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읽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사놓은 줄도 몰랐던 책, 민음사 황병하역의 [셰익스피어의 기억]에 수록된 단편이다.
어느날 음울함이 새어나오는 사람의 방문을 받는다. 음울함이 새어나오는 그 사람은 주인공에게 '성스러운 책'을 사라고 권한다. 페이지를 가늠할 수도 없고, 방금 읽은 대목이 다시 찾을 때는 사라져버린, 무한한 시간이 담긴 책. 주인공은 성경과 몇푼의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산다. 주인공은 점점 책의 수인이 되어가고, 주인공은 그 책이 자신을 갇히게 하고 현실을 손상시키고 썩게 만드는 악몽의 물체라는 걸 느낀다. 그는 나뭇잎을 숨기기 위한 가장 적합한 장소가 숲이듯이 자신이 일했던 국립도서관에 그 책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곳에 버린다.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
새삼스레[셰익스피어의 기억]이 생각난 건 셰익스피어 때문.
지젝이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언급한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때문에 다시 셰익스피어에 급해졌다.
정확히는 랄프 파인즈가 연출한 영국 영화 <코리올라누스>(2011)인데, 원작이 기원전 5세기 로마의 전설상의 영웅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를 다룬다면, 랄프 파인즈와 극작가 존 로건은 코리올라누스의 지정학적 좌표를 바꿨다고 한다. 영화를 못봐서, 햐, 구하기 힘드네...., 로마는 위기와 부패에 빠진 현대의 식민지 도시국가이고 가이우스 마르키우스가 로마의 장군으로서 파괴시킨 적국 볼스키인Volscian은 불량국가 정도의 좌파 게릴라 반군으로 설정된다고 한다. 이 지정학적 구도속에 랄프 파인즈는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코리올라누스를 급진적인 좌파 영웅으로 재정립시켰다고 지젝은 분석한다.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고, 어쨌든 원작에서는 볼스키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쟁영웅으로 돌아온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를 로마인들은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내려주며 집정관으로 추대하는데, 집정관 추대과정에서 그를 시기한 호민관 시시니우스와 브루투스는 코리올라누스의 반민중적 오만함을 증거해보임으로써 그를 모욕하고 코리올라누스는 로마를 떠나 얼마전까지 자신의 적이었던 볼스키인으로 들어가 적장 아우피디우스에게 자신은 로마와 싸우겠다고 그의 군에 합류한다.
코리올라누스는 정치적 맥락도, 세에 대한 이해도, 분석도 전략도 갖지 않는 그저 장군이다.
평민과 평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호민관 사이의 암암리에 진행되는 불온한 기운과 그에 굴복하지 않는 오만한 코리올라누스, 어느쪽이든 해석하기 만만치 않다.
지젝은 코리올라누스를 '신체없는 기관'이라고 한다. '두 호민관이 대표하는 평민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룸펜 프롤레타리아 폭도, 국가가 먹여살리는 군중이다'(페이지 221)고 정의한다. 코리올라누스가 적대하는 평민(대중)은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진짜 평민(대중)을 찾는다면 차라리 볼스키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없는 기관'으로서 고정된 계급 동맹의식이 없어 억압받는 자를 위해서도 선뜻 일할 수 있'(페이지 222)으며 따라서 코리올라누스는 '급진적인 자유의 전사'(223) 초상이 된다. 지젝이 덧붙인 말은 바로 코리올라누스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우리가 처한 곤경을 정확히 주시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곤경을 지적해주는 또 하나의 지표로 최근의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소시오패스적 인물들의 매력이다.
지젝은 이시대의 '진정한 혁명가'로서 '충분히 반사회적'인 소시오패스적 인물을 기대한다.
지젝은 아담 코츠코에 기대 소시오패스적 유형으로서 책략가, 야심가, 집행자의 유형을 가진 진정한 혁명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가의 모습이라고 결론짓는다.
"대의를 위해 인생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 창의적으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의 행동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껴 희생적인 마조히즘의 모든 흔적을 털어 내는 사람"(226페이지).
과거의 혁명가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점, "순수한 기쁨, 천진난만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점. 누가 이런 사람 모르시나요?
박근혜 정권을 맞는 우리의 곤경과 지젝이 갈구하는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싱크로율을 가질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지젝이 던진 화두를 가지고 별로 영리하지 못한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리올라누스로부터 시작해 '천진난만한 기쁨'을 발산하는 소시오패스적 혁명가까지 멀리 전개해나가는 지젝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발랄하다. 우선은 영화를 좀 봐야할텐데, 설마... 이 영화, 지젝은 끝까지 다 보고 말하는 거겠지?
[코리올라누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리처드2세]도 내친김에 야금야금 읽었는데, 재밌다.
나남의 이성일 역으로 구입해 읽었는데, 역자는 산문투로 풀지도, 운문번역투로도 번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리고자 쓴 대본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여 가급적 셰익스피어의 시행에 맞게끔 리듬에 반향하는 행들을 맞추려 노력하며 번역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 어쨌든 부드럽게 읽히긴 한다. 읽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각주다는 것 조차 조심한 듯 보인다. 편안하게 읽힌다. 역사극만큼은 이 선집을 사볼만한 것 같다.
아, 마지막에 셰익스피어 역사극에서 다뤄지는 영국왕조의 가계도가 실려있다.
하, 이 셰익스피어 역사극 관련해서도 쓸게 많을 것 같지만, 능력이 안되고, 이성일은 리처드2세의 왕의 자격보다는 시인으로서 관객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적한 반면, 박우수는 리처드2세를 시인으로 볼링브로크를 평범한 스타일로 보는 일반적인 해석은 잘못이다고 지적한다. 대립하는 두 인물 리처드2세와 볼링브로크는 실재론과 유명론을 대변하며 중세에서 근대로, 봉건제에서 초기 자본 축적기로 힘의 전이를 상징한다고 박우수는 분석한다.
10일 이후 김정환 역의 역사극을 본격적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심벨린'부터 '존왕', '리처드3세' '헨리4세', '헨리5세', '헨리6세', '리처드3세', '헨리8세'까지 다 읽어보고나서야 셰익스피어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생각들의 그림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뭐라 말하기 쉽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작고 얇은 책들이 좋은 것 같다. 지나치게 주석 많이 달려있고 뭐, 그런 것 보다는 한권씩 주머니에 넣고다니며 읽을만한 아주 좋은 독서감이다. 연구할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나중에 더 찾아 읽고 그러면 되지, 뭐 대단한 공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다.
올해 내가 더 열심히 생각하고 알아봐야 할 일은, 회피하지말고, 은퇴후의 생에 대해서도 좀더 적극적인 탐색을 해야할 시점이다. 늦은감이 없지않지만........, 갈길이 멀다. 힘든 시절이 예상되는데 잘 버텨나가고 싶다.
2012년 마지막날 당일배송으로 주문한 책은 [네버랜드 그림책을 빛낸 거장들].
다늙어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생겼다. 허참. .......
버나드 쇼의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책 표지 그림만 줄구장창 들여다보고 있는데, 독일 낭만주의회화의 대표주자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혹은 안개낀 바다위의 방랑자)>라고 한다. 은근히 사로잡는 그림이다.
주로 자연과 등지고 있는 인물을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그의 그림들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급기야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빌리]에도 이 그림이 나오는 걸 보고 말았다. 세상만사가 모두 걱정인 빌리의 잠못이루는 밤, 침대머리맡 위에 떡하니 걸려있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