘기 같기도 하고, 세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나', 뱅자맹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야기이자, 또 다른 '나' 마틸드가 뱅자맹이 들려주는 기괴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과정이며, 그가 사라지지 않고, 그침없이 이야기를 해주길 갈망하는 아라비안 나이트이기도 하다. 또한 마틸드가 직접 그 이야기의 끝, 세계의 끝에서 회생해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탐하여 취하는 것이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하고도 아찔한 절대적 아름다움의 위험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늙어간다는 것이 거느리는 그 모든 불안과 공포와 슬픔으로 어쩔 줄 모르는 제롬 슈타이너, 주름 사이사이에서 콤펙트 가루가 떨어지는 얼굴로 철학책 읽어주는 여자 프란체스카, 허락되지 않은 욕망을 간직한 난쟁이 하인 레몽. 청춘시절에 이미 청춘이지 못했던 '나' 뱅자맹. 명석함과 아름다움을 지녔건만 그 많은 걸 소비하는 엘렌. 스물여섯에 세상과 단절을 선택한 마틸드.이들이 이 소설을 이루는 인간군상이다.  

'아름다움의 건초장' 

 

그래도 소설의 대부분이 '나' 뱅자맹이 하는 얘기로 이뤄지는 것이니, 뱅자맹이라는 인물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한없는 열등감을 지닌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비참한 화자를 만나본지가 언제인지.... . 

에세이 [순진함의 유혹]을 쓴 것이 1994년이고, 이 소설이 97년에 나왔으니 '제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나쁜 짓 하는 인간'에 대한 인물을 형상화 하고 싶었던 것일까.  

[순수함의 유혹]은 어떤 책일지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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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행정이 작동되는 속내를 쬐끔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대통령직속기관으로서 중앙인사위원회와 행정부 간의 힘 겨루기는 백미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좀 안됐지만. MB 들어와서 중앙인사위원회는 행정부의 인사실로 흡수됐다. 

'자개명패'를 없애고 담백한 플라스틱 명패를 고집했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비권위적 모습과 합리성을 나타내주는 것이었으리라. 애써 운전도 직접하고자 했던 것은 직을 그만두더라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퇴임한 고위 관료가 탄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그 퇴임관료가 가고자 하는 층수를 누르지도 않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으니까. 

읽는 내내 딱히 집어내기 힘든 이질감이 계속 있었다. 국민들의 '하향평준화'를 염려하고 안타까워하고, 자율형사립고가 (당시에는) 계속 무산되는 것을 보며'새롭고 특출한 것은 하려하지 않는다'고 평한다. 이른바 '프레임의 사유'를 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정도 분이. 뭐 어쨌든 ...   

 

  

 

 

 

 

저자 김광웅은 2008년 잡지 <시사IN>의 대표이사이자 발행인으로 선출돼, 1년여를 맡았고 올 초에 표완수 대표에게 바톤을 넘겼다. 김광웅 교수는 학계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원제가 [The New Prince]인데 [신군주론]으로 한국판 제목을 정한 것은 센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상황은 다르지만 십분 참고할만하다.  

딕모리스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중도적 노선을 취하게 한 것으로 꽤나 인상적인 정치 컨설턴트로 기록되는 듯 하다. 그런 맥락에서 클린턴 참모들 중 급진적 성향의 제임스 카빌(정치 컨설턴트라는 그 사람인듯 하다), 로버트 라이시('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동부 장관직을 사임했다는 그 사람, 라이시는 자신의 저서 [부유한 노예(원제 : The Future of Success)]의 '들어가는 말'에다 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있다.), 스탠리 그린버그(이 사람 역시 컨설턴트, 일종의 전략가인 듯 하다.) 등은 자신들이 구상하고 선택한 이슈들에 대중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꼬는 듯했다.  

"[레미제라블]에서 (주요인물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전선에서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기다렸지만 그들이 기다리던 적은 결코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은 격." 

멋진 비유로 느껴졌다.  

두 권의 책 때문에,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과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금요일 퇴근길에 직원들과 간단하게 한잔 한 후 폭우가 들이치는 데도 서점에 들렀다. 술 기운이었는지 무건운 책들을 싸들고 쇼를 좀 했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는 작년에 반 정도 읽고 꽂아뒀었다. 2007년에 저술된 책인데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나열하는 수준이어서 다소 지루했기 때문이었는데, 다시 들쳐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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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책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악의]는 유명 소설가의 죽음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과연 그 소설가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형사 가가는 사건을 풀어가면서 갖게 되는 의문으로 그 소설가 '캐릭터'가 범인이 말하는 것과 이질감을 지닌다는 점을 간파하면서 범인의 진짜 '동기'를 찾아가게 된다.   

 

 

 

 

 

 

 

책이나 그림, 또는 저작물 등이 사건의 주요 모티프로 나오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자면,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긴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그렇고, 최근에 읽은 장-자크 피슈테르의 [표절](최근엔 [편집된 죽음]으로 재출간된 것으로 안다.)  .  

 

 

 

 

 

 

 

생각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임병석'이 지닌 그 참혹한 열망과 열등감이 준 인상도 빠트릴 수 없겠다. '생각이 가물가물'하다는 건 영화에서 임병석을 어떻게 풀었는지에 대한 거다. 최민수가 연기했었는데 ... .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선에 실린 [삭제의 복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걸작선에 실린 [진위의 숲]은 책이 아니라 일본 고미술과 관련된 일종의 복수드라마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세이초의 걸작 단편선(상)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역시 결말 부분에 대한 아쉬움과 또 한편으로는 그런 결말이 오히려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 사이에서 딱 부러진 선택을 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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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폭풍처럼 다가왔다. 

늘 그렇듯이 이 유명한 작가를 접하기까지 또 한참을 늦어서 지난 2월에야 처음으로 [백야행]을 읽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게이고의 책들. 지금까지 읽어왔던 순서대로 대충 정리해보면.  

  

 

 

 

 

 

 

 

 

 

 

 

 

 

  

 

 

 

 

 


 

  

 

 

 

 

       

       

 

 

 

 

  

 

  

 

 

 

 

  

 

 

아직까지 어느 한 작품 실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어느 책에선가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게이고의 원형질에 속하는 것들로 과거의 어두운 기억, 출신이나 가족에서 비롯된 것들, 과거로부터,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 유형,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점 등을 지적했다. 대체로 정확한 듯하다.  

[악의]는 끝까지 냉정한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게이고의 소설의 특색 중 하나는 어떤 이는 신파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반전이 찡한 사연을 드러내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점이라고 할만 하다. 게이고의 작품들이 영화화나 드라마로 많이 제작된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게이고 자신이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했다 하니. 소설, TV, 영화가 얼마나 다른 매체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악의]는 뒷부분이 조금 불만스럽긴 했다. 왜 그런 방식을 택했을까.  

그나저나 가가 형사 시리즈가 나왔다는데, 얼마 전에 내한한 '레이디 가가'의 이름에 어찌나 반했던지. 레이디 가가~ 이름 참 멋져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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