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 죽겠네
막히면 탈난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종편의 탄생은 건강 정보'가 범람한 계기'가 됐다. 가끔 종편 오락 프로를 보면 약 파는 약장수 프로그램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시오, 라고 하면 가시오가피'가 불티나게 팔리고, 오시오, 하면 오시오가피가 불티나게 팔린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막히면 뚫어야 한다. 뚫어야, 산다 ! 좋은 예로 변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변비 때문에 죽을 수도 있으니 끙끙 앓는 것보다는 차라리 방귀 뀌고 성질내거나 똥 싸고 성질내는 놈이 건강한 놈이다. 그만큼 막히는 구석 없이, 조이는 부분은 그때그때 풀어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 체질적으로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다 보니 내 머릿속은 항상 만성 변비'인 상태'다. 누구는 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전구를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되었는데 내 궁금증은 대부분 생뚱맞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곰곰 생각하면 " 궁금해 죽겠다 ! " 는 말은 생각'이 꽉 막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 변비 > 가 똥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괄약근 끝에서 머문다면, 생각이 날듯 날듯 날듯 날듯 날듯 하다가 날지 못하는 타조 같은 < 생각 > 은 머리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혓바닥 끝에서 맴돈다.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아니다, 못 들은 것을 해달라. 궁금해 죽겠지 ? 자음 < ㄹ > 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다가,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고, 결국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삐친다. < 갔다ㅡ 왔다 ㅡ 갔다 > 를 반복하는 형태'다. 이런 형태를 한자에서는 갈지자형(之)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zigzag 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한글 ㄹ, 한자 之, 알파벳 z는 모두 비슷하다. 특히 ㄹ 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회귀적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 ㄹ > 은 之 보다는 回 와 더 닮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고집'이 아니다. < ㄹ > 은 막히지 않고 순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운동성을 강조하거나 생동하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단어에는 ㄹ 받침이 많다. 바람은 ? 솔솔 불어오고. 수학 문제는? 술술 풀리고. 강물은 ? 졸졸 흐르고. 구슬은 ? 돌돌 구른다. 반면 < ㄹ > 이 절반으로 쪼개져서 < ㄱ > 이 되면 어둡고, 무겁고, 정지된 느낌으로 순환되지 못한 채 막힌 형상이다. 뭐랄까, 거무죽죽하고 칙칙하며, 적막하고 적적한 느낌. 벌써 이 문장 안에서도 < ㄱ > 은 강박적으로 반복되지 않은가 ? 누군가 앙칼진 말방구로 " 아예 추리소설을 써라, 소설을 ! " 이라고 비아냥거린다면 회심의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 ㄱ > 은 폐쇄음'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그 막은 자리를 터뜨리면서 내는 소리'가 폐쇄음이다. 그러니까 ㄱ 은 " 순간의 질식 " 을 경험한 적이 있는 글자'다. ㄱ 은 숨통이 막히는 경험, 이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다크한 존재'다. < 죽다 > 라는 낱말에는 숨통이 막힌 상태를 보여준다. 이 숨통을 틔우면 ㄹ 이 된다. < 살다 > 라는 단어를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살다'에서 < 살 - > 은 원래 움직임을 뜻하는 동사로 어떤 동작이 반복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구르는 바위를 짊어지고 산정상을 향해 올라야 하는 시지푸스적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삶 > 과 < 사람 > 이 < 살- > 과 닮았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 ? 한글을 만든 사람들은 인간이 일상의 반복'에 갇힌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카뮈는 << 시지프스 신화 >> 에서 구구절절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말했지만 한글을 만든 사람은 < 살 - > 이라는 단 한 글자'로 그 사실을 증명했으니, 카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한국인으로 귀화하지 않았을까 싶다. < 살다 > 와 < 죽다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인은 삶보다는 죽음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 삶과 죽음 " 을 한자로는 生死라고 하고, 영어로는 life and death 라고 하지만 한국말은 " 죽살이 " 였다. 어순이 다른 나랏말과는 다르다. 死 에 대한 강박은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죽기 살기로, 죽자 사자, 죽었다 깨어나도, 죽고 못 살다, 죽을 둥 살 둥, 죽지도 살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용용 죽겠지 ?! ( 우리 민족은 장난삼아 놀리는 말에도 죽을 수 있다니, How fragile we are ! )
외세의 잦은 침략과 탐관오리의 횡포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았던 옛사람들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옛사람 생각'을 하다가 눈물 닦고 주먹 쥘 때, 문득 그들은 살다와 죽다를 반대말'이라 생각하지 않고 같은 말'로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죽다 > 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 돌아가다 > 가 아닌가 ? 그러니까 " 돌아가다 " 는 gone 가 아니라 return 인 셈이다. 한국인에게 죽음은 자신이 웅크리고 있었던 태초로 돌아가는 것. 옛사람은 프로이트 이전에 이미 인간의 욕망에는 " 타나토스 " 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 지식인들이 지식인이랍시고 유학 가서 카뮈를 연구하고 프로이트 학파를 연구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글 구조만 제대로 파악했어도 지성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
철학을 공부하기 위한 첫걸음마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한글부터 떼야 한다 ■
덧대기
죽다'의 비속어로 쓰이는 표현은 뒤지다' 또는 뒈지다'이다. '뒈지다' 는 '두어'+'지다'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말로 '두어지다'의 줄임말로 볼 수가 있다. '두어지다'에서 '두어'의 원형은 '뒷다'로 '뒷'은 뒤(하)->뒷 으로 히읗 종성체언이 변형된 것이다. (참고:釋譜詳節석보상절 6-2, 히읗 종성은 기역소리로 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뒤'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뒤'는 방위로는 북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동물로는 곰을, 별로는 북두칠성을, 소리로는 우면조를, 성으로는 여성을 상징한다. 여성이나 곰으로 상징되는 '뒤'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땅과 연관지어 진다. 땅은 인간이 태어난 곳이며, 또 인간이 되돌아 갈 곳이기에 땅으로의 회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죽다'는 '뒤'에서 발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 북두칠성에 대한 별 신앙은 원시신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우리 민족이 북쪽의 별 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고아시아족의 원 거주지가 시베리아 부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별'이 쓰인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산의 봉우리 가운데 비로봉이라는 봉우리를 많이 보는데, 이 비로봉이라는 말이 별의 방언형인 '빌'에서 비롯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자기의 소원대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는 뜻의 '빌다'라는 말도 '별'에서 발전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고 온 고향 하늘 위의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뒤'는 시간적으로는 지나온 과거이며, 공간적으로는 두고 온 고향(시베리아 부근)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뒤지다'라고 하면 우리의 원거주지였던 곳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 된다. 즉, 현재의 삶이 아니라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 갔다는 말이다. 죽음을 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점에서의 삶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죽었다'의 존칭어로 쓰이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보더라도 이상의 학설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