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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물고기 - 연어 이야기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2월
평점 :
저절로 되어지는 것들은 무섭다 1
어느날 갑자기, 나는 속초로 향했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정은 신속했고 실천 또한 번개보다 빨랐다. 여행용 가방에 짐을 대충 꾸리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대기실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부동산 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내놓았다. 안양 충훈부 반지하 셋방. 십오 촉 알전구에 온기를 녹이던 곳. 미련 없이 떠났다. 당시, 속초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물이 바뀌면 피부 트러블과 함께 배앓이2 를 하고는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물갈이'를 한 적은 없었다. 익숙한 물비린내'였다. 그곳에서 1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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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딧물 하면 개미가 떠오르듯이, 연어 하면 떠오르는 짐승은 알래스카 불곰'이다. 불곰은 가을이 되면 수심 낮은 하천에 자리를 잡고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기다린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 연어 > 가 극지방 추운 나라에서 사는 어종인 줄 알았다. 내가 연어 떼를 만난 것은 늦겨울 끝자락, 혹은 이른 봄'이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고 속초 시내를 달리고는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 바다의 색깔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물속을 들여다보니 멸치 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은빛 물결은 황홀하였다. 은빛 물고기가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검은 물빛이 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내가 " 멸치 떼다 ! " 라고 소리치자 누군가가 되받아쳤다. " 저건 멸치 떼3 가 아니라 연어'라오. "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티븨에서 팔뚝 만한 연어만 보다가 멸치처럼 작은 연어를 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 연어 치어입니다. 양양 인공부화장에서 이맘때에 방류하지요. 저 녀석들은 잠시 동해에서 놀다가 북쪽으로 향하지요4 " 불곰이 없어도 연어는 있군요 ? 라고 묻고 싶었으나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고개만 끄덕이었다. 고형렬 시인이 10년에 걸쳐 연어의 한살이를 추적하며 기록한 << 은빛 물고기 >> 를 읽었을 때 속초와 양양 중간 어디쯤에서 발견했던 그 은빛 물고기 떼가 떠올랐다. 연어는 성장 시기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엘러번 alevin 과 프라이 fray 는 치어에 해당되고, 이보다 큰 어린 연어는 파르 parr, 어린 티를 벗고 청년에 되어 바다로 떠난 연어는 스몰트 smolt 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다에서 겨울 한철을 보내고 고향 산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그릴스 grilse . 끝으로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는 켈트 kelt 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본 연어는 프라이'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우선 이 책은 독특한 구석이 있다. 생태 에세이'로 읽어도 되고, 뛰어난 기행문이기도 하며, 웅장한 서사시 같기도 하다. 또한 잘 쓴 우화 소설'로도 읽힌다. 저자가 시인이다 보니 행간 속에 깊은 종교적 사유가 엿보인다. 가벼운 문장이 대세인 요즘에 웅숭깊은 문장을 접하다 보니 새롭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두 장, < 6 켈트, 그 장엄한 종생 > 과 < 7 허공 속의 지구, 그의 주극류 > 은 장엄하면서 아름답고 비애가 넘치는 장'이다. 심장 한쪽이 아련하게 젖어든다.
켈트마다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꼬리지르러미는 부서져서 허연 뼈가 드러나고 아가미와 입가에는 기생충이 달라붙고 버짐 같은 물곰팡이들이 피어나고 창자 속에는 세균들이 들끓는다.
382쪽
연어는 그렇게 상처투성이 몸으로 종생(終生)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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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부지불식간에 속초로 향했을까 ?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전생에 연어였는지도 모른다. 낙엽이 지는 늦가을에 태어났으니 늦가을에 속초로 돌아오는 연어를 닮았다. 옛 애인이 수련회 때 학생들을 이끌고 이곳에 며칠 머물렀으나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상처투성이 몸으로 속초를 떠났다.
1 제목 출처는 김훈의 문장에서 따왔다. 그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 저절로 되어지는 것들은 무섭다. 한줄기 조국 하천의 모성은 태평양을 건나간 내 자식들을 기어이 불러들여서 그 물냄새 속에서 죽고 또 태어나게 한다. 연어들은 그 하천의 모성에 투항하고 귀순한다. 과학의 지식을 녹여내고 또 넘어서서, 운명에 투항함으로써 운명을 완성하는 업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그 허무와 환희를 말할 때 고형렬의 글은 비통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2 어머니는 " 배앓이 " 라고 하지 않고 " 물갈이 " 라는 말을 쓰고는 했다.
3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7852 ㅣ 죽방멸치와 청춘
4 이 대사는 각색되었다. 그가 내게 한 말은 " 연어예요, 연어 ! "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