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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다큐 - 우주비행사가 숨기고 싶은 인간에 대한 모든 실험
메리 로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세계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앨버트'를 추모함
" 앨버트. 앨버트, 엘버트. 아, 불쌍한 앨버트...... " 앨버트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바스라진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진화생물학자 굴드는 질질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범인을 폭로하는 추리소설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지만 나는 질질 끌다가 이 글 마지막에 가서 고독한 생을 살다가 쓸쓸하게 죽은 앨버트 약사 略史 를 소개하고자 한다. 눈물샘은 잠시 거두자. 실컷 울기 위해서는 먼저 웃어야 한다.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한 존재는 웃지 않는다. 웃을 필요가 없다.
깃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 상품'이다. 깃발은 바람 없이는 펄럭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뿐더러 가격도 저렴하니 " 깃발 " 하나 정도는 구비하는 게 좋다. 심심할 때 깃발을 꽂으면 바람을 구경할 수 있다. " 그대 이름은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 " 그뿐인가 ? 깃발은 풍향계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쓰임새가 다양하다. 하지만 달나라로 이사를 가거든 깃발은 챙길 필요 없다. < 달 > 에는 대기가 없으니 당연히 바람도 없다. 달나라 달방 앞에 태극기를 꽂아 보았자 깃발은 삼백육십오 일 내내 볼품없이 축 늘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김선태의 시 < 개불 > 을 인용하자면 " 물을 빼고 나면 형편없이 쫄아들어 쪼글쪼글해지고 마니, 그참 영락없이 사정 후 뭣 같 " 은 모습으로 말이다.
지구인이 달에 " 달방 " 을 얻어 이사를 갈 때 지구에서 쓰던 살림을 그대로 옮겼다가는 난처한 일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지구에서 사용하던 살림은 모두 지구 중력을 염두에 둔 세간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중력이 없기에 고정되지 않은 물체는 둥둥 떠다닌다. 우주 의자는 의자다리가 네 개일 필요도 없고, 우주 접시는 평평할 필요도 없다. 우주 시대'가 열린다면 세간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우리는 중력이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 중력 > 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주 항공 과학자다. 과학 분야 탐사 저널리스트 매리 로취의 << 우주 다큐 >> 는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비행사와 우주 비행 훈련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룬다.
미소보다는 냉소'가 주무기인 매리 로치는 " 멋지다, 신난다, 태권브이 우주비행사 만만세 ! "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지구는 독수리 오형제가 지키지 우주비행사가 지키는 게 아니다. 우주비행사는 직업인이지 영웅이 아니다. 그녀는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 집중한다. 우주 비행사 후보자들은 과연 어떤 테스트를 받게 될까 ? 심사위원들은 용기와 카리스마, 혹은 희생 정신과 불타는 애국심 따위에 높은 점수를 줄까 ? 우리가 생각했던 모범 답안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후보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종이학 1000마리 접기 따위'다. 비행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용기와 애국심 따위가 아니라 끈기와 인내'다. 그들이 우주선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나사를 조이거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수다를 떠는 게 전부다. 매리 로취는 시작부터 우주비행사에 대한 환상을 깬다. 그들이 하는 훈련은 대부분 꾀죄죄한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우주 달나라 여행을 떠난 이소연 씨'는 사실 우주비행사'라기보다는 우주선 승객'에 가깝다. 대한민국 애국심 마케팅이 이소연을 우주 영웅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한국 언론은 호들갑을 떨며 우주 훈련을 철인3종 경기처럼 묘사했지만 이소연 씨는 어쩌면 하루 종일 종이학만 접었을지도 모른다. 전영록의 종이학'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을 ~ 남 몰래 울먹이며 전해 주던 너. 못 다했던 우리들의 사랑 노래를...." 어쩌면 노래를 부르다가 울컥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는 눈물'조차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일단 먹고 싸는 것부터가 문제'다.
우주 멀미로 인해 구토를 하게 되면 위에서 쏟아낸 토사물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우주비행사가 들숨을 쉬는 과정에서 식도나 코로 들어가 호흡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위액(위산)이 묻은 토사물이 눈에 들어가게 되면 치명적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중력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이어트나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은 솔깃하다.
내장이 흉곽 윗부분으로 이동해 어떤 다이어트로도 만들 수 없는 잘록한 허리선을 만들어준다. 나사의 한 연구자는 이를 < 우주 미용 용법 > 이라고 불렀다. 무중력상태에서는 머리카락이 풍성해진다. 가슴도 처지지 않는다. 중력 상태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체액이 머리로 이동하여 눈가의 잔주름도 펴진다. 혈액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은 상체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몸은 체액이 너무 많다고 판단해서 수분의 10~15%를 배출한다. (127쪽)
미용과 다이어트에 고민하는 한국 여성이라면 당장 짐 싸서 우주행 이민 신청을 할지도 모른다. 축 늘어진 젖가슴을 싱싱한 계란 노른자로 만들어 준다고 하니 이 아니 기쁠쏘냐만 말이란 끝까지 들어야 한다. "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얼굴은 퉁퉁 붓고 다리는 새처럼 가늘어지게 한다고 하여 ' 부은 얼굴, 닭다리 증세 ' 라 부르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 " 그렇다, 모든 현상에는 < 작용 - 반작용의 법칙 > 이 있듯, 모든 미용 용법에는 < 작용 - 부작용의 법칙 > 이 따른다. 당신은 < 잘록한 허리와 중력을 무시한 달걀 노른자 가슴 체형 > 과 동시에 < 얼굴과 상체는 하마인데 다리는 학다리인 타조형 > 체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우주에서 남자는 항상 거시기가 서 있는 상태가 된다. 축 늘어진 거시기'는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이다.
우주 공간에서는 팔이 자연스럽게 < 앞으로 나란히 - 자세 > 가 된다고 한다. 팔이 이 지경이니, 뼈도 없는 거시기는 발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 앞으로 나란히 " 가 된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정력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남성이 이 글을 읽고 우주 달나라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 작용-부작용의 법칙 > 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싶다. 중력이 없는 공간이다 보니 남녀가 서로 붙어 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설령 붙어 있다고 해도 나무늘보처럼 굼뜰수밖에 없다. 성질 급한 한국인에게 우주 공간은 열불 나는 곳이다. 섹스는 그냥 지구가 제일 좋아요 ! 이 책은 온통 이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 우주 다큐 >> 라는 제목 대신 << 중력이 없으면 >> 이라는 제목을 달아도 이상할 게 하나 없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기구하고, 슬프고, 다크하고, 아스트랄하며, 고독했던 앨버트 生에 대해 심심한 애도를 표하련다. 그렇다고 박근혜처럼 두 눈 부릅뜨며 눈물을 짜낼 필요 없다. 눈물은 방앗간에서 짜내는 참기름이 아니니까. 고승덕처럼 길거리에서 대성통곡한다고 학을 뗄 필요도 없다. 종이학 천 마리 접으면 학이 되리니 ! 그냥 이 글을 읽고 촉촉한 눈물 한 방울만 흘리면 된다. 지구에서 눈물은 위험하지 않으니까. 앨버트는 몸집이 작은 아이였다. 몸무게가 고작 4킬로그램으로 기저귀를 찬 아이였다. 기껏해야 두세 살이나 되었을까 ? 1948년, 앨버트는 로켓에 실려 우주로 발사되었다. 가가린, 존 글랜, 루이 암스트롱 이전에 앨버트가 있었다. 앨버트는 눈앞에서 광활한 우주 공간을 목격한 최초의 우주인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미소 냉전시대, 우주 경쟁이 낳은 비극이었다.
앨버트는 가가린이나 암스트롱과는 달리 기저귀를 찬, 의사 결정조차 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었던가 ! 앨버트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로켓에 실려 캄캄한 우주 공간에서 2분 동안 떠 있다가 지구로 추락했다. 물론 앨버트는 여행 소감을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초조한 심장 박동과 거친 호흡을 모니터한 기록이 전부였다. 아아, 인간이란 이토록 잔인하도다 ! 긴 말 하지 않으련다. 심심한 애도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참고로 앨버트는 로켓에 탑승한 붉은털원숭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