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 과 集 :
집중과 영혼 : 80 페이지 OF 1011페이지
- 이 글은 1011페이지 중에서 80페이지까지 읽고 쓰는 리뷰이다
김영민철학 에세이 << 집중과 영혼 >> 이 도착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주마간산으로 책을 훑다 보니 80페이지 정도 읽었다. 읽기가 만만치 않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잔뜩 졸았는데, 옴마 ! 의외로 재미있다.
김영민은 열중과 집중을 분리한다. 그는 동물이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는 것은 가능하지만 차분하게 집중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열중은 짐승의 몰입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몰입일 수는 있으나 집중은 동물에게는 없는 " 극히 인간적인 태도의 형성 " 이라고 말한다. 열중과 집중이 모두 사전적 의미로 몰두, 골몰, 몰입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단어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김영민은 열중과 집중을 굳이 분리한 것일까. 라임을 살리기 위해서 ??! 오케이, 여기까지.
곰곰 생각했다 : 열중은 한자로 熱中이다. 여기서 한자 熱은 더울 열'이다.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쏟다 보면 몸에 열이 오르는 경험은 모두 다 경험했으리라. 열중한다는 것은 몸에서 열을 발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열중은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과도하게 태우는 몰입이다. 표범이 얼룩말을 잡기 위해서 엄청난 힘을 발산하듯이 말이다. 순간의 힘은 인간보다는 동물이 우수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영민은 열중과는 상반된 개념으로 집중을 선택한다. 집중은 한자로 集中이다. 여기서 한자 集은 나무 위에 새들이 모여있는 형상을 본 뜬 글인데,
집중할 때 발생하는 몰입은 열중할 때 발생하는 몰입과는 성격이 다르다. 후자(熱中)가 위로 치솟는 " 뜨거운 몰입 " 이라면 전자(集中)는 내려서서 달라붙는 おちつく " 차가운 몰입 " 이다. COOL하다. 가성비와 열효율'을 놓고 보자면 쿨한 몰입이 오래간다. 한자 < 熱 > 을 集과 비교하면서 세세하게 분석하면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음을 나타내는 글자 埶 : 예,열'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글자 아래 灬 : 타는 불 이 붙으니 불에 활활 타는 나무의 형상이 된다. 열은 위로 상승하지만 쇠락하고 몰락하는 이미지다.
반면에 < 集 > 은 무성한 나뭇가지 위에 새들이 모여있는 형국을 나타낸다. 새들이 많이 모이는 나무일수록 건강한 나무이다. 왜냐하면 새똥은 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새들이 나무에게 해로운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영민은 지속 가능한 몰입을 위해서는 열중보다는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영민은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하나 마나 한 소리이지만 동물들은 차분하게 집중하지 못한다. 굳이 집중과 비견할 만한 것을 끄집어내자면 열중이 있을 따름이다(67쪽) " 고 말한 후 " 인간들은 장구한 진화의 세월 동안 어느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해졌다. 차분함의 강도, 지속성, 그리고 그 차분함과 결부되는 지향의 일관성 등에서 유례가 없는 동물이다(72쪽) " 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소심하고 과묵했던 비행기 조종사 설리의 차분하고 균형 잡힌 태도를 소개하며 그를 모범적인 " 캡틴 COOL " 이라고 평가한다. 쉽게 말해서 김영민의 공부법은 가늘고 길게 살자는 주의'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10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달랑 80페이지만 읽고 나서 이해한 대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 집중과 영혼 >> 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생경한 단어가 많고,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서 저자가 새롭게 한자를 조합했기에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읽고 나면 배움은 큰 편이어서 불만은 없다. 재미있다. 이번 달은 이 책과 함께 보내야 할 것 같다.
덧 ㅣ 김영민은 서언에서 " 인간만이 절망 " 이라고 고백한다. 이 말은 박노해가 " 사람만이 희망 " 이라고 말했던, 쌍팔년도 흥남부두 격정 신파에 대한 김영민식 쿨한 대응이다. 이것이 힙합 정신이다. 나는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총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했다. 이제 더 이상 새벽은 오지 않겠구나.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진짜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생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인간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인간에 대한 희망의 빛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