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있는 의자다. 예쁘다. 공공 기구라기보다는 조형물에 가깝다. 의자 신분에서 조형예술로 승격했으니 몸값도 비싸보인다. 의자계의 샤넬 ? 이 의자 하나를 만드는 비용이라면 최소한 일반 공원 벤치 의자 10개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예쁜 디자인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기괴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끄러운 돌로 만든 의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 ① 평면이 아니라 달걀처럼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울어진 좌석인 셈이다.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들(임산부나 노약자)은 엉덩이가 의자에서 미끄러지기 쉽다. 의도는 명확하다. " 오래 앉아 있지 말라 ! " ② 하물며 이 의자에 눕지도 못한다. 노숙자를 배제하기 위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 노.... 숙자여, 눕지 마라 ! "
③ 여기에 팔걸이나 등받이도 없다. 허리가 안 좋은 노인에게는 일어나는 데 무리가 따른다(팔걸이와 등받이는 앉거나 설 때 팔의 지지대 역할도 담당한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런 의자가 개인 소유 건물 안에 설치되어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의자가 국가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 시설이라면 문제가 있다. 이 의자 디자인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되었다면 공공 시설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여러분, 이런 의자를 보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지 말라. 이 의자를 보다가 문득 학폭 문제로 떠들썩했던 아이돌 가수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얼굴 뒤로 숨은 잔인한 진실.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이 연출한 << 엣 더 벤치, 2024 >> 는 주인공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뭉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섯 에피소드로 역은 옴니버스 영화다. 주인공이 누구냐구 ? 공원 벤치'다. 특별한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고, 특별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이신 공원 벤치는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 상담소 역할을 하고, 또 어떤 날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노숙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장시간 머무는 집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공원 나무 의자)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
이 글에서 첫 번째 소개한, 조형물에 가까운 의자가 배타적 악의를 품은 의자라면 영화 속 낡은 나무 벤치는 포용적이다. 전자는 적대이고 후자는 환대다. 벤치는 도시의 선물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옆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좋은 거리란 비싼 점포가 즐비한 곳이 아니라 벤치가 많은 곳이다. LA보다 뉴욕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다. 거리의 벤치다. 그리고 성수동 거리보다는 내가 사는 동네 거리가 더 아름답다. 오늘도 내가 사는 동네 벤치에 앉아 낙엽이 떨어지는 풍경을 보며 시집을 읽다가 집에 왔다. 좋은 동네다.
바닥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