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시 한 끼 와 음 주 :
울지 않는 어깨
1일1식을 실천한 지 어언 1년 6개월이 지났다. 처음 2달은 허기에 지쳐 숨을 내쉴 때마다 " 허기(헉) 허기(헉) " 소리가 났다. 점심을 굶은 아이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수도물로 배를 채우듯이 물배를 채우다 보니 어느 순간 허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체가 상황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식을 실천하자 여러 모로 얻은 게 많았다. 점심값을 아낄 수 있었고, 점심 시간 1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고, 요요 현상 없이 몸무게를 10kg 정도 감량했으며, 혈압 약을 권고할 만큼 높았던 혈압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한 저녁은 1000칼로리의 황금 밥상을 선택하는 편이어서 포만감이 몰려오면 바로 잤다. 무엇보다도 9시가 되면 땡 하고 나타나는 박근혜 얼굴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 이 정도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다 동전 줍는 꼴이니 좋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음주'다. 주로 저녁에 술을 마시게 되는데 공복에 마시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취하게 된다.
주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탓이다. 남들은 이제 시작이다, 라는 표정으로 불콰한 얼굴로 기분 좋은 얼굴이 될 때 나는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 평소 저녁 9시에 잠을 자는 생활 습관과 일찍 찾아오는 취기 탓에 눈은 떴으나 잠을 자고 있는 것이요, 귀는 열렸으나 듣지 않는 상태가 된다. 짖어라, 나는 잘 터이니. 이때부터는 기억이 없다. 눈 뜨고 잠을 자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나갈 때는 주꾸미처럼 짧고 단단한 다리로 야무지게 땅을 밟던 걸음걸이도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문어처럼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소리 대신 흐느적거리게 된다.
어제는 s를 만났다. 소설가 김연수를 닮아서 만날 때마다 놀리는 데도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히죽 웃을 뿐이다. 나는 그에게 읽던 책-들'을 주었다. 그중에는 한강의 << 내 여자의 열매 >> 도 있었다. " 읽다가 형편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책이요. 이 책에서 드러난 작가의 형편없는 역량이 별다른 성장 없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면, 한강의 작품은 읽지 않을 생각이요. 한강보다는 두만강에게 기대를 거는 수박에. 농담이요. 문학소녀의 들뜬 감수성이 작품을 망치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읍니다. 좋은 가수는 아무리 슬픈 노래라 해도 울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읍니다. 왜냐 ? 울면 호흡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음정과 박자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지오.
우느라고 공기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게 되면 급하게 공기를 빨아들이게 됨니다. 고른 분배가 될 턱이 없조. 소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오. 작가에 감정에 빠져서 과소 호흡과 과다 호흡을 반복하게 되면 문장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한강의 소설이 대표적인 경우조. 한강은 울면서 노래를 부름니다. 적어도 이 소설집에서는 말이죠. 흠흠. " 나는 형편없는 발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 영화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보셨습니까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 연출했읍니다. 내용은 아시죠 ?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상태인 제자를 위해 스승인 복싱 트레이너가 제자의 부탁으로 안락사를 시킨다는 내용.
병원 장면, 가장 슬픈 장면이기도 하조. 관객의 눈물샘을 1리터만 뽑아내면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인 셈이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감독은 두 배우의 슬픈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는 대신 카메라를 돌려 트레이너(이스트우드)의 뒷모습를 보여줍니다. 우는 얼굴 대신 울지 않는 어깨을 보여준 것이죠. 왜 그랬을까오 ? 그것은 무뚝뚝한 남자의 우는 방식이 아니까오. 카메라는 뒤로 물러났지만 관객은 누구나 그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읍니다. 가장 슬픈 통곡은 대성통곡이 아니라 울음을 참느라 흔들리는 어깨가 아닐까요 ?
한강은 실패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성공한 지점입니다. 한강에게 필요한 것은 울먹이는 성대가 아니라 울지 않는 어깨입니다. " s는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우러러보았다. 그가 말했다. " 건대 ! 형편없는 목소리만 나이었다면 지금의 감독은 배가 나왔을 검니다(건배, 당신의 형편없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연설은 두 배의 감동을 선사했을 겁니다- 라는 뜻). " 나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낮게 소리쳤다. " 건대 ! 내 형편없는 몽소리를 위하여...... " s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도 외쳤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형편없는 목소리를 위하여 ! "
그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문어가 되지는 않았다. 두 다리는 주꾸미처럼 단단하고 빳빳했다. 전철 안 좌석이 텅 비어 있었으나 앉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와 맥주 1병을 샀다. 포장지를 뜯었다.그런데 명색이 김밥인데 김이 없고 흰 밥덩어리만 있는 것이다. 나는 기업의 비윤리성에, 브루스 윌리스도 아니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