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라!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중 하나인 모양이다. 우연히 이런 만화책도 있는 걸 알고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도록 만드네. 도서관 어린이실에 비치되어 있다니 빌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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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이제 달랑 3권 본 셈이다.  

[백야행] [편지] 그리고 [용의자X의 헌신]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만해도 십여권이 넘는데 고작 세편 보고 그의 작품 세계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읽어본 책만으로 봤을 때 그의 '죄와 벌'에 대한 주제의식이 흥미로웠다. 또한 인물들이 갖는 실존적 딜레마를 극화하는 데 자질을 보여주는 작가인 듯 하다.  

[백야행]은 박신우 감독 연출로 촬영을 시작했다. 각색한 시나리오를 보긴 했는데...내가 생각하기엔 아주 중요한 점에서 원작과 다른 해석 또는 촛점을 달리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만화나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화하여 흥행면에서거나 작품성 면에서 성공을 거둔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외에 또 뭐가 있지?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을 영화한 <검은집>은 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 번건가? 손익분기점 겨우 넘긴건가? 원작이 있어 쉬울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달리 생각할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자기 논리의 끝까지, 자기를 고집하는 이성의 광기를 포착"한 작가로 본 밀란 쿤데라([소설의 기술])를 참조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 세작품은 죄를 저지른 자로 인해 어찌해 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실존적 선택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용의자X의 헌신]은 다소 신파적으로 보였는데, 자신의 삶을 모두 걸고 하는 사랑이라는 게 멜랑콜리했다. '멜랑콜리',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를 기본 바탕으로 한 정서라면 이제 '헌신'이라는 것 자체가 드문 가치가 된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정서인가?  

곧 일본영화가 개봉된다니 한 번 볼만 하겠다.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박찬욱 감독의 최근 인터뷰를 봤는데, 신작 <박쥐>가 [테레즈 라캥](에밀 졸라)의 모티브를 참조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테레즈라캥]도 끝내주는 작품인데 ... . 아주 싸~하고 독~한 소설이지. 그러고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나 요코하마 히데오의 '망상'적 미스터리 소설들 모두 얼마쯤은 이 '자연주의' 작가라는 에밀졸라의 '해부' 정신에 줄을 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 나라 작가들 작품들 중 참고할만한게 있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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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과 반전'의 대가라는 제프리 디버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흥미로운 점들이 많은 소설이었다. 캐릭터라든지 플롯의 주요한 계기를 제공해준 '시계'에 대한 지식활용, 행동심리학의 한 분과로 자리한다는 '동작학'을 구현한 캐릭터 등. 다만 '동작학' 전문가 캐스린 댄스는 점점 거의 점쟁이 수준으로 비약해버린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트릭과 반전의 달인이라는 작가. 독자 속여봤어? 안 속여 봤으면 말을 마슈, 라는 식으로 결말로 갈수록 다소 어이가 없어지는데, 시계공 제럴드 던컨(본명 찰스 베스파시안 헤일)이라는 희대의 사이코패스가 화자로 얘기하는 부분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검토해봐야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던컨으로서 얘기했던 것들과 나중에 찰스로서 본연의 '범죄'에 착수하는 것 사이에는 납득하기 힘든 그야말로 트릭같은 게 있다. 이는 얼마 전에 읽은 헤닝 만켈의 [한여름의 살인]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지는데,  

 

 

 

 

 

 

 

  

 

범인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범죄, 심경, 방법, 심리 등을 얘기하는 것을 따라 독자는 병렬처럼 이루어지는 주인공 경찰과 범인 사이의 추리,추적과 범행, 도망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콜드문]에서는 던컨의 범죄를 던컨 자신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에 자신의 '심정,심리'까지가 포함되어 있기에 나중에 찰스 자신이 '진짜'로 저지르려고 했던 사건에 이르면 그것은 완전히 독자를 속이기 위한 술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이래도 좋은 것인가? 

*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애거서는 '나' 세퍼드가 전화를 받고 살인현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에 셰퍼드의 어떠한 심정적, 심리적 묘사도 하지 않았다.  

이 껄쩍찌근함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어쩌면 실마리를 풀어줄 책을 로쟈님의 서재에서 발견했다.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우선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읽지 않은터라 급하게 먼저 구입했다.  

 

 

 

 

 

 

  

 

요즘 추리, 범죄 미스터리물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특히 관심갖게 되는 것들은 캐릭터, 범죄의 동기들이 신선한지, 그리고 사건 해결 등에서 특별히 주목할만한 게 있는지 등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단연 흥미로웠다.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 판권을 구입, 캐스팅까지 완료되어 곧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각색을 어떻게 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시나리오 구해보라고 부탁해놨다. 어른들로부터 영혼을 뻬앗긴채  악을 행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고단함이 안쓰러움마저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은 자신의 범죄 이면에 도사린 음모를 또한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다만 '재판'의 형식을 이용해 변호사가 줄줄이 말하는 방식은 다 소화하지 못해서 뭉텅뭉텅으로 배설할 수밖에 없는 처리처럼 보여 아쉬웠다.  

게다가 범죄 방식으로 채택된 농약의 음료수 혼입은 아무래도 미숙해보인다. 그것이 단지 '암시'된 '복선'으로부터 끌어올려졌다고 처리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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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소개받아서 열심히 읽었다.  

작가 김민영의 이력도 흥미롭다. 캐릭터나 대사들이 어찌나 '명랑'한지 읽기에 즐거웠다. 들은 바에 의하면(그야 말로 '들은 바에 의하면'이다) 이 소설을 끝으로 출판계나 영화계 쪽과는 더 이상 작업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데 저간의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판타지 소설을 즐겨하지 않는 편인데(어슐리 르귄의 판타지 정도가 그나마 좋다) 이 소설은 거의 1,800여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휙휙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1996년도 경에 2012년을 상상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아쉬운 점은 결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생각을 하게 했다.  

그것은 '윤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연이어 읽게 된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김훈의 소설을 고찰한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에서 김훈의 소설과 파시즘적인 것과의 연결에 대한 김훈 자신의 대답, "인류의 역사가 약육강식의 질서로 움직여 왔다는 것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는 말을 인용한 대목에서, 

그래 ... [팔란티어]의 결말에서 보여준 그 '배후' 세력의 인식에 대해서 적절한 사유는 '인정'할 수는 있지만 '긍정'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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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의 검찰 수사발표를 계기로 어떤 언론에서는 대통령이야 국민투표를 통해서 선출하지만 검찰이나 법조계 인사에 대해서 손댈 수 없는 현 제도에 대해 답답해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즉 '그들(법조계 인사)을 도대체 어떡하면 좋으냐'는 식이다.  

존 그리샴의 소설 [어필]은 마침 그에 대한 적합한 예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국의 사법제도 및 인사제도에 따라서 직접 투표로 판사를 선출하는 주(州)의 경우 벌어지는 사태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부패한 자본의 무소불위의 파워를 실감하게 한다.  

1인 1표가 아니라 1원(1$) 1표 식이 되는 이 끔찍한 사태 앞에서 캄캄한 절벽을 마주한 느낌을 소설 읽는 내내 받게 된다.  

속수무책.  

존 그리샴은 안일한 엔딩을 택하지 않는다. 독자가 조금이라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결말로 위무하지도 않는다(뭐 쬐끔 그런 사건도 있긴 하지만 ... ) . 결국 정당한 평가와 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이 철저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돈과 권력의 무지막지한 전략 날 것을 보여준다. 또, 자본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의 너무나 안일한 인식과 대처는 이 소설에서 힘의 균형을 다소 잃게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또한 그리샴이 택한 의도일 수도 있겠다.  

막장 드라마라는 분명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들을 내놓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단지 드라마만이 아니라 정치, 이 사회와 체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때론 두려울 때가 있다.  

각자생존, 각개격파 그 속에서 막장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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