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다리잘띠네 씨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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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개는 " 골든 리트리버 " 다. 말이야 < 골든 ~ > 이지, 하는 짓으로 보면 < copper : 구리 > 에 가깝다. 원래 리트리버는 온순한 성격인데 이 개는 무척 사납다. 특히 식사 중'에는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 소개가 늦었다. 이 개 이름은 " 봉다리잘띠네 " 다. 얼마 전에 < 쩍쩍이 > 에서 < 봉다리잘띠네 > 로 개명했다. 비닐 봉투만 보면 흥분해서 마당을 뛰어다닌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봉다리(만 보면 좋아서) 잘 뛰네'다. 혹자는 우아한 프랑스 이름이나 카메룬 사람 이름 같다고 착각하는데 우리말'이다. 그렇다면 왜 봉다리잘띠네 씨'는 봉다리만 보면 흥분해서 뛰어다닐까 ? 비니루 패티시즘'이라도 있는 것일까 ? 아마, 내 말을 듣고 나면 당신은 봉다리잘띠네 씨'에 대해 연민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봉다리잘띠네 씨'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에 갈 때는 항상 구멍가게에 들려 개가 먹을 주전부리를 사고는 했다. 새우깡, 천하장사 소세지, 비비빅 따위'다. 먹거리를 비닐 봉투에 담아 오니 봉다리잘띠네 씨'에게 봉다리는 화수분이다. 어머니도 이에 동참한다. 외식 후 남은 고기를 비닐 봉투에 담아 챙겨 오신다. 그래서 봉다리잘띠네 씨는 봉투만 보면 미치게 되었다. 아, 불쌍한 봉다리잘띠네 씨 ! 너의 절편음란증은 다 내 잘못이다. 용서하거라 ! 봉다리잘띠네 씨는 살아오면서 사건 사고가 많았다. 돈봉투를 물어뜯은 적이 있고, 내 노트북을 발톱으로 북북 그어서 산 지 얼마 되지 않는 신형 노트북이 " 그지 " 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교회 바자회 때 쓰려고 준비한 참기름 통을 엎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일반 석유통 크기에 가득 담긴 참기름이었으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에게 죽도록 맞았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메주를 담그기 위해 무공해로 키운 짚단을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구해왔는데 짚단을 담은 소쿠리에 똥을 싸서 그때도 뒈지게 맞았다. 그뿐인가 ?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던 배추 위에다가도 똥을 싸서 따귀를 맞았다. 서랍 속에 넣어둔 농약을 삼킨 적도 있다. 그 무거운 걸 들고 새벽 거리를 뛰어다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동물 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 응급실로 뛰어가서 응급 수술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실화'다. 접수처 직원은 당연히 그럴 수 없다고 했으나 나는 그 사람 멱살을 잡을 뻔했다. 다행히 24시간 운영하는 동물 병원을 찾아서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고 있던 슬리퍼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뛰어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오른발에는 슬리퍼 대신 개똥이 왕창 묻어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렇게 해서 살려냈건만 봉다리잘띠네 씨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가 가장 무서워하고 존경하는 인물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절대 신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잘띠네 씨는 황송해서 발라당 드러누우며 오줌을 찔끔 싸기도 했다. 그 다음 서열은 진공청소기'였다. 다음은 전기모기채, 샤워기 꼭지, 라이터 순이었다.
라이터 같은 경우는 무서워한다기보다는 짜증을 냈다. 불을 켜는 시늉을 하면 물어뜯었다. 라이터 다음이 바로 < 나 > 였다. 나는 집안에서 서열이 꼴찌였다. 삼백 원짜리 라이터보다 못한 존재라니 ! 그래도 나는 봉다리잘띠네씨'를 사랑해서 근사한 개집을 장만했다. 벨기에 제품으로 조립식 개집이었다. 무공해 제품으로 개집치고는 꽤 비싸게 주고 샀는데, 개새끼 ! 아.... ( 흥분을 가라앉히자. 개집 얘기가 나오면 야마가 돈다. 이해하시길... ) 잘띠네 씨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개집에 들어가 잔 적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땅바닥에서 잠을 잔다. 불쌍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화장실에서 재웠는데 이제는 아예 화장실이 자기 집인 줄 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잘띠네 씨는 화장실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 있다.
그리고 변기통을 식수대로 사용한다. 정수기 물을 떠 주면 콧방귀도 안 뀐다. 오로지 화장실 변기 물만 마신다. 그래, 시바 ! 원효대사님도 시체 썩은 물 드시고 득도 하셨지. 봉다리잘띠네 씨는 이제 곧 좋아서 마당을 미친듯이 뛰어다닐 것이다. 신기하다, 식탐이 많아서 나를 보면 으르렁거리고, 내가 사 준 집은 거들떠도 안 보지만 밉지 않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봉다리만보면잘띠네 씨'는 달달한 걸 무척 좋아한다. 작년 여름에 먹은 비비빅이 백 개가 넘는다. 여름 보양식으로 날마다 한두 개씩 주다 보니 그리 되었다.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공산당선언문에서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 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문장을 살짝 바꾸자면 " 봉다리잘띠네여, 단걸 그만 먹어라 ! " 라고 말하고 싶다. 살찐다. 어찌 되었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뛰어다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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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 이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쓴 건데 까먹고 지나갈 뻔했다. 봉다리잘띠네 씨'는 < 단어 > 를 알아듣는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개처럼 40개 단어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은 아직 없지만 한 개 단어'만큼은 구별할 줄 안다. " 벌레 " 라는 단어'다. 내가 잘띠네 씨에게 " 벌레 어딨어 ? " 라고 물으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 털을 곤두세우고는 벌레를 찾는데 주로 벽을 쳐다본다. 못자국이라도 있으면 벌레인 줄 알고 살핀다. 봉다리잘띠네 씨'가 < 벌레 > 라는 단어를 학습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거미 한 마리가 벽에 붙어 있었다. 일반 거미가 아니라 타란튤라처럼 생긴 거대한 거미였다. ( 과장이 아니다. 산 아래 달동네에 살아서 이상한 벌레가 자주 출몰한다 ) 내가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지며 잘띠네 씨에게 벌레 ! 벌레 !!!!! 라고 외치자 호기심이 왕성한 잘띠네 씨가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냅다 삼켰다. 독거미가 확실했다. 잘띠네 씨는 삼키자마자 거미를 토해내며 뒤로 자빠졌다. 그 다음부터 " 벌레 " 라는 단어만 나오면 흥분한다. 복수하겠다,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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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도 한 마리 키운다. 고양이 이름은 " 사색이 " 다. 봉다리잘띠네 씨와는 달리 사색 씨'는 나를 좋아한다. 사진집을 보고 있는 그윽한 눈동자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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