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의자는 얼굴과 같다. 당신은 수많은 의자를 만나겠지만 기억할 만한 의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 로스 러브그로브


의자 : 시인대장장이

 

                                    기억을 더듬어 복기하자면 : 학교 가는, 외딴 길목에 대장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장간 풍경은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겨진 오렌지 마멀레이드 빛'이었다. 내부는 15촉 알전구와 용광로에서 새어나오는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그곳은 제법 규모가 큰 대장간'이어서 대장장이 서너 명이 아침 일찍부터 망치질을 하고는 했다. ( 돌이켜 추측컨대, 여름에는 날이 더우니 새벽에 일을 시작해서 정오 무렵에 매조지했던 것 같다. )  새빨간 숯불에 쇠를 달구고, 둔탁한 쇠뭉치'를 망치로 두들기고, 이내 담금질을 한 후 다시 망치로 두들기면......    아,  반짝거리는 은빛 벼린 칼날이 되어 나오고는 했다. 풀무로 바람을 넣으면 뜨거운 불꽃'이 되고 뭉툭한 쇠뭉치는 벼린 칼끝이 되니니 !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잠시 넋을 놓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는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대장장이는 계절과는 관계 없이 늘 땀에 젖은 얼굴이었다. 종종 학교 선생이 대장쟁이'를 빗대서 학생들에게 말하고는 했다. " 등굣길에 대장간 하나 있지 ? 한겨울에도 땀 뻘뻘 흘리는 거, 공부 안 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된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이란 작자는 교육자로서 인성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나는 선생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장간 일은 꽤 근사한 일이었다. 대장장이는 연금술사'였고, 대장간은 뭉툭한 것을 뾰족한 것으로 만들고 거무퉤퉤한 잿빛을 은빛으로 만드는 세계'였다.

 

 

 

 

종종, 시골 오일장에서 대장장이가 바람과 불의 힘'으로 만든 재래식 칼(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테인레스 칼이 아닌 ) 을 볼 때마다 어릴 때 보았던 대장간 풍경이 아령칙하게 생각난다. 칼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재래식 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재래식 칼은 내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볍다. 특히, 거무퉤퉤한 칼등과 반짝거리는 칼날이 만나는 지점은 미학적으로 볼 때 훌륭하다. 아름다운 꽃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화려한 색을 가진 뱀은 맹독을 품고 있듯이, 대장간에서 만든 재래식 칼 또한 반짝거리는 부분일수록 날카롭다. 실패한 모든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스치면 베인다. 반짝거리는 것은 위험하다.

 

시인은 대장장이와 비슷하다. 일상 속에서 거들떠도 안 보는 단어 쪼가리'를 모아 용광로에 바람을 불어넣어 거무퉤퉤한 쇠붙이'를 만들고 천 번의 망치질과 천 번의 담금질 끝에 벼린 칼'을 만드는 과정이 시작 詩作 이 아닐까 싶다. < 詩作 > 란 둔탁한 쇳덩이를 두들기고 두들겨서 높이를 없애는 행위. 칼날은 오로지 길이만 존재할 뿐 높이는 없다. 시도 이와 같아서 좋은 시는 깊이가 있을 뿐 높이는 없다. 높이는 군더더기'다. 소설이 낱개비 성냥 '을 쌓아올리는 < 플러스 - 미학 > 이라면 시는 쌓아올린 젠가(genga) 조각을 하나둘 빼내는 < 마이너스 ㅡ 미학 > 이다. << 의자 >> 도 마찬가지'다. 의자'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데얀 수딕이 한 말이다. 의자'를 깊이 있게 관찰하다 보면 데얀 수딕이 한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의자는 뼈대만 남은 건축물이요, 발랄한 8분 음표 같다. 전자는 서사이고 후자는 서정'이다. 이 두 요소가 만나서 시적 운율을 만든다.

 

 

 

 

                                                                                                    에어로 샤리넨, 튤립 의자

 

내가 의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효율성도 큰 몫을 차지한다. 살림이 넉넉하다면 유유자적하며 루브르 미술관도 구경하고 피렌체 대성당에도 가고 싶지만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닌지라 일상 속에 스며든 의자로 대리만족을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 스타 트랙 >> 에서 우주선 조정실에 배치된 의자'가 그 유명한 에로 사리넨의 튤립 의자'가 변형된 결과'라는 사실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알바 알토, 스툴 60 의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영화 << 카모메 식당 >> 은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에 대한 헌정 영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 속 식탁은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 스툴 60   stool  :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서양식, 작은 의자 > 을 테이블로 확장한 디자인'이다. 의자가 식탁이 되었으니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비록 " 짝퉁 " 이기는 하나 스툴 60 디자인은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다.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일상은 거대한 미술관'이다. 굳이 세계 미술관 순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문화 혜택이다. << 스툴 60 의자 >> 를 볼 때마다 높이는 없으나 깊이가 있는 간결한 시'를 읽는 맛이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의자는 대부분 다리가 네 개일까 ?

 

곰곰 생각하다 보면 결국에는 인간의 다리가 두 개이기에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의자는 자신보다 몇 곱절은 무거운 인간의 두 다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네 다리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의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서 있는 시지포스'가 아니었을까. 여자의 일생은 눈물이 반이라면, 의자의 일생은 버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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