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문의 비밀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 무척 관심 깊고,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추리소설로서의 기법이나 솜씨 보다는 아무래도 그 근저에 깔린 것들이다. 백탑파 지식인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백탑파라고 총칭되는 그룹 속에도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이 있겠는데 저자는 일단 이들이 낡고 경화된 지배권력층과는 다른 새로운 군주 정조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에 가득찬 지식인들임을 설정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방각본 살인사건]은 정조 집권 초기와 백탑파들의 인물과 이들의 성향, 문화 그리고 소설의 거대한 배후인 18세기 조선을 소개하는 입문서에 해당한다면 두 번째 이야기 [열녀문의 비밀]은 보다 전개된 갈등과 깊어가는 시대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크게는 두 가지 축이 있다.

그것은 암흑의 핵심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 소문으로만 무성하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환상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이며 그것은 백탑파 특히 김진이 부딪혀야 할 거대한 시대의 아젠다이다. 황제가 자신을 칭하는 짐朕이라는 단어가 이 두 가지 축을 설명하는 데 꽤나 적절한 용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 희미한 상태를 말한다. 사물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다만 형태만을 느낄 수 있을 상태.

두 축은 짐朕으로써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은 정조였다. 정조는 자신의 등극 자체가 위협이 되는 노론 일부 세력의 도전에 맞서며 집권 초반 왕권을 장악해 나가는 주도면밀하고 노회한 왕으로 묘사되었다.(정조가 백탑파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후반은 정조의 위엄과 권위를 동반한 두려움의 분위기를 물씬 담고 있다.)

[열녀문의 비밀]에서 은 김아영이다.

 

김아영은 생전에 그녀를 만난 모든 인물들이 김진과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진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조사자 김진에게 그 모든 진술은 거짓과 진실이 교묘히 결합된 언어들이다. 그 언어 속에서 김아영은 조선유교가 공고하게 구축해 놓은 여성의 길을 성실하게 따라간 열녀이며 또한 학식과 예술적 안목을 두루 갖춘 지식인이자 과감하게 배운 것을 실천한 경영자이기도 하고 시문 뿐 아니라 소설을 짓는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이 결말을 향해 갈수록 김아영은 시대가 감당할 수 없는 길을 간 여성이었음이 드러난다.

 

열녀문은 정조의 공맹사상으로 구축된 구조물이어야 했으며 야소교의 가르침을 끌어대어 새로운 삶과 질서를 선양하기 위한 구조물이 될 수는 없었다. 소설 후반부에 복명을 위해 정조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김진이 주청한 열녀문이 결코 구조될 수 없는 것은 김아영이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였으며 정조의 한계이자 시대의 한계였다. 백탑서생들 역시 이 벽에 부딪쳐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정조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김진을 비롯한 백탑파의 견해가 갈리는 지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핵심이다.

 

한 쪽에는 혁신적이지만 여전히 공고한 자신의 왕국을 고수하는 정조의 시대가 있으며 다른 한 쪽에는 그 공고함을 근본부터 무너뜨릴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시대가 있다. 한 쪽은 노회하며 다른 한 쪽은 열정적이고 참신하나 세를 얻지 못하는 한 영원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위태로운 환상이다.

 

이 사이에서 백탑서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과연 다음 이야기에서 나의 이러한 생각은 확인될 수 있을지 이것이 이 시리즈의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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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2005-10-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정말 멋진 리뷰네요^^

포스트잇 2005-10-1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용휴 글 중에서 "제 스스로의 목소리로 우는 가을 벌레의 울음소리가 혀가 잘린 앵무새의 노래보다 나은 법이다"는 말로 자신의 시를 긍정한 문구가 있네요.저 또한 그저 제 흥취에 써본 감상입니다.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

 

대저 [무원록]은 형옥을 다스리는 자의 지남指南(지침)이다. 만일 초.복검에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비록 고요皐陶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더라도 반드시 그 요령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형옥의 어그러짐이 대개 이로 말미암는 것이다. …… 오호라, 이 책이 원래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제 조선에서 주해를 달아 상세하고 명백해졌다. 이제부터 형옥을 다스리는 자들이 진심을 다해 이 책에 근거하여 검험한다면, 거의 중정中正을 얻고 백성들이 원통함이 없게 될 것이니, 임금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형률을 신중히 하려는 뜻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정대부 강원도관찰출척사 겸병마절제사 겸감창 안집 전운 권농관 학사제조 형옥공사 지초토영전사 臣 최만리가 지은 발문의 한 대목이다. (최만리 앞에 무려 42자는 관직과 벼슬 등등이다. 암호다. 아직 나는 이 글자들이 가리키는 온전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언제 한번 장계나 기타 문서 등에 쓰이는 이런 직제 법칙을 알아봐야겠다. 또한 죽은 후에 하사하는 시호도 그 뜻이 다 있다 한다. 시호만을 다룬 책도 나온 걸 봤는데 그것도 궁금하다.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너무 모른다. 나이 탓인가? 그런 게 궁금해지니. )

 

발문에 나오는 고요는 중국 순임금의 신하로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정하였으며 옥獄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중국 고대 왕국에도 죄를 논하고 벌을 부과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인간사가 그런 것이리라.

 

이 책을 통해서 당시의 살인사건, 사체에 대한 인식, 수사절차 등을 알 수 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사건을 맡은 관리의 도리, 철저한 관찰과 기록, 그리고 청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형옥사건을 맡은 관리들이 사체를 임함에 있어 직접 관장하지 않는 무관심 또는 대충주의를 엄격하게 비판한다. 사건을 맡은 관리가 험악한 꼴을 보길 저어하여 대충 오작仵作과 항인行人(검시에 참여하는 서리배들, 시체를 매장하는 일 따위를 맡는다)에게 맡겨 그들이 말하는 대로 보고 하는 태도를 먼저 문제삼는다. 당시 오작이나 항인은 대개가 도축일을 하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인명을 귀중히 생각지 않고 범인이나 기타 이해 당사자들의 청탁에 노출되어 있는 경향이 많음을 지적하고 이들에 대한 불신도 감추지 않는다. 따라서 관리는 이들을 관리하고 엄중히 경계함은 물론 자신들이 직접 검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리라고 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관리의 덕이나 품성에 맡길 일은 아니다. 이 역시 법률적 근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응당한 대우가 주어져야 하며 또한 인간사, 인체, 죽음에 대한 전문 식견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서는 그러한 관리의 대우나 양성체제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또한 사건에 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경우에는 공개성을 원칙으로 해야 하며 철저한 관찰과 주변 심문, 관련 당사자들의 일치된 의견을 통해서만 최종 결론에 이르게 하는 등의 공정성에도 주의를 두고 있다. 참여한 관리나 기타 인물들이 보고서에 이견이 없음을 인정하는 수결을 갖추도록 하는 문서서식을 만듦으로써 그야말로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데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학수사란 시대적 한계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해부까지 할 수 없는 시대이니 만큼 드러난 증거들은 철저히 채집하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은 드러나게 하는 방법들을 찾고 연구하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까지 이루어진 과학수사의 최대치를 집대성한 것이다. 아마도 범죄 또한 시대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벌어질 것이다. 보다 교묘하고 복잡한 과학적 범죄는 꽤나 드물었을 것이고 이 한계를 벗어난 범죄가 발생하면 그를 해결하기 위한 더 발전한 수사 또한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을 위한 과학수사는 다른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이 그렇게 진화했으리라.

 

따라서 죽음에 대한 연구가 이 책엔 망라되어 있다.(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구타로 인한 죽음, 목을 매단 죽음, 익사, 독에 의한 죽음, 불에 타 죽는 것, 끓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칼에 찔려 죽는 것, 이러한 것들에도 여러 가지 변종들이 있다. 목을 매단 죽음에도 죽은 후에 목을 매단 것으로 위장한 것인지 죽기 직전에 목을 매단 것인지, 익사도 물의 깊이, 물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며, 독에 의한 죽음도 약물인지, 독충에 의한 것인지 등등.

그밖에 병사, 더위 먹어 죽는 것, 풍風을 맞아 죽는 것, 얼어 죽는 경우, 굶어죽는 경우, 수레에 치어 죽는 경우,놀라서 죽는 경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경우를 나열해 놓고 그에 따른 증상들을 일일이 적었으니, 읽으며 상상까지 하면 이 보다 더 지독한 독서가 있겠나 싶다.하긴 사체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에게 한한 것이겠지만.  

 

600여년 전 당시 조선에서 이 책이 자기 손에 들어왔을 때 기뻐 어찌할 바 몰랐을 젊은 관리나 기타 관속이 있었으리라 상상해본다. 궁금하다. 간행을 했으니 형옥관련 관리들만 읽지는 않았을 것이고 호기심 많은 선비들도 읽었을 것이고, 범인들도 읽었겠지?

15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간 200여년 기간 동안 조선의 범죄와 형옥은 얼마나 변화되었을지, [증수무원록언해]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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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다.

오랫만에 본 소설이다. 저자 임치균은 20년 동안 고전소설을 연구해온 학자이다. 전문소설가가 아니다. 그런 그가 소설을 낸 이유는 우리의 유산인 고전한문소설이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무시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 전공자인 저자가 보기에 우리의 고전소설은 그 상상력과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이 심오할 뿐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으로도 흥미진진한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한문소설이 지금 '일반인'들에게 독해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한문소설은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 번역에는 고사나 인물 또는 표현들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소설을 번역하여 나온 책들은 각주 또는 미주 등이 줄줄이 붙어 있어 소설책인지 학술서인지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형식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러한 취약점을 타파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고전소설을 소설로 소개한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소설 속의 소설'이다. 후자의 소설은 고전한문소설을 말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매우 어색한 듯 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다. 어색하다는 것은 미안스럽게도 저자의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초보자 수준이어서인지 이 소설에서 소개하고 있는 고전소설이 저자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리 재미있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다. 신선하다는 것은 고육지책처럼 발상의 전환을 해냈다는 점에서 상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가 소설을 쓴 이유가 고전한문소설을 각주나 미주 없이 즉, '독서의 순간 단절' 없이 고전소설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한문소설을 그대로 옮겨 소개한 뒤 그에 대해 저자가 고안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간)각주의 역할을 맡아 자연스럽게 설명해주는 형식을 이어나간다.

 [검은 바람]에서 '소개' 되고 있는 고전한문소설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이며 임제의 [원생몽유록] 그리고 작자미상의 [운영전]이다. 나는 이 소설들을 고등학교 때 배운 수준 외에 아는 게 없었다.

이 책을 일단 집어든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었다. 미스테리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얼굴의 이순신]을 쓴 은행연합에 다니는 직장인 김태훈이 최근에 낸 [이순신의 비본]도 그렇고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이나 [열녀문의 비밀] 등 역사추리물의 성과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하다. 소설적 성과를 논하기 전에 일단 우리의 역사, 역사인물에 대해 지녔던 얄팍한 상식 또는 정설로 받아들였던 단편적 사실들을 소설적 상상력과 문학성으로 헤집어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인식하고 사유하도록 하는 도전은 분명 흥미진진한 일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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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오 평전 | 옌리 에산, 구지엔구오 (2000) | 홍승직 역 | 돌베개 (2005)

이탁오 (1527~1602)

중국 명나라 학자. 호 탁오(卓吾). 이름은 지(贄). 저서로는 《분서()》, 《속분서()》, 《장서()》, 《속장서()》등이 있다.

저자들은 그를 '중국 제일의 사상범'이라고 평했다.  책 부제가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이다.

그의 나이 54세였던 1580년에 관직을 사퇴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인들이 마련해준 거처를 전전하며 문을 닫아걸고 오로지 책을 읽고 저술작업에 몰두했다. 결벽증이 있었는지 하도 마당을 쓸어대는 통에 그를 모신 이는 비를 마련하는 데 애썼다고 한다. 그 결벽증의 일환이었는지 어느 날 나이들고 병든 몸에 머리마저 부시시 해 그날로 삭발을 해버렸다. 사대부들이 난리를 쳤다.

1602년 나이 76세에 탄핵을 받았을 때 이미 유서까지 써놓고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던 병든 이탁오는 떼낸 문짝 위에 실려 압송되어야 했다. 감옥에서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결을 했다. 칼로 목을 그었는데도 바로 죽지 않아 그는 이틀을 더 살았다.

오래 전에 그의 저서 《분서()》(홍승직 역 | 홍익출판사 |1998)를 읽었을 때 이탁오는 잘 다가오는 인물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주자학에 도전한 양명학을 받아들인 돌출적인 학자 정도로 이해했다. 이 평전은 이탁오 그의 일생과 행적, 그리고 그의 저술들을 통해 사상적 측면까지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주어서 아주 흥미롭다.

1602년 언관(言官 ) 장문달이 올린 이탁오 탄핵소를 보면 이탁오가 얼마나 유가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적을 했으며 따라서 그가 사상범이 되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일부를 보면,

"중년에는 관직에 있다가 만년에는 삭발을 하더니, 최근엔 또 [장서] . [분서]. [탁오대덕] 등의 책을 출판하여 온 나라 안에 유포함으로써 심히 인심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여불위이원 같은 사람을 지모있다 하고, 이사를 재능이 뛰어나다 하며, 풍도를 사리사욕 없는 관리라 하고, 탁문군이 훌륭한 배우자를 잘 선택해다 하며, '상홍양이 무제를 속였다'고 사마광이 논한 것을 우습다 하고, 진시황이 천고의 유일한 황제라 하며, 공자의 시비 기준이 믿을 것이 못 된다 합니다. 허무맹랑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고, 모든 것이 오류와 허점투성이라 이를 없애지 않으면 안됩니다."

'허무맹랑하고 이치에 닿지 않'으며 '오류와 허점투성'이라는 이 열거한 인물들에 대한 평은 이탁오의 저서 [장서]의 내용을 지적한 것이다. [장서]는 전국시대부터 원대에 이르는 중국 역사 인물 800명에 대해 정리하고 평을 한 책인 모양이다.

이 [장서]가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있는지 여러모로 찾아보았으나 없는 것 같다. 무척이나 보고 싶다.

평전은 전체적으로 재미있지만 특히 내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이 [장서]에 관한 것이었다. 유교적 명분, 충절, 군신관계, 도덕 규범에 대해 깡그리 뒤집어가며 인물을 고르고 평했다. 명분 보다는 세상의 이익을, 도덕 보다는 지모를, 의니 불의니를 논하기 보다는 사회효과를 살폈고, 업적과 공과를 개인의 도덕과 분리해서 평했다.

'절의란 패망의 증거다', '정직,절의가 공적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물론 좋은 것이고, 단지 정직. 절의의 이름만 얻었을 뿐 세상에 이익이 없다면 그것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살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가! 세상 사람들은 걸핏하면 살신성인으로 사람을 규율하는 데 심하도다!' 라고 단호히 말한다.

내가 모르는 인물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여기에 언급된 '풍도馮道'를 다룬 책이 있음을 알았다.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냉큼 빌려다 읽었다.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이 산만한 10세기 중국의 5대 10국과 그 줄줄이 이어지는 천자들과 인물들을 정리하는데 다소 짜증이 났다. 책은 주가 틀린 부분도 많고, 다소 의심가는 번역도 있어서 불만족스러웠으나, 풍도, 이 인물의 지그재그적 삶이 하 기가 막히기도 해서  그 힘 하나로 버텼다.  

 

 

 

 

 

풍도의 길 : 나라가 임금보다 소중하니 | 도나미 마모루 지음 | 허부문.임대희 역 | 소나무 (2003)

 풍도馮道 (882~954)

 "재상으로서 다섯 왕조와 여덟 성姓을 섬겼다. ... 아침에는 서로 원수였는데 저녁엔 임금과 신하 사이로 변하자, 표정과 말을 바꾸면서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큰 절개가 이랬으니, 설사 그가 착한 일을 했다고 한들 어찌 괜찮다고 말하겠는가!" (사마광 [자치통감])

"(나라의) 사직이 중요하지, 임금은 중요하지 않다. .... 풍도가 비록 50년 동안 네 왕조를 거치면서 열 두명의 임금과 야율씨의 거란에 봉사했지만 , 백성들이 끝끝내 전란의 참화를 모면할 수 있었던 까닭은 풍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고 먹여 살리려고 노력한 덕분이다." (이탁오 [장서])

풍도에 대한 평가다. 사마광은 11세기 송나라 사람이다.

907년 당이 멸망하고 이후 960년 송이 건국되기까지 약 50여 년 동안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가 나라 이름을 올렸다 망하기를 거듭했고, 요로 통일국가를 세운 거란이 중국에 들어와 통치하기도 했다. 풍도는 후당의 장종, 명종, 민제, 말제를, 후진의 고조,소제, 후한의 고조,은제, 후주의 태조, 세종 그리고 거란(야율덕광)때 관직을 지냈다.(아니, 정리가 필요하군)

그런데 풍도에 대한 많은 사료가 없다보니 풍도의 분명한 뜻을 알 수가 없다. 물 흐르듯,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거절도 분명한 의사표시도 강하게 한 적이 없는 사람인 듯하다. 지방 절도사로 보내면 갔고, 재상으로 부르면 다시 왔고, 지방에 있다가 거란이 수도를 함락하자 자진하여 들어와 읍하며 현신했다.

저자는 E.H.Carr의 말을 언급했다.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환경을 연구하라. "

풍도에 대해 사가들이 평가한 것들은 그 사가들이 처한 학문적 지평과 관점의 배경,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풍도에 대해 '불사이군'을 하지 않은, 유교적 충절 개념을 헌신짝처럼 버린 파렴치한 인물이라는 평가는 모두 유교적 덕목이 학계는 물론 규범의 보도가 된 이후 덧씌워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교 덕목의 잣대가 아니라면 이탁오처럼 백성을 구했다는 점에서 평가해야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의심이 갔다. 도대체 풍도의 처세가 백성의 존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탁오의 말처럼 어떤 사회적 효과가 있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사회적 효과란 또 무얼 말함인지?

오히려 풍도만을 얘기하자면 그가 재상이라는 지위를 차지하고서도 백성과 당대 시대의 사회적 효과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 또는 사명을 어떻게 규정했고 그에 따라 실행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통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천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또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조카가 숙부를, 무인이 또 다른 무인을, 장수가 문인을 죽여가며 하루를 열고 닫는 세월 속에 풍도 자신은 '원래 글쟁이로 그저 임금께 말씀을 올릴 뿐' 이라고 나약한 문인을 자처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른바 태평성대 때는 어진 재상일 수 있지만 환란을 구제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당시 평가를 얻었을 것이다. 결국 시기를 잘못 만난 것이다. 단지 물 흐르듯 갔을 뿐이다. 파여진 곳, 새로 나는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시대를 흘렀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물이 되지는 못한다.

 

자신을 잘 알고 처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풍도는 자신을 잘 알았다. 자신이 물이란 것을. 난세에 물길을 뚫을 능력도 천성도 타고 나지 않았다. 뚫려지고 새롭게 나는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공손히 따라가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았다. 그에게 나라란 계속 관직과 식읍과 녹을 주는 지속성만 갖추면 그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유교적 충절, 충신에 대한 허명으로 논하기 전에 도가 아니면 나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또는 판단하지 않는 것)도 죄다. 풍도는 한번도 사직을 청하거나 물러나기를 먼저 요구한 적이 없었다. 설혹  '태백'(太白若辱 [노자]에 나오는 말로 태백은 누가 써도 써야 하는 오욕의 자리에 서는 사람)의 치욕을 감당하면서 역할을 떠맡는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건 그가 보이는 행위를 통해 판단할 문제다.

송 이후 사가들의 풍도에 대한 평가는 편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탁오의 풍도에 대한 평가의 근거를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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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 죽는 줄 알았다,   꽤 오래전 김형곤의 "공자 가라사대"였던가  그런 개그프로야말로 이 논어의  패러디였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역자 조광수는 자신도 논어를 보다가  나처럼 웃었던 경험이 있어서 아마 이런 책을 내리라 맘 먹었으리라.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자를 알고 싶어서 골랐던 책인데 [논어]에 나온 공자의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를 알게 해준다. 책세상문고의 [논어]를 보면서 포복절도했던 것들이 슬그머니 쑥스러워지는 대목이 많다. 아, 세상 알기의 어려움이여.

 post it :                                  

출판된 하고 많은 [논어] 책 중에서 하필 책세상 문고를 선택한 것은 우선 다른 해설 없이 오로지 논어 내용만을 죽 실었다는 점에서 중단없는 독서를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알지 못하는 한문 원문까지 실어놓은 책들이 내게 지금으로서는 개발에 편자격이니. 해설 없이 주를 통한 짧은 지식만을 들춰보며 읽는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책세상 문고의 [논어]는 상당히 색다른 독서경험을 줬다고 하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떼구르르 굴렀다. 

저자(이 경우엔 엮음인데)가 '공자의 문도들'이다. 대개 [논어]의 저자를 공자로 표기하고 있거나 아예 저자를 쓰지 않고 옮긴 이(역자)만을 밝히거나 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책세상의 이 책은 '공자의 문도들'이다. 웃기지 않는가? 물론 처음에는 전혀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새삼스럽게 쳐다보았을 때 난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역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미리 경고(?)를 했다.

"직역을 하면 도저히 뜻이 통하지 않는 구절에서는 나의 느낌을 섞어 풀어서 번역했다. 아마 이런 점이, 좀더 많은 독자가 고전을 접하기를 희망하는 '책세상 문고 . 고전의 세계'가 나에게 [논어]의 번역을 맡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구절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단어 하나하나에 연연해 전체적인 뜻을 경직되게 만들지 않는 자연스러운 번역을 하고자 했다. 공자님 말씀을 바이블로 여기는 분들은 어쩌면 질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은 늘 해석되고 또 재해석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 역자의 '재해석'이 어째 김형곤의 '공자 가라사대' 의 대본으로 읽혀지고 말았으니.  아마도 나는 역자의 '느낌'을 잘 소화한 독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비록 공자님 말씀을 바이블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더욱 이 책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논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 및 당대 주변 인물들과 나눈 대화들을 후세 제자들이 정리해 만든 책이다. 그래서 공자왈(공자가 말했다)이 늘 앞에 붙곤 한다. 이렇다보니 이 대화가 어떤 배경에서 나온 말인지 알지 못하면 선문답처럼 느껴지기에 충분할 만큼 [논어]의 대화들은 경구이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나는 [공자평전]을 보면서 [논어]의 대화 하나하나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공자평전]은 대개의 평전과는 다르다. 학술서에 가깝다.

[논어]의 말을 공자의 생애로 풀어놓는 제1부를 책세상의 [논어]와 함께 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해설이 붙은 [논어]를 읽으면 간단하겠지만 말이다. 1부를 통해 공자의 생애를 일괄한다면 이후 책 내용은 공자학, 유가의 사상에 대한 해설과 사상적 배경, 그리고 중국 역사를 통해 공자학이 지닌 의미, 현대에서 이 중국 사상사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전유해야 하는지의 문제들을 아우르며 논하고 있다.

유학이 한반도 역사와 정신에 끼친 영향의 중차대함을 십분 헤아리면서도 이에 대해 자세히 천착해 볼 욕구를 가지지 못했다가 이제사 막 눈 돌리기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세상의 [논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니 만큼 반드시 다른 관련 서적을 함께 읽어야 한다. 공자의 제자들-문도들-에 대한 지식도 함께 아우르지 못하면 잘못 인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싶다.

나의 경험으로 그 대표적 예가 자로에 대한 것이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책세상의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가 감당하지 못한 제자였거나 혹은 어지간히도 싫어했던 제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공야장>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고 있어 뗏목을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갈까 하는데, 나를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용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보다 낫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취할 것이 없다."

이대로 읽으면 자로의 캐릭터는 단순무식함으로 정리되는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일정한 수업료만 내면 문하로 받아들여졌던 터라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있었지만, 자로는 '공문십철孔門十哲'중의 한명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제자였다. 그런데 책세상의 [논어]에서 역자는 이 자로를 철저히 코믹한 배역으로 삼았다.

자로와 관련해서는 또 이런 예도 있다.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어째서 [감히] 내 집에서 [잘 타지도 못하는] 비파를 타는건가?"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공자에게 야단맞는] 자로를 공경하지 않으니 공자가 말했다. "자로의 학문은 마루까지는 올라왔지만 아직 방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선진> 편)

[ ] 안에 든 말은 역자의 '느낌'으로 첨가된 것이다. 이 대목을 읽자면 저 멀리서 자로가 엉터리로 비파를 타는 소리가 들린다, 악에도 밝은 공자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엉터리 연주다, 평소에도 못마땅해 하던 자로를 공자가 여지없이 비하하며 혀를 차는 장면이 그려진다. 제자들은 또 어떤가, 서로 얼굴을 감추며 킥킥 거리는 철없는 제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런데 [공자평전]에 따르면,공자는 악 역시 예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에 맞는 음악과 예에 맞지 않는 음악을 구분했다. 자로가 연주한 곡이 바로 공자가 예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한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자로의 연주실력을 가지고 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한 모양이다. 책세상이 선택한 해석은 바로 위와 같은 것이었다.

<공야장>의 에피소드도 공자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한탄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은 제후국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자는 주유천하를 하면서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가의 개'처럼 쫓겨다니기도 하고 전쟁이 벌어진 제후국들 사이에 갇혀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곤란을 당했던 때도 있었다. 이 말을 했던 때가 정확히 어떤 시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신의 주유가 결실을 얻지 못할 것임을 짐작한 때쯤이 아니었을까. 이제 더 이상의 주유가 무의미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내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 때 제자들마저 스승의 사상이 비현실적이라고 논하며 자신들을 부르는 제후들 곁으로 떠나버린 상황에서도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자로를 보며 한 말이었을 것이다.

자로는 성격이 불같은 자였다. 원래도 협객이었다 한다. 공자를 철저히 지켰고 그럼에도 그의 곧고 급한 성격 때문에 공자에게 조롱도 받았던 인물이었다. 공자 보다 9세 연하였고 말년에 위나라 대부의 가신을 지내다 정변에 휩쓸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그의 시체는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졌다고 한다.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면서 집 안에 있는 젓갈 단지의 뚜껑을 모두 덮어버리라고 명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자로가 책세상 [논어]에서는 등장할 때마다 공자와 자로의 대화는 거의 '공자 가라사대' 한 장면이 되곤 한다.

(글이 날아갔다....)

 

 (내 머리를 대신 복구한다. 에구,에구)

자로 캐릭터의 결정판은 희대의 사건, 남자(南子)부인과 공자가 만나고 돌아온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공자가 남자를 만나러 갔더니 자로가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잘못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옹야> 편)

스승이 제자들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고 문제의 남자부인을 만나고 돌아온 것이다. [논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뒷얘기가 있다. 공자는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난 원래 그녀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딱 한번 예의상 갔다온 것 뿐이다." 다른 제자들은 별말이 없는데 괄괄한 자로가 나서서 노발대발한 것이다. 아, 스승이 여자를 좀 만나고 왔기로서니 그걸 꼭 집어서 들춰내는 자로가 공자는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동양의 대스승이라는 공자가 하늘에 대고 내가 잘못했다면 하늘이 버리실 거라고 외려 큰소리를 치며 설레발을 떠는데 제자들이 더 이상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하늘을 우러르며 말한 뒤에 하늘에서 천둥치고 벼락이 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데 공자와 남자부인의 만남은 단순히 불륜 스캔들과 같은 사건이 아닌 것이다. 공자는 제후국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자와 그 문도들의 처지는 무척 위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도가 없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도를 펼치고 싶은 욕망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듯 하다. 공자와 문도들은 떠돌다 다시 위나라로 돌아왔는데, 남자 부인은 바로 위령공의 부인이었다. 남자부인은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여자였다. 부인을 만나는 것은 곧 정계 진출의 끈을 잡을 수 있는 기회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남자부인이 공자를 초대한 것이다. 처음에 공자는 거절했으나 결국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이다. '벼슬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 [공자평전]의 저자는 말한다.

의심스러운 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진정 남자부인에 대한 공자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오로지 '벼슬', 순전히 자신의 사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는지 나는 확언할 수 없다. 도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위령공이 아닌 그의 부인을 만났다는 것에 제자들은 아연했을 것이다. 뻣뻣한 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자부인은 또 다시 공자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이번에는 위령공과의 행차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는 요청이었다. 공자는 이번에도 초대에 응한다. 공식행사 참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 행차에 함께 한 것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위령공은 오로지 공자와 자신의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한 것일 뿐이었다. 공자는 위령공에게 "나는 당신처럼 여색을 탐하고 도덕을 가볍게 여기는 위인을 본 적이 없다"라고 일갈하며 결국 위나라를 떠난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논어]에도 나온다. 공자와 남자부인의 스캔들은 공자에게 심한 열패감만 안겨준 채 쓸쓸하게 마무리된다.

차라리 인간적이다. 인간 공자의 모습을 [논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책세상 [논어]의 역자는 이런 인간 공자를 좀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웃을 수 있었으리라.

 공자와 남자부인, 위령공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공자의 사상과 공자의 주장은 제후들에게 실천하기엔 너무나 우원한 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공자는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권위와 세를 지닌 인물이었으니 제후들로서는 그를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 정치에서는 소외시키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공자는 2000천년 이상 동아시아를 지배한 사상가이자, 스승으로서 영생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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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09-03-2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논어와 공자를 읽고싶지만 그럴만한 역량이 안되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리뷰를 보고나니 게으른 제자신이 참으로 낮춰보입니다..

포스트잇 2009-03-22 12:26   좋아요 0 | URL
누추한 서재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님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이 글을 다시 읽었네요. 적잖은 나이에 방황할 때 썼던 겁니다. 그래도 그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제법 길게 끄적거릴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나름 악전고투 중이라 집중이 쉽진 않네요. 관심가는 대로 읽자구요.안타까울 일이 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