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에 대하여 동문선 현대신서 177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 동문선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빠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떠오른 책

 

 

 

                                                                                                            에스키모인에게는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의무가 있다. 설원에 쓰러진 자가 비록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해도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보살펴야 된다는 것. 극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관습법인 셈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가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봄 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몸을 추스린 원수(손님)는 그 집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 순간부터 집주인의 " 잠시 중지된, 혹은 유예된 복수 " 는 유효해진다. 그러니까 주인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보내는 환대는 환대인 듯 환대 아닌 적대이며 동시에 적대인 듯 적대 아닌 환대인 셈이다.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데리다는 이 상황을 환적(歡敵, hostipitality)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한다. 환적(歡敵, hostipitality)은 " 환대의 적대 " 라는 의미로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을 담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 환대라기보다는 조건부 환대인 것이다.

데리다는 전자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후자'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진보 진영으로부터 환대받은 적이 거의 없다.  당시 시민 사회와 진보 언론은 지지보다는 감시와 비판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난타를 당했다. 훗날, 노무현은 자기 편이라 믿었던 진보 진영의 벼린 칼끝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박근혜를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노무현을 비난하는 것은 안전하다. 박근혜를 비난하면 무시무시한 보복이 따르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하여,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노무현을 비난했다.

 

그것은 지적 우월성이 주는 쾌락이었으며 안전한 과시였다. 하지만 꽤나 용기있는 충언처럼 보였던 진보의 무차별적 비판 뒤에 숨은 고약한 심리는 노무현이라는 약자를 짓밟을 때 오는 우월감이었다. 그동안 문재인을 향했던 비난도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이 갖추어야 할 미덕은 비난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적 우월성의 증명이 아니라 따스한 환대'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땅에 든든한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 까방권(지지) " 을 만들었어야 했다. 진보 시민 사회의 감시와 비판은 허니문 기간이 끝난 후에도 충분하니깐 말이다. 우리는 싹의 뿌리가 땅에 내리기도 전에 물을 준답시고 수압이 높은 소방 호수로 물을 준 꼴이다.

 

노무현에게 필요했던 것은 소방 호수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이 아니라 물뿌리개에서 내리는 안개비'였으리라. 내가 문재인의 빠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떠오른 책이 바로 데리다의 << 환대에 대하여 >> 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하더라도 돌봄 기간 중에는 극진히 원수를 보살펴야 하듯이,  비록 당신이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 허니문 " 기간 중에는 증오를 멈추고 그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여, 나는 감시를 잠시 멈추고 조건부 환대의 방식으로 그를 맞이할 생각이다. 합리적 이성이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잠시 비이성을 선택2)한다

 

 

 

 

 

 

 

                                      

 

 

덧대기

 

 

2 )        합리적 이성을 위하여 비이성을 선택하는 방식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뜨거운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비이성의 소모적 열정이니까. 평상심을 잃고 기울어질 때 사랑은 시작된다. 모든 사랑은 비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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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5-1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바마가 가고 트럼프가 오듯이, 때론 박근혜가 가고 문재인이 온다.

2017-05-1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3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3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