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억압
어떤 행위가 " 억압 " 이라고 느껴질 때 그것은 " 실패한 억압 " 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억압은 저항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날개가 달린 짐승과 같아서 언젠가는 추락하게 된다.
왜냐하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으니까.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와 얄개-들이다. 그들은 인류라기보다는 원생 조류에 가깝다. 반대로 피억압자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억압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칠 때, 투명 망토를 입은 억압은 성공한 억압이 된다. 저항 없이 진행되는 억압은 실패를 모른다. 독재자는 < 아우성치는 억압 > 보다는 < 소리 없는 억압 > 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독재자가 선호하는 폭력의 기술은 세뇌다. 최종 목적은 억압의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사회 " 통념 " 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 없이 당연시하는 것을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다 보면
권력자의 숨은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어르신, 참말로 꼼꼼하십니다아.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억압은 " 여성 억압 " 이다.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 여성 - 다움 > 은 대부분 남성이 여성을 협박해서 얻어낸 결과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애교는 이상한 요구처럼 보인다. 우리는 애교가 성인 여성이 갖춰야 할 필살기라고 여기지만 사실 애교 문화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잰더 독립을 당연시하는 국가가 보기에 애교 부리기는 성인 여성의 항문기 고착 증세처럼 보이거나 발달 장애 행동처럼 보일 뿐이다.
남성은 그렇다 쳐도 여성 스스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 경향도 세뇌의 결과'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여성에게 칭찬이랍시고 내뱉는 " 예쁘다 " 와 " 귀엽다 " 라는 말도 알고 보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성인으로 인식한다기보다는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한 결과'이다. 예쁘다와 귀엽다라는 단어는 모두 작고 어린 것을 지시하는 형용사'로, 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할 때 어른이 아이에게 사용하는 단어였다. 그렇기에 한국 남성들이 최근의 페미니즘적 경향에 대해 투덜대며 " 이런 것도 억압이냐 ? 이런 것도 혐오 발언이냐 ? 이런 것도 여성 차별이냐 " 라며
당당하게 반론을 내뱉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한국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이렇게 내뱉어야 한다. " 좆이나 뱅뱅 ! " 억압이 억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은 성공한 억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