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드 시 잡 는 다 :
트랙터가 아우토반을 달려야 할 때
설경구의 반대말은 백윤식이다. 설경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과장된 연기를 펼칠 때 백윤식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목석처럼 서 있다(나는 설경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 _ 라고 외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메소드 연기의 정석이라고 칭찬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느끼하다. 연기 그따구로 하면 안된다).
연기 스타일만 놓고 보자면 : < 백윤식 > 은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이다. 액션(연기는 액션이다)이란 리액션이 받쳐 줘야 훌륭한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리액션이 뛰어난 배우와 연기를 한다는 것은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마라톤 선수와 같다는 점에서, 송강호와 함께 연기하는 배우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연기 꿈나무에게 백윤식은 꽤 훌륭한 페이스메이커는 아니다. 그는 한국판 포커 페이스이자 스톤 페이스(버스터 키튼의 별칭이다) 이다. 설경구가 매소드 연기(물론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를 한다면 백윤식은 맹맹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반면에 < 성동일 > 은 익살스러운 몸짓과 얼굴 표정으로 광대 연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다. 정색을 한다기보다는 약방에 감초 역할을 한다. 그는 한국판 조커 페이스이다. 그런데 그가 선보이는 익살에는 매우 독특한 측면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 칼 " 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성동일은 스치듯 지나치는 찰나의 표정을 섬세하게 혹은 섬뜩하게 연기할 줄 아는 배우이다. 이런 배우들은 범죄 영화 끝자락에 나타나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배신자 역할이 금상첨화이다. 만약에 투 페이스, 그러니까 포커 페이스(백윤식)와 조커 페이스(성동일)가 짝패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면 두 사람은 환상의 커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도는 커플이 될까 ?
영화 << 반드시 잡는다, 2017 >> 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백윤식이 돈만 밝히는 구두쇠 영감을 연기한다면 성동일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은퇴한 형사 영감을 연기한다. 시작은 참담하다. 초반 30분 동안 나는 이 영화를 계속 볼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끝낼 것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투 노스페이스 노땅페이스의 조합이 그닥 불꽃 투혼으로 타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은 추격 스릴러 장르에서 감독이 두 어르신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 권장 속도 시속 130km 이상'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는 아우토반을 최고 시속 10km인 트랙터가 달려야 할 때, 감독은 어떤 전략을 취할까 ? 모름지기 추격 스릴러라면 시속 200km를 달리는 듯한 속도감 : 속도의 쾌감은 반드시 스피드를 높일 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모짜르트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조건 볼륨을 높여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박자다. 조르주 앙리 클루조의 << 공포의 보수, 1953 >> 과 리콜라스 윈딩 레프의 << 드라이브,2011 >> 은 박자가 느려도 박자를 제대로 맞추면 훌륭한 속도감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을 활용해야 할 터인데
감독이 과연 달리다가 시동이 꺼지기 일쑤인 고물 트랙터 두 대를 가지고 그런 속도감을 낼 수 있을까 ? 조금만 달려도 폐병 환자처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고물 트랙터, 백윤식과 성동일은 < 본 아이덴티티 - 시리즈 > 처럼 싱싱이와 생생이의 아우토반 활주로 액션 율동극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감독은 낡은 트랙터 두 대를 가지고 속도감 있는 추격전을 재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일찌감치 속도전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이 단점을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 문제(고독사, 노인 차별, 노인 혐오 따위)에 집중해서 사회적 어젠다를 도출하는 데 성공한다. 영리한 셈법이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점은 뒤로 갈수룩 백윤식, 성동일, 천호진의 불꽃 튀는 어르신 연기가 좋다. 특히 천호진의 칼 같은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다 아는 우화이지만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최후 승자는 거북이다. 어찌 되었든 거북이는 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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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대기 ㅣ 영화제 때 GV(감독과의 대화 시간)를 몇 번 참가했다가 질문 수준에 경악해서 그 다음부터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감독님, 이 영화 흥행할까요 ? _ 라는 질문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다. 다음 질문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감독님, 혹시 좋아하시는 한국 음식이 있나요 ? 맙소사 ! 이러다가는 캔 로치 감독에게 두유노싸이 ? 라고 물을 판이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 댓글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 특정 지지자의 악성 댓글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 " 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품격을 갖춰 문학적 표현을 해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표현 방법이 없다. 그 기자에 대한 내 생각은 < 좆밥 > 이다. 댓글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는 기자의 고백은 < 기레기 > 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 담든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러다가는 검은색이 무서워서 간장 못 담근다는 소리도 할 판이다. 기자는 권력자를 두려워 말고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데 댓글 따위가 무섭다고 하니 그동안 제대로 된 기사는 썼을까 _ 라는 의문이 든다. 하여튼, 너는 좆밥이다. 좆밥아, 좆밥아, 사랑하는 나의 좆밥아..... 왜 사니 ? 다음날, 대통령 기자 회견에서 댓글 발언을 했던 기자가 후기 기사를 작성한 모양이다. 그 기사의 피날레는 다음과 같다. "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마다 수십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였다. 이후에 쏟아질 악성 댓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댓글이 무서워서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를 수십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일 정도였다면, 네티즌보다는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는 무서운 이명박근혜라는 거악 앞에서는 얼마나 많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까 ? < 썼다 > 라는 기자의 직업 윤리보다 < 지웠다 > 라는 비윤리적 기자 정신을 가진 자의 자기 검열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 썼다 > 라는 욕망이 < 지웠다 > 라는 욕망을 덮을 때 좋은 기자는 탄생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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