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생방 훈련에 대한 기억 ㅣ 명량과 레테
내 군 보직은 조교였다. 맡은 과목은 사격과 화생방'이었다. 키 크고 자세 나오는 놈은 주로 총검술 조교로 빠졌고, 나처럼 자세 안 나오는 놈은 화생방 조교로 빠졌다. 판초 입고 방독면 쓰고서 새벽 안개처럼 자욱한 화생방실을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되니 굳이 칼 군무 자세가 필요한 영역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인성이나 원빈 같은 조교는 주로 총검술이나 태권도 과목을 맡았고, 나머지 오징어와 꼴뚜기 같은 조교는 사격 조교가 되어서 사격장 안에서 깃발 흔들며 탄피나 줍거나 아니면 화생방 유령이 되어야 했다. 나는 둘 다 했다. 하루 종일 사격장 안에서 총소리를 들어야 해서 나중에는 고막이 찢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내가 앓고 있는 " 이명 " 도 그때 생긴 병이다.
그래도 사격 조교는 화생방 조교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화생방 훈련을 하게 되면 화생방 조교는 미리 화생방실 안에 들어가 불을 피워야 한다. 그리고 화학 캡슐을 통 안에 넣으면 지옥의 가스'가 피어오른다. 물론 이 과정을 방독면 쓰고 하지만 방독면이라고 해서 100% 독가스를 차단하지는 못한다. 훈련병들이야 3,4분 있다 나오면 되지만 화생방 조교는 7,8시간을 화생방실 안에 있어야 한다. 이 짓을 훈련 있을 때마다 날마다 한다고 해 봐라 ! 유투브에서 우연히 진짜 사나이 화생방 실습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방송을 보니 화생방실 내부 시야가 너무 좋다. 군대 나온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화생방실 안으로 들어가면 매캐한 연기로 인해 앞이 잘 안 보인다.
추측컨대 : 방송에서는 화학 캡슐 3개 태울 것을 1개만 태운 것 같다. ( 지금은 잘 모르겠으나 내가 사용했던 옛 화학 캡슐(cs탄)은 연기가 심하게 났다. 더군다나 화생방실 작은 쪽창 하나가 전부였고, 내부는 모두 검은색으로 칠해서 안은 무척 어두웠다. ) 방송에서는 핸리'가 화생방실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잠그지 않았지만 실제 훈련에서는 나갈 수 없다. 문 앞에는 죽음의 문지기가 방독면을 쓰고 지켜보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그곳에서 버텨야 했다. 하지만 고통은 잠깐이다. 1분 정도 지나면 견딜만 하다. 내가 화생방 조교를 할 때는 훈련병들에게 주로 " 어버이 노래 " 를 부르게 했다. 독단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부대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지침이었다.
훈련병은 어버이 노래를 부르며 펑펑 울고는 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물 먹은 습자지처럼 늘어졌다. " 지이인 자아아아아리이이이이이.... 마, 마마마른 자아아아아리리이이이이... " 몇몇 과정을 거치고 나서 밖으로 나간 훈련생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내가 어두컴컴한 화생방실 안에서 오징어 같은 유령으로 지내면서 목격한 흔한 장면은 훈련병이 공포를 쉽게 잊는다는 점이었다. 화생방은 매우 짧은 시간에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주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죽음과 같은 공포는 1분 정도이고, 나머지 시간은 해방'이었다. 안에서 울며불며 공포에 떨던 훈련병들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서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시간이 흘러 사회인이 된 훈련병들은 그때 일을 추억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느 순간 그때의 공포는 잊혀지고 추억만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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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나도 화생방실 안은 독가스가 스며들어서 항상 역한 냄새가 났다. 숨을 쉬기가 불편했고 눈과 피부는 따가웠다. 고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집합 장소는 늘 훈련이 끝난 화생방실'이었다. 고참들은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머리를 박았고 닥치는 대로 맞았다. 방독면을 쓰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몰라서 소원 수리'를 긁는다 해도 주범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바로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40분 정도 ?! 정말 공포스러웠던 장소가 화생방실'이었다. 얼차례를 받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모든 것은 " 군기가 빠졌다 " 로 통했다. 화생방실 안에서 우리는 주먹 불끈 쥐며 폭력을 저주했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잊어버렸다.
군모의 작대기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어두컴컴한 화생방에 불을 피우며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던 일은 쫄다구들이 했지만 나는 자주 방독면을 쓰고 그곳을 찾았다. 내가 집합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 집합 " 을 건 이유는 간단했다.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에서였다. 폭력은 그런 식으로 되물림되었다. 방송을 보다가 문득 대한민국 국민은 화생방 실습을 한 훈련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절규하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웃고 떠들다가 이내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은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으나 정치가는 눈물이 마른 지 오래되었다. 박근혜는 다시 인기리에 박근혜 드라마를 선보이고, 새누리당은 보란듯이 9회말 2아웃 만루 홈런을 때린다.
고통스러웠던 4.16은 지워지고 그 자리를 7.30 대승이 자리잡았다. 지금 8월 극장가는 거친 물살에 잡혀서 배가 침몰하는 해양 재난/전쟁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1000만 찍고 1500만을 향해 순항 중이다. 사람들은 " 진짜 재난 " 은 잊고 " 가짜 재미 " 에 열광한다. 나는 명량이라고 쓰고 레테'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