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의 뒤통수를 때렸나





팔괘, 육효, 오행으로 앞날의 운수나 길흉을 따지는 점술(占術)을 믿지 않지만 신문 한켠을 차지한, 저 어두컴컴한 변방의 꾀죄죄한 구석에 자리잡은 " 오늘의운세 " 는 꼬박꼬박 챙겨 본다. 내 상황에 맞는 띠별/생년월일 운세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다. 우연히 남의 재물이 내 손안에 들어와 재물이 쌓이는 운이나 기인을 만나 화를 얻을 운세이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  처음에는 " 기인 " 을 " 귀인 " 으로 받아들여서 오늘 나의 하루가 운수대통이라 생각했으나 다시 보니 기인'이었다. 기이한 사람을 만날 운세라...... 오늘의 운세에 몸을 사릴 내가 아니다.

사전선거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향하다가 길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천 원짜리 종이돈이었다. 이게 바로 남의 재물이 내 손안에 들어와 재물이 쌓이는 운이로구나. 피식 _ 웃었다, 천 원짜리 종이돈도 재물은 재물이니까. 우연이었을까 ? 기분 좋은 마음으로 투표를 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한 번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이번에는 만 원짜리 종이돈이었다. 두 번 연속으로 우연한 행운을 잡자 문득 아침에 읽었던 오늘의 운세가 떠올랐다. 재물이 쌓이는 운, 재물이 쌓이는 운, 재물이 쌓이는 운...... 그때였다. 이번에는 오만 원짜리 종이돈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  나는 기쁜 마음'으로 냅다 돈을 주웠다 ㅡ


라고 말할 줄 알았지 ? 아니다. 행운이 세 번 연속으로 우연히 발생하자 나는 이 행운이 생시가 아니라 꿈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던 아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이런 행운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그때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했다. " 나야 만근이, 황만근 ! 국민학교 동창, 코찔찔이 만근이라고. 네가 항상 놀리고는 했잖아. 만 근이 아니라 돼지고기 반 근짜리 비계 새끼'라고 말이야 ? "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적의를 내품고 있었다. 그는 돼지고기 반 근짜리 비계 새끼'라는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다.

검게 탄 피부와 근육질 몸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는 오히려 도베르만 같은 사냥개를 닮았다. 만근이?  돼지고기 반 근짜리 비계 새끼 ???!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은 아니었다. 돼지꿈인 줄 알았는데 개꿈으로 끝이 나는구나. 꿈속의 만근이는 생글생글 웃더니 내 볼을 힘주어 꼬집었다. 아, 아아아 !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치자 돼지고기 반 근짜리 비계 새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되물었다. "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놈 ! " 낯선 사내의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내 볼을 스스로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감각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쎄에에에게 후려쳤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동요 퐁당퐁당 멜로디에 맞춰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곁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홍당안당 돌을 던지자 / 누구 몰래 돌을 던지자 / 똥물아 퍼져라 / 멀리멀리 퍼져라. 남의 재물이 내 손안에 들어와 재물이 쌓이는 운이나 기인을 만나 화를 얻을 운세이니......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안압으로 인하여 앞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의식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보험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 깨어나셨군요. 아까 의사 선생인 깨어나시면 진통제라며 알약 하나를 저에게 주시더군요. 일단, 삼키시고요... 네네, 아 _ 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님 뒤통수 난타 사건이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 이 사건과 관련된 사과 방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크, 시간이 됐군요. SBS 8시 뉴스입니다. " 그가 티븨를 켜자 중년의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사과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저의 직원으로 인해 상처를 받으셨을 피해자 가족과 피해 당사자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저의 직원이 사람을 혼동하여 뒤통수가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뒤통수를 후려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고의는 아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린 놈보다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어제 하루 종일 불편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님, 어제는 숙면하셨는지요 ?  당신이 속 편하게 달달한 잠을 주무실 때 저희는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아아, 그 불면의 밤을 생각하면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솟구쳐 오릅니다. 앞으로는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불철주야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문 낭독이 끝나자 보험회사 직원이 말했다. "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니 처벌 수위는 100만 원 미만의 벌금형을 받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법이라는 게 반성하면 감형 사유가 참작되거든요. 뒤통수가 깨진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억울하시겠으나 어쩌겠습니까. 실수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빡이 돌았다. " 아니, 저 시발놈이 그냥 앗, 나의 실수 _ 라고 한 마디 하면 끝이 납니까 ?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앞으로 후유증을 걱정해야 되는데 ? 그리고... 사과를 하는 놈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뻣뻣합니까 ? 그래, 시발놈아 ! 나, 그냥, 아주 잠에 골아떨어져서 3일 만에 깼다, 이런 시부럴...... "  

보험회사 직원은 별다른 반응 없이 사무적인 일처리를 끝마치고는 문을 열고 자리를 떠났다. 닫힌 문 너머 복도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홍당안당 돌을 던지자 / 누구 몰래 돌을 던지자 / 똥물아 퍼져라 / 멀리멀리 퍼져라. 티븨에서는 곰곰생각하는발 뒤통사 난타 사건을 두고 홍준표가 소속된 당과 안철수가 소속된 당이 협공으로 문재인이 소속된 당을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낮게 속삭였다. 니미, 조또...... 시바. 졸음이 몰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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