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사과를 지켜보면서 :
간판은 작을수록 알차다
아버지는 간판을 그렸다. 그래서 나는 누구네 간판장이 둘째 아들'로 불렸는데, 어린 마음에 " 간판장이 둘째 아들(혹은 칠쟁이 -) " 이라는 호명이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노동을 < 그리다 > 라는 동사로 설명하는 직업군은 화가와 간판장뿐이요, 붓이 도구인 직업군 또한 화가와 간판장과 작가(혹은 글쓰는 직업군)뿐이니 아버지는 예술혼을 불태우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아버지는 간판 크기는 물론이요, 간판 글자 크기도 작아야 보기 좋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셔서 고객이 간판 크기를 대따, 졸라 쓰빽따끌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할 때마다 회의감에 빠지시곤 했다. 10평짜리 가게 주인은 10평짜리 간판을, 20평짜리 가게 주인은 20평짜리 간판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 하나 없는 주문이었다. 간판 크기가 클수록 단가는 올라가니깐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닥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예술가답게 고뇌에 찬, 우아한 속내를 드러내시고는 했다. 시바, 지랄이 풍년이구나. 천박하다, 천박해 !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꾸짖곤 하셨다. 간판 큰 게 보기도 좋고, 눈에도 잘 띠고, 남는 장사인데 뭐가 아쉬워서 저런다냐 ? 이렇게 아버지의 아트와 어머니의 상업성은 서로 대립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 작은 간판 예찬론 " 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작은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던 날이었다. 작은아버지 또한 아버지의 권유로 평생 간판일을 하셨던 분이었다. 서른 남짓한 일가친척들이 허허벌판에 가까운 선산에 내려가 장례 절차를 끝마치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자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한 분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 저기, 식당 하나 있네 ! " 설렁탕 가게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가게 간판은 백 리 밖에서도 보일 만큼 쓰빽따끌한 간판이었다. 문득, 쓰빽따끌한 간판을 혐오했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 쓰빽따끌한 간판이 예술적 가치는 없더라도, 적어도 광고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 맛집인가 보네. 간판이 대문짝만하니 말일세. "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맛은 형편없었다. 깊이도, 넓이도 없는 맛이었다. 그때 상주인 조카가 씁쓸하게 웃으면 말했다. " 아버지 말이 맞네. 간판이 크고 화려한 가게일수록 음식 맛 좋은 가게 없다고...... "
좋은 간판은 거리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거리와 풍경을 해치면서까지 눈에 띠는 간판은 상생을 모를 뿐더러 맛보다는 돈에 밝은 장사치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을 그 옛날 아버지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철수의 쓰빽따끌한 몰락을 지켜보면서 집채만한 간판으로 호객행위를 하던, 졸라 맛없던 그 설렁탕 가게가 떠올랐다. 안철수라는 빛나는 간판 하나 믿고 세워진, 믿을 거라고는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가 전부여서 집채만한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가게를 떠올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
루이비통 로고 폰트 크기가 클수록 그 가방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또한 같은 루이비통 가방일지라도 더 비싼 쪽일수록 로고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 안철수라는 대형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한 국민의당은 애초부터 상생을 염두에 둔 정당이 아니었다. 간판이 클수록 그 가게는 역사가 없고 맛도 없는 집이다. 쉬운 말을 에둘러 말한 것 같다. 쉽게 말하겠다. 안철수라는 간판, 이제 내릴 때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시바, 지랄이 풍년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