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D] 남극일기
대경DVD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남극일기 : 집으로 가는 길


 

 

분리 불안 장애'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기 위해 떼를 쓰며 울거나 주인이 외출을 하면 불안해서 짖거나 주변 물건을 물어뜯는 개도 분리에 따른 불안 심리 상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건강한 사람'도 성장 과정에서 애착 대상( 주로 엄마)과 떨어지게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만약에 세 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헤어질 때 기뻐서 발광한다면 오히려 그 아이 행동이 이상 심리 증후'가 아닌지 의심을 해야 한다. 영화 << 엑소시스트 >> 는  겉으로는 " 엑소시즘 " 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심리적 밑바닥은 " 분리 불안 공포 " 이다. 다시 말해서 소재는 " 엑소시즘 " 이지만 주제는 " 분리 불안 장애 " 라는 말이다. 12살 소녀 리건은 첫 생리'를 시작하면서 귀신 들린 연기'에 몰입한다.

귀신 들린 연기'를 밑바닥 깊숙히 자리잡은 심리를 숨기기 위한 모방, 흉내, 시늉이라고 한다면, < 첫ㅡ생리 > 시점과 < 신경증 > 은 깊은 관계가 있다.  생리는 난자가 배란이 되어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 여성ㅡ몸'이 되었다는 현상이므로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육아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리건도 어머니와 동일한 가임기 여성'이다.  리건의 신경증은 바로 어머니의 육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이제 " baby " 가 아니라 " girl " 이다. 이때부터 리건은 극단적인 분리 불안 장애'를 겪는다. 그녀는 자기 몸이 가임기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 퇴행ㅡ모방 " 을 한다.  제일 먼저 선보인 퇴행 모방은 어른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보란듯이 그들 앞에서 오줌을 싸는 일'이다.

그 다음은 끊임없이 먹은 것을 입 밖으로 게운다. 먹은 것을 채 삭이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놓는다는 점을 과시해서 자신이 " 유아식 " 에 의존해야 하는 아기'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분리 불안 공포'를 좀더 과도하게 " 점프 컷 " 을 하자면 리건은 만삭인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 상태'다. 어머니는 자궁 밖으로 다 큰 아이를 밀어내려고 하고, 아이는 자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순간이다. 반면, 영화 << 캐리 >> 는 << 엑소시스트 >>  와는 정반대'이다. 이 영화에서 분리 불안 장애'를 겪는 사람은 딸이 아니라 어머니'다. 캐리 또한 리건처럼 (나이에 비해 늦은) 첫-생리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캐리는 처음에는 생리 혈'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캐리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분리'를 희망한다.

 

영화 << 엑소시스트 >> 와 << 캐리 >> 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영화 << 사이코 >> 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형성된 " 케미 " 를 다룬다. 노먼 베이츠는 망상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유예시켜서 어머니와의 분리'를 지연시킨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몸이지만 그는 이 사실을 부정한 채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어머니는 화면 밖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 식욕 " 에 대한 강박'이다. 미라처럼 비쩍 마른 노먼 베이츠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를 " 더러운 식욕 " 이라고 비난하거나, 거실에 장식된 박제된 새를 이야기하면서 " 새는 엄청나게 먹어대거든요. " 라고 비난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살해된 여성의 이름이 " 마리온 크래인 " 이라는 사실'이다. crane'은 학'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가 마리온 크레인'에게 쏟아낸 새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그녀를 향한 비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라와 박제가 속이 텅빈 기표하는 점에서 그는 어머니 육체와는 정반대에 속하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풍만한 육체를 비난함으로써 어머니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형이 풍만한 여성이 아니라 미라나 박제처럼 바짝 마른 여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행위'다. 노먼 베이츠는 항상 엄마에게 칭찬받기를 원하는 " 인정 욕구 " 에 시달리는 미성숙한 아이'이다. 그는 행실이 좋지 못한 암컷을 제거한 후 흔적을 없애기 위해 그녀를 자동차와 함께 늪에 빠뜨리는데, 늪은 끈적끈적하고, 질척거리며 시커멓다는 의미에서 아브젝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거대하며 기괴한 자궁'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영화 << 남극 일기, 2005 >> 는 탐험대 대원 유지태(민재 역) 가 크레바스(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빙하지대의 갈라진 틈)에 떨어져 추락할 위험에 빠지지만 대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위 화면을 자세히 보면 여성 음부를 닮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크레바스'가 여성 음부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점 그리고 균열로 인해 빙하 표면에 생긴 갈라진 틈'이라는 점에서 탐험대를 위협하는 " 크레바스 ㅡ 공포 "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여성성'을 설명하면서 끌어들인 " 아브젝션 " 개념과 유사하다. 이 개념이 " 밀려남과 밀어냄을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이며 쪼개지고 갈라지고 분열된다는 의미1 " 를 나타나기에 < 크레바스 ㅡ 공간 > 은 아브젝션의 성소인 < 코라 ㅡ 공간 > 과 동일하다. 갈라진 틈'은 집어삼키는 기괴한 자궁'이자 모태'인 장소이다. 

프로이트'는 < 언캐니 unheimlich > 개념을 설명하면서 " 낯선, 기괴한, 이상한 "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unheimlich'의 언어 구조에 대해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접두사 < un- > 을 < heimlich > 를 억압한 증거로 보았다. 그러니까 낯선 대상은 사실 한때 친숙한 것의 변형이라는 말이다. 좋은 예가 < 언캐니 밸리 효과 > 이다. " 로보트학자인 모리 마사히로 씨가 발표한 이론으로 인형, 만화 캐릭터, 그림, 로보트과 같은 인공체들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호감은 상승하지만 인간과의 유사점이 어떤 특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호감도가 급격하게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프로이트는 heimlich : 집과 같은, 친숙한' 에서 < heim > 이 " 집 " 이란 사실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이로제 환자들은 여자의 성기가 그들에게는 왠지 이상하게 두려운 것으로 느껴진다고 종종 호소하곤 한다. 그러나 이때의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여자의 성기가 인간이 태어난 옛 고향heimlich을,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태초에 한번은 머물렀던 장소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생긴다. 흔히 우스개 소리로 우리는 < 사랑은 향수병 heimweb > 이라고 말하지 않은가. 어떤 이가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조차 < 여기는 내가 잘 아는 곳인데, 언젠가 한번 여기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라며 장소나 풍경에 대해 생각을 할 때 이 꿈에 나타나는 공간이나 풍경은 여인의 성기나 어머니의 품으로 대치해서 해석을 할 수 있다.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따라서 이 경우에도 집das heimische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된 것이다. unheimlich(두려운 낯설음)의 접두사 un은 이 경우 억압의 표식이 될 것이다.

 

- 프로이트, Das Unheimlich(1919) 열린책들 < 창조적 작가와 몽상 > 중

 

 

그렇기에 << 남극 일기 >> 에서 말하는 " 도달불능점 " 이라는 장소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친근한 것이고, 친근한 것이지만 아주 오래된 집(모태)이며, 친숙한 장소이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낯선 장소이며,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 생명의 근원 " 인 자궁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송강호(최도형 역)를 탐험 대장으로 한 남극 탐험대 6인은 도달불능점'이라는 곳을 정복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다. 이곳은 6개월은 낮만 계속되고 6개월은 밤만 계속되는 곳'으로 지형적 특성을 보여줄 만한 높이의 고저가 없다. 그저 새하얀 평원이 끝없이 펼쳐질 뿐이다. 그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곳은 가장 높은 정상이 아니라 가장 먼 평원의 한 점이다. 그곳은 남위 82도 8분, 동경 54도 58분에 위치한 곳으로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나침판 없이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계곡도 없고 골짜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꽃도 없고 호수도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영하 80도에 달하는 혹한 때문에 바이러스가 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끝없는 우주를 연상케 한다. 

 

 

이들은 탐험 과정에서 하나 둘 실종되거나 사고로 죽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탐험대장 송강호는 직진 본능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1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환영에 시달리다 미쳐간다. 그는 왜 지도에는 있지만 지도 없이는 갈 수 없는 한 점'에 집착하는 것일까 ?  어쩌면 탐험 대장 최도형이 보이는 집착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만든 퇴행인지도 모른다. 노먼 베이츠가 어머니에게서 분리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면 탐험대장 최도형'은 도달불능점이라는 코라( 모태와 태아가 분리되지 않은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둘 다 동일한 심인'이 작동한 결과'다 ■


 





 

  1. 줄리아 크리스타바의 경계선의 철학, 고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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