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플란더스의 개>와 <마더>에서 폭탄주를 마시는 술자리 장면을 '기성세계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용했다고 말한다. '부당한 거래'가 오가는, '모든 것을 두루뭉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사회의 거래'가 이런 술자리, 폭탄주를 돌려가며 마시는 회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봤다. 더 나아가 봉 감독은 '한국성인남자'에 대한 공포를 앓고 있다. 나는 봉 감독의 말에 십분 동의할 수 있다. 그 어색하고 유쾌하지 못한 느낌이라니... . 나는 여전히 그런 자리가 불편하다.  

홍상수 감독은 그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술자리 장면이 다른 배열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같은 소재라도 느낌이나 의미가 다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홍 감독의 클리셰가 돼버린 듯한 그 술자리 장면이 이제 지겹다. 한국영화에 십중 팔구 빠지지 않는 장면이 술 마시는 장면이다. 혼자 마시든 여럿이 거나하게 마시든, 포장마차에서 마시든, 대폿집에서 마시든, 길거리에서 마시든, 집에서 마시든, 소주가 됐든, 막걸리가 됐든, 양주가 됐든... 무쟈게도 나오는 장면, 술 마시는 장면. 한국 영화감독들이 안이하게 만드는 장면 중 하나가 술마시는 장면이다. 현실의 반영이라고 해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고민이 더 필요하다.  

유하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쇼트 수가 점점 많아진다고 고민한다. 그가 생각하는 고수란 '장면을 많이 나누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쇼트에 여러 쇼트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쌍화점>은 제작자나 PD가 그를 너무 그만의 세계에 방치한 탓에 그 정도의 영화가 나왔다. 몇 편의 성공으로 그도 무뎌지고 오만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가 가장 재미없었다. 유하 감독이나 임 감독의 경우, 그들의 가장 최근작에 대해 변명조의 얘기가 많았다.  

6명의 감독에게 묻고 질문하는 이동진의 성실함이 흥미로운 인터뷰를 이끌어냈다. 꼼꼼하게 해당 감독의 작품 전부를 보고 감독에게 확인받으려 하는 그의 모범생 같은 모습도 있다. 책 말미에 그는 김혜리 기자에게 인터뷰 당한다. 부메랑 인터뷰다.  

이 책에 나온 감독 모두,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걱정하듯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늙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한 사람의 시선이 담긴 영화'(류승완)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동진은 계속해서 감독들의 인터뷰를 엮어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두들 계속되기를, '지속가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중을 위해 남겨둔 듯한 박찬욱 감독과 몇 감독 더 하면 이 정도의 책을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서 많은 걸 드러내도록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상 자체가 털어놓는 말들이 읽을만 또는 들을만 해야 한다. 그것이 인터뷰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헛고생했다. 오전 미팅은 ... 씁쓸했다. 기운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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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가 편집책임을 맡아 펴낸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집(중)을 읽다. 중편의 주제 묶음은 '쓸쓸한 여자, 불쾌한 남자'이다.  

"꿈이 깨지거나 이상이 무너질 때 여자는 불행해지지만 남자는 불쾌해진다"고 미유키는 이 묶음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들을 분류했다. 

책에 실린 8편의 단,중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건 [서예강습](1969~1970). 물론 작위적 설정이라고 느껴지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주인공 시점으로 한정된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미로를 따라 흘러간다. 쇠락한 변두리 기모노 가게의 노부인, 허름한 고서점을 지키는 어딘지 모를 요염함을 갖춘 중년의 부인... 단호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무기력한 주인공, 그러나 약한 고리를 여지없이 파고들 줄 아는 범죄 결단력의 묘한 혼합... 등등이 몽땅 들어있어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신발은 놓여있는데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숨막힐 듯한 고요, 계면쩍이리만큼 너무 조용한 집안, 방에 홀로 남겨져 서예연습을 해야 하는 지경, 방, 방이 이어진 단독주택... 흥미로운 이미지이다.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건 [공백의 디자인](1959). 지방지 광고부장의 밥벌이 호러. 광고공백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앞두고 신문사 광고부 전체의 피말리는 접대전. 이런 게 진짜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 좀 해보면 알 수 있다. ㅎ ㄷ ㄷ... 또 한편으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분노, 화 발생 소설'이기도 하다. 이때는 화르르~(화의 화기가 머리끝까지 도달하는 소리). 

[결혼식장의 미소](1975)는 기모노 입기,입혀주기를 소재로 생겨날 수 있는 얘기이기에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겠다.  

[멀리서 부르는 소리](1957)는 짧은 단편인데, 지금 시대에는 딱히 공감하기 어렵지 않나 싶은 얘기이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마지막은 짠하다. 좋았다.      

[카르네아데스의 판자](1957)의 마지막을 작가의 무책임함이라고 해야할지 또는 더 이상 쓰기 싫어서 또는 좋은 생각이 안 떠올라서 그렇게 처리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도 어쩔 수 없게 생겼다. 그만큼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보여준다.  

이 단편 컬렉션을 통해 본 마쓰모토 세이초의 몇 작품은 이런 식으로 결말 부분이 모호하게 처리돼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고 깊이 생각하지는 못한다. 그저 그렇게 느낀다는 것... .  

인생이 녹스는 게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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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허 참, 허탈함과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껄껄 웃을만하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가 먼저 나온 책이라는 걸 주의깊게 살피지 않았다. 그저 되는대로 읽기 땜에. 나는 우선 도서관에 들어와있던 [내가 그를 죽였다]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실제 집필됐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가 다음에 이어질 예정이었다는데,  아주 제대로 독자를 머리 아프고 초조하게 만들 심산이었나 보다.   

이 책에서 범인이 누군가를 끝까지 지목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책 맨 끝에 추리안내서를 덧붙여주었다, 친절도 하여라@_@, 봉인된 안내서다.   

다음, 덧셈과 뺄셈, 그리고 그 물건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범인이 누군지 알아냈냐고? 짐작은 하지만... . 혼자 힘으로? 그럴리가 있겠어요? 힌트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문득 딱 한가지 사실을 다시 깨닫고서야 비로소 아하~! 허탈하게 모든 게 무릎이 닿기도 전에 꿰뚫고 지나는 돈오의 순간이라니... . 알고 나면 너무나 쉬운 것일 수도 있는데... 쉽게 쉽게 주의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범인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인물을 좀체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안내서에서 알려준 힌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서야 정정할 수 있었다.  

범인이 대놓고 진술하고 있는데도, 그걸 등불삼아 추리를 풀어가지 못하고, 끝내 형사 가가가 꼭 집어 지적해주는데도 범인을 알지 못하기 쉽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랬다. 너무 쉽게 털레털레 책장만 넘기며 결말을 기다린 것이 아닌가 싶다. 아, 물론 처음과 마지막은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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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히가시노... 이런 내용일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이 남자가 이런 사랑얘기를 쓸 줄 미처 몰랐다. 89년작이니까, 그도 젊었던 것일까? 이런 멜로라인은 숱하게 봤지만 소설로 대해본 건, 글쎄 언뜻 생각이 잘 안난다. 

이런 장르에 좀 익숙한 사람이면 형사 가가가 끝내 맞부닥쳐 감내해야 할 비극이 있음을  감 잡고 읽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소설적 긴장과 흥미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범인이 누구인가, 뭣땜시, 같은 것도 궁금하지만, 그 보다는 형사 가가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의 발밑이 허물어지는 것을 위태위태하게 지켜보는 스릴이 있다.  

역자가 말했듯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이용한 게이고의 전략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밝혀지는 동기나 심리는 그다지 썩 수긍갈만한 건 아니었다.

희생과 헌신에 대해 생각해봄직하다. 이 범주를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죄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언뜻 든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브래드버리의 [The Martian Chronicles]는 오늘 도착하지 못했다. 내일로 배송이 지연됐다.어쩐지 상품준비가 예정보다 오래 걸린다했더니... . 제 때 온다해도 당장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묵혀뒀다 언젠가를 기약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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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부담 담뿍 안고 휴가가 시작됐다. 그러나 어쨌든 쉬는 동안 책과 함께 뒹구리라!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의 글은 별로 읽을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그가 꾸준히 이 일을 계속하고 있기에 접할 뿐이다. 10년 넘게 부지런히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인정해줄 수 있으므로.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감독과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유하 감독의 인터뷰를 먼저 읽었다. 이정도의 인터뷰라면 다른 감독들의 얘기도 기대된다.  

    

 

 

 

 

  

한편 한편 야금야금. 

   

 

 

 

 

 

 

 미뤄뒀던 책들인데 정독할 필요가 있는 책들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다음 책들까지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 책들까지 손댄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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