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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한스와 도라 ㅣ 프로이트 전집 8
프로이트 지음, 김재혁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말과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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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면 당사자인 선수에게 빠데루 한 판 당하겠지만, 나는 " 레슬링 " 경기를 볼 때마다 뭔가 우스꽝스러웠다. 빠떼루 자세도 그렇고 유니폼 디자인도 이상했다. 움푹 파인 어깨 끈은 교묘하게 남성 유두를 돋보이게 만들고 남근 또한 도드라진다. 그뿐인가. 엉덩이 골도 적나라하여 앞에서 봐도 민망하고 뒤에서 봐도 민망하다. 온가족이 즐겁게 스포츠를 관람하기에는 뭔가 좀...... 섹시하기보다는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권투나 유도 경기 같은 격투 경기와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내 눈에는 자꾸 " 싸움 " 이 아니라 " 러브 " 처럼 느껴졌다. 코헨 형제가 연출한 << 바톤 핑크 >> 는 레슬링 영화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극작가 바톤 핑크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것은 동성애 코드'였다.
코헨 형제는 민중 봉기를 다룬 연극 대본으로 유명해진 바톤 핑크를 동성애자( PINK : 좌파, 빨갱이, 동성애자 ) 로 설정한 후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름을 핑크( FINK : 파업 파괴자, 경찰관 ) 로 만든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관계처럼 바톤 핑크의 내면이 pink라면 외면은 fink이다. fink는 매카시 광기'로 상징되는 동성애 사냥을 피하기 위한 가면 장치'이다. 들뢰즈를 인용하자면 " FINK ㅡ 되기 " 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를 숨긴 채 << 보이 러브 : boy love >> 대신 << 보이 파이트 : boy fight >> 인 레슬링 영화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동성애 공포'다. 주인공 바톤 핑크는 곤경에 빠진다. 그는 pink이지만 fink를 찬양해야 한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7084469 : 자세한 내용은 사랑의 빠떼루'에서
<< 머니볼 >> 과 << 카포티 >> 를 연출해서 평단으로부터 " 꽤 " 인정받은 베넷 밀러 감독이 만든 << 폭스캐처 >> 또한 올림픽 레슬링'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공교롭게도 << 바톤핑크 >> 처럼 동성애를 다룬다. 동성애 코드'가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존 듀폰과 마크 슐츠 사이에 오가는 동성애적 감정 교류 혹은 존 듀폰의 일방적 동성애 지향 로, 서사 진행에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들은 유사 부자 관계에 놓여 있다. 마크 슐츠는 유사 아버지'인 억만장자 재벌 존 듀폰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문제는 존 듀폰이라는 병약한 억만장자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있다. 그는 아버지라는 자리'에 앉기에는 남성성이 결여된 미성숙한 존재'다.
마크 슐츠 마크 슐츠는 형에게서 벗어나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지만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형의 도움이 간절하다. 마크 슐츠에게 있어서 형은 아버지이면서 애증의 관계이다 처럼 존 듀폰은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보이후드(레슬링 선수들)을 지배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흥미를 갖는 데에는 존 듀폰의 신경증이 프로이트가 저술한 << 꼬마 한스 >> 와 병례가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 영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프로이트의 << 꼬마 한스 >> 에 푹 빠져 봅시다. 다섯 살바기 꼬마 한스는 " 말 공포증 " 에 시달린다. 한스는 우연히 말이 쓰러져 죽는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한 후, 말이 자기 " 고추 " 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당시 마차가 교통 수단이었던 거리를 다닐 수 없었다.
프로이트는 이 아이에 대한 치료를 진행하면서 꼬마 한스가 말과 아버지를 동일시했다고 주장한다. 항문기에 흔히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 아들이 어머니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에 근거한 생각, 원망, 감정의 복합체.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 는 한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에 골몰할 때 우연히 말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 " 아버지 = 말 " 을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공포증은 바람이면서 동시에 죄의식'이 겹쳐진 형태로 나타난 증후였다. 영화 << 폭스 캐처 >> 에서 억만장자 존 듀폰'는 항문기인 꼬마 한스를 닮았다. 생후 8개월 ~ 5살 기간에 형성되는 시기를 항문기'라고 하는데 존 듀폰은 이 또래 사내아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를 탐닉한다.
그에게 있어서 레슬링은 " 스포츠 " 라기보다는 " 놀이 "에 가깝다. 그는 돈을 주고 보이후드의 골목대장'이 된다. 또한 그가 억만장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갑차와 기관단총은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는 꼬마아이들이 장난감을 수집하는 것처럼 비싼 전쟁 무기를 모은다. 그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아이'인 상태로 고착된다. 그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콤플렉스)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보이후드들의 코치'가 되고 싶은 이유는 자신에게 결여된 남성성, 나아가 " 아버지의 자리 " 를 획득하고 싶었다는 데 있다. 그가 항문기 고착 장애 환자'라는 것은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말을 경멸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프로이트의 다섯 살바기 꼬마 한스와 존 듀폰을 동일 인물로 본다면 존 듀폰의 어머니와 애착 관계에 놓인 말은 아버지'를 상징하는 토템이다.
마크 슐츠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듀폰이 승마 우승 황금 트로피로 장식된 진열장을 치우고 대신 소박한 레슬링 메달을 놓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말에 대한 애증은 존 듀폰의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던 말을 모두 풀어주는 장면 다음에 장갑차에 장착할 기관단총을 클로우즈업으로 연결한, 계산된 편집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것은 일종의 상징적 아버지 살해 욕망'이다. 그는 말 눈알'을 찌른 에쿠우스'다. (상징적으로) 말을 죽임으로써 오이디푸스 욕망은 (상징적) 실천했지만 이미 어머니는 죽은 다음이기에 이 욕망을 실패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실제로 존 듀폰이 어릴 적에 말을 타다가 낙상을 당해 성불구자가 되어 동성애자가 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은밀한 소문이 떠돌기도 했었다.
영화에서는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지만 그가 왜 말을 경멸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꼬마 한스로 돌아오면, 꼬마 한스는 여자에게는 난폭하게 구는 반면 남자에게는 또래 아이를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존 듀폰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형적인 항문기 고작 장애 환자'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참고한 텍스트에는 반드시 프로이트의 << 꼬마 한스 >> 가 포함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우선 이 영화는 세 명의 주연 배우가 펼치는 연기가 압권이다. 채닝 테이텀은 잘생기고 몸 좋은 배우라는 내 편견을 없애버렸고, 스티브 카렐은 놀랄 만한 변신을 했다. 아무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았다면 존 듀폰를 연기한 배우가 코미디 배우가 스티브 카렐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마크 러펠로의 연기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슐츠 형제로 나오는 러펠로와 채닝 테이텀이 펼치는 레슬링 장면은 연기에 의한 " 액션 " 이 아니라 실제 레슬링 선수들이 펼치는 몸 감각'이어서 깜짝 놀랐다. 베넷 밀러 감독, 앞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감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