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가 편집책임을 맡아 펴낸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집(중)을 읽다. 중편의 주제 묶음은 '쓸쓸한 여자, 불쾌한 남자'이다.  

"꿈이 깨지거나 이상이 무너질 때 여자는 불행해지지만 남자는 불쾌해진다"고 미유키는 이 묶음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들을 분류했다. 

책에 실린 8편의 단,중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건 [서예강습](1969~1970). 물론 작위적 설정이라고 느껴지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주인공 시점으로 한정된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게 미로를 따라 흘러간다. 쇠락한 변두리 기모노 가게의 노부인, 허름한 고서점을 지키는 어딘지 모를 요염함을 갖춘 중년의 부인... 단호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무기력한 주인공, 그러나 약한 고리를 여지없이 파고들 줄 아는 범죄 결단력의 묘한 혼합... 등등이 몽땅 들어있어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신발은 놓여있는데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숨막힐 듯한 고요, 계면쩍이리만큼 너무 조용한 집안, 방에 홀로 남겨져 서예연습을 해야 하는 지경, 방, 방이 이어진 단독주택... 흥미로운 이미지이다.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건 [공백의 디자인](1959). 지방지 광고부장의 밥벌이 호러. 광고공백이라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앞두고 신문사 광고부 전체의 피말리는 접대전. 이런 게 진짜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 좀 해보면 알 수 있다. ㅎ ㄷ ㄷ... 또 한편으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분노, 화 발생 소설'이기도 하다. 이때는 화르르~(화의 화기가 머리끝까지 도달하는 소리). 

[결혼식장의 미소](1975)는 기모노 입기,입혀주기를 소재로 생겨날 수 있는 얘기이기에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하겠다.  

[멀리서 부르는 소리](1957)는 짧은 단편인데, 지금 시대에는 딱히 공감하기 어렵지 않나 싶은 얘기이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마지막은 짠하다. 좋았다.      

[카르네아데스의 판자](1957)의 마지막을 작가의 무책임함이라고 해야할지 또는 더 이상 쓰기 싫어서 또는 좋은 생각이 안 떠올라서 그렇게 처리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도 어쩔 수 없게 생겼다. 그만큼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보여준다.  

이 단편 컬렉션을 통해 본 마쓰모토 세이초의 몇 작품은 이런 식으로 결말 부분이 모호하게 처리돼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고 깊이 생각하지는 못한다. 그저 그렇게 느낀다는 것... .  

인생이 녹스는 게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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