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드라이브 마이 카 : 알라딘 단독 리패키지 한정판 (2disc) - 풀슬립아웃박스/엘리트 투명 더블 케이스+스페셜 북(36p)+포토카드 4종 세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니시지마 히데토시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나의 차를 운전하는가 ?

​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ㅡ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中

​

​

서양 철학의 핵심은 " 나 " 였다( : 과거형임을 명심하라).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_라고 선언한 이후, 서구 철학은 < 나 > 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코기토(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자기 중심 철학의 타노스였다. 하지만 < 나 > 라는 주체에 대해 별것 아니라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니체는 "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만들어져 첨가된 것, 그 뒤에 숨겨진 것이며, 그 본질은 허구로 정신도, 이성도, 사고도, 의식도, 영혼도, 의지도, 진리도 없다. 이들은 모두 쓸모없는 허구다 "라고 말했다. 니체는 망치를 들고 서양 정통 철학에서 그토록 예찬했던 주체를 과격하게 때려부순 것이다.

​

영화 <<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 는 데카르트의 코키토에서 배제된 타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 " 드라이브 마이 카 " 에서 생략된 것은 who 다. 누가 나의 차를 운전하는가 ? 이 영화에서 빨간 자동차는 가후쿠의 도플갱어다. " 빨간 차 = 가후쿠 " 다. 그렇다면 낯선 이( 미사키)에게 내 차의 운전대를 맡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그것은 타자성의 윤리1)를 강조하는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강조하는 타자 - 되기'다. ‘나’라는 중심을 비워내고 온전히 타자가 되어봄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역지사지의 태도가 타자 되기'다. 가수 김건모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 "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시바. "

​

가후쿠는 분신( 그 잡채)인 차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맡김으로써 타자 - 되기를 경험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는 죽은 아내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는다. 남의 말을 경청(듣기)하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아니 첫 번째 관문이 아니라 알파와 오메가 그 잡채다. 그래서 가후쿠는 차 안에서 반복적으로 죽은 아내가 녹음한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타자의 말을 듣고, 듣고, 또 듣는다. " 듣기 " 는 연극 워크숍에서도 지겹도록 반복된다. 연극에 참여한 배우들은 대본 읽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서로 언어(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심지어 수화까지)가 다르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몰입하다 보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감정적 교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언어 없이도 소통은 가능하다. 대화에서 표정은 최초의 언어다.

​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밝혔듯이 언어의 장벽은 작고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이 영화를 한층 신비롭고 다층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는 가후쿠의 아내 오토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토는 시나리오 작가로 섹스를 통해서만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 이야기 " 는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야기를 임신하고 이야기를 출산한다( : 오래 전 아이를 잃은 이후,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다). 이 설정은 그녀가 타자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생산(출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임신한 이야기의 절반은 남성 타자의 몫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오토의 이야기는 그녀가 생산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남성이 만들어 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이 여성성을 출발점으로 해서 추구되었다는 점에 매우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

가후쿠의 타자 - 되기 체험은 두 여자인 오토와 미사키를 통해 경험되어진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오토가 두 남성( : 남편과 다른 남자)을 통해 만들어 낸 이야기는 무엇일까 ?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은 " 전생에 칠성장어였던 소녀 " 이야기다. 다음과 같다. 전생에 자신이 칠성장어였다고 믿는 소녀는 같은 반 남학생을 짝사랑 한다. 소녀는 몰래 소년이 사는 집에 침입하여 자신이 사용하던 탐폰이나 팬티를 벗어 옷장 속에 숨겨 놓기도 하고 소년의 침대 위에서 자위를 하기도 한다(하루키스럽지요잉?). 이때 소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일까, 소년의 아버지일까, 아니면 소년의 어머니일까 ? ㅡ 여기까지는 오토가 남편과 섹스를 통해 임신한 이야기의 전반부다.

​

가후쿠는 이야기 속 소녀는 아내이고 소년은 자신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가후쿠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장면과 소년의 집에서 소녀의 자위를 훔쳐보는 소년의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외도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이 사실을 모른 척한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생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가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내의 외도를 외면한 것이다. 다음은 그녀가 다른 남성과 섹스를 통해 잉태한 이야기다( : 불륜남은 차 안에서 남편 가후쿠에게 자신이 그녀와의 잠자리를 통해서 듣게 된 이야기 후반부를 들려준다). 소녀의 자위 행위를 훔쳐본 자는 누구인가 ?

​

소녀의 자위를 훔쳐보고 있던 사람은 소년이나 소년의 가족이 아니라 도둑이었다. 도둑이 그녀를 강간하려하자 소녀는 연필로 도둑의 오른쪽 눈을 찔러 죽인다. 시체를 방에 두고 황급히 소년의 집에서 빠져나온 소녀. 다음날, 소녀는 살인 고백을 하려 하지만 소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녀를 대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 만약에 소년이 정말로 모르고 있다면 살인은 소녀의 환상이었을까 ? 전반부가 가후쿠와 오토가 합작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불륜남과 오토가 합작한 이야기'다. 남편인 가후쿠는 전반부 이야기에서 소녀가 사랑한 소년이 자신이라고 믿었지만 후반부 이야기에서 소녀가 사랑한 소년은 자신이 아니라 불륜남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

반대로 소녀를 강간하려고 했던 도둑이 가후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가후쿠는 의사로부터 왼쪽 눈에 녹내장이 진행 중이어서 차후에 실명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데 오토가 만든 후반부 이야기에서 도둑은 가후쿠와 마찬가지로 왼쪽 눈을 찔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토의 이야기에서 전반부와 후반부가 상이하게 다른 이유는 그녀가 접촉하는 타자의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후쿠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아내도 자신 못지 않게 남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편의 외면은 아내의 외도와 같은 강도의 고통이라는 사실. 남편은 비로소 죽은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

​

고통이라는 감정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명이라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입장 바꿔 타자가 되어 보기. 타자성의 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

​

​

​

1) 주체성의 반대 개념이 타자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

멜로의 핵심은 " 먼 곳 " 이다. 김추자는 위스키와 말보로 레드로 숙성시킨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던가. 님은 먼 곳에 있다고, 영원히 먼 곳에 있다고 말이다. 이 기본 설정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멜로는 멜로가 아니라 메로나다. 예를 들어 봉천동에 사는 남자와 바로 옆 동네인 신림동에 사는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재회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다. 무릎 나온 츄리닝 입은 봉천동 남자가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제 막 목욕탕을 나온 신림동 여자와 우연히 재회한다면 ? 참.... 애틋하시겠다. 애틋혀.
 

사는 바닥이 좁아서 오고 가다 자주 만나면 그것은 텔레토비요, 갑돌이갑순이새마을농어촌문예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텔레토비는 얼라들이나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니들이 사랑을 알어 ?? 텔레토비가 꼬꼬마들이나 보는 방송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시야를 확장시켜야 한다. 멜로의 격정적 서정은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 그것이 멜로의 공식이다. 그래야 두 남녀 간에 < 거리감 > 가 생기니까. 거리감 때문에 헤어지고(여기에는 심리적 거리감도 포함된다), 거리감 때문에 그리워하다가, 그 아득한 거리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이 거리감이 멜로의 이야깃거리이다.

​

노라 애프런 감독이 연출한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머무는 거주지가 각각 시애틀과 뉴욕이라는 설정(시애틀과 뉴욕은 극과 극에 위치한다. 거리가 3875km) 또한 멜로와 거리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멜로의 원형은 단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저승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먼 거리가 어디 있을까. 반면에 봉천동 남자와 옆 동네 신림동 여자의 운명적 격정 멜로는 좀 우습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갈라파고스 ? 남극 ?? 우리에게 가장 먼 곳은 북한이다.

​

한국인에게 있어서 북한은 달나라보다 먼 나라다. 2019년에 방영된 명랑멜로코믹드라마 << 사랑의 불시착 >> 은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의 사랑을 다룬 멜로 드라마다. 제작진은 " 멜로 = 거리 " 라는 공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 남녀가 사랑을 한다 ? 이 설정에서 출발한 장거리 연애는 현실성 없는 만화적 상상력(웹툰의 서사)을 더해 무리없이, 뜨겁게 녹여내는 데 성공한다. 현빈과 손예진의 앙증맞은 연기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북한 동네 에미나이와 군부대 간나새끼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현빈 - 손예진의 알콩달콩만큼 알콩달콩하다.

​

특히 도덕 없는 남조선 에미나이 손예진의 호박씨 까는 연기와 북조선 간나새끼 표치수의 후라이 까는 전쟁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입말의 장관이다. 이 드라마는 한심할 정도로 상투적이기는 하나 바로 그 맛이 이 드라마를 살렸다. 불량식품은 저렴한 맛으로 보니깐 말이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S.E (2disc)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나카타니 미키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숙자로 보이는 50대 여자가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무차별적 폭행에 따른 피살로 보인다. 그녀 이름은 마츠코. 영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의 주인공이다. 인생을 얼마나 험하게 살았길래 마츠코는 사람들에게 혐오스런 여자로 낙인이 찍혔을까 ? 마츠코 고모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쇼는 그녀가 남기고 간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살았던 발자취를 따라간다.

​

그녀는 중학교 교사로 첫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제자가 저지른 절도 사건을 감싸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교직에서 물러난 후 홧김에 가출을 한다. 이 잘못된 선택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후폭풍으로 돌아올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다자이 오사무를 동경했던 첫 번째 남자는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마츠코가 보는 앞에서 기차에 투신하여 자살을 하고, 두 번째 남자는 유부남으로 불륜 관계를 유지하다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세 번째 남자는 사창가의 핌프다. 마츠코는 그와 돈 문제로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칼로 찔러 죽인다. 그들과의 관계가 나쁜 쪽으로 더 나쁘게 끝날 때마다 마츠코는 습관처럼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

​

마지막 남자는 마츠코가 교사로 있었던 학교 제자(절도 사건의 주범)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채웠으니 마지막 단추를 제대로 채울 리 없다. 그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 나쁜 남자(불량 학생)는 더 나쁜 남자(야쿠자)가 되어 그녀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녀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온몸을 바쳐 헌신했지만 처절하게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영화 속 남자들은 철저하게 여자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신파를 정조준한 여성 잔혹사-서사의 전형을 따른다. 이 영화는 루비 구두와 에메랄드 시티 그리고 노란 벽돌길과 마법사 오즈가 등장하지 않는 < 오즈의 마법사 > 다. 마츠코는 성인이 된 도로시다. 그녀가 집을 떠나 겪게 되는 " 사랑 찾아 삼만리 이야기 " 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

교사로 시작해서 불륜녀, 매춘부, 살인자로 폭주하는 마츠코의 약사는 얼핏 보면 혐오스러운 일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츠코는 상냥하고, 명랑하며, 밝은 마음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의 잘못이라고는 선택의 연속된 실패뿐이다. 마츠코는 사랑에 실패할수록 더욱더 사랑에 집착하는데 그럴수록 더더욱 최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면 상처는 반대로 차곡차곡 쌓이는 법. 마츠코의 실패는 타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라 나(마츠코)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츠코를 누구보다 혐오했던 것은 마츠코다. 마츠코는 자기혐오에 빠진 인물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타자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사랑을 쟁취하고자 치열하게 분투하는, 실패를 거듭하는 루저의 서사가 눈물 나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관계가 비로소 끝이 보일 때 희망을 얻듯이,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듯이, 마츠코는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절망할 때마다 실낱같이 환한 희망을 갖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12월에 내리는 폭설처럼 펑펑 울면서 소리쳤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외쳤다. " 간바레 !!! 마츠코 짱!!!!!!!!!!! " 눈물이...... 앞을 가린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가난이란 무엇일까 ? 언젠가 나는 가난한 계급에 대하여 이런 정의를 내렸다 :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소리를 들킨다. 알쏭달쏭한 문장 같지만 독일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하이리히 뵐의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를 읽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궁상맞은 가난한 부부 이야기다.
 

2차 대전이 끝난 1950년대 독일(1952년). 프레드와 캐테는 좁은 단칸방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중년 부부다. 남편은 전화 교환수 일을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돈이다. 부부가 사는 빌라는 벽이 얇아서 방음 효과가 없다. 아이들은 집주인 눈치를 보느라 숨죽여 노는데 익숙하다. 부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이 잠들면 부부는 몰래 부부관계를 가지고 싶지만 신음소리가 옆방으로 샐까봐 몸만 달아오른다. 문제는 옆방에 사는 이웃이다. 그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섹스를 한다. 끼루루루룩.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는 마치 부산 앞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소리 같다.

​

옆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니 부부는 난감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숨기고 싶은 소리조차 사람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남편은 이 환경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생활하고 있다. 숙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지인들의 집에 빌붙어 산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다시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절망 속에서 아내는 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부부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마지막으로 한 챕터를 더 쓰기로 구상했지만 포기한다. 작가 또한 끝내 아무 말(글)도 하지 않은 셈이다. 지독하게 궁상맞은 부부 이야기이지만 신파로 흐르지는 않는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정갈한 문장으로 뽑아내는 작가의 실력이 탁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리를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 일이다. 십대 때 집을 나와 가출을 한 적이 있다. 꽤 오래 가출 생활했는데 돈이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탕아에게 야단을 치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 밥은 먹었니 ? " 나는 짧게 대답했다. " 네 ! " 그때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들키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들킨 셈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밥상을 차리셨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완다
바바라 로든 감독, 마이클 히긴스 출연 / 키노필름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탁자 위에 컵이 있다. 컵에는 우유가 담겨 있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가까이서 촬영하는냐, 멀리서 촬영하는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 장면을 멀리서 찍으면 흔해 빠진 풍경이다. 어떤 이는 탁자 위에 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극장 스크린이 꽉 차도록 탁자 위에 놓인 컵을 클로즈업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 클로즈업은 관객을 집중시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

이 기술을 탁월하게 사용하는 감독이 바로 히치콕이다. 영화 << 의혹 >> 에서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몰래 죽이려고 한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양파남, 까도 까도 의심스러운 남자. 남자는 몸이 아파 침실에 누운 아내를 위해 따듯한 우유 한 잔을 침대 옆에 놓고 사라진다. 걷는 것조차 어딘지 냄새가 난다. 감독은 우유가 담긴 유리컵을 극장 스크린 전체를 덮도록 클로즈업한다. 관객은 생각한다. " 이 새끼, 독을 탔구나." 이처럼 클로즈업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가 사람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연기력이 형편없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 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크린 속에서 확장된 얼굴은 오로지 경지에 다다른 배우에게만 허용된 거리'다.

​

일본 영화 << 종이달 >> 에서 미야자와 리에는 대학생과 바람이 나서 은행 돈 10억을 횡령한 유부녀를 연기한다. 팜므파탈, 조선의 저잣거리 입말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쌍년 ! 관객이 돈을 횡령하고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는 저팬니즈 팜므파탈에게 감정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권선징악이라고 하지 않던가. 악인은 반드시 응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관객은 나도 모르게 젊은 남자와 섹스에 미쳐서 은행 돈을 횡령한 유부녀의 도주를 응원하게 된다. 감독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관객과 쌍년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

미운 정도 정이라고 관객은 점점 리카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 연민의 팔 할은 미야자와 리에의 압도적 연기에 있다. 감독이 자신 있게 리에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미야자와 리에가 젊은 남자에 미쳐서 은행 돈을 횡령한 유부녀 은행원을 연기했다면, 배우이자 감독인 바바라 로덴은 영화 << 완다, 1971 >> 에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여기저기 떠도는 가난한 여성을 연기한다. 더군다나 그녀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지능도 낮아 보인다.



​

주인공 완다의 얼굴을 정지 화면으로 잡은 마지막 장면은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슬픈 얼굴이었다. 지금도 완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영화 << 완다 >> 는 미국 독립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 편이다.

​


​라마바바라 로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