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이 영국에서 만든 무성 영화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감독한 극장용 영화는 대략 60편 정도'다. 여기에 티븨용 영화가 20편이니 대략 80편 정도를 만든 꼴이다. 참말로 부지런한 감독이다. 티븨용 영화를 제외한다면, 내가 본 히치콕 영화는 30편이다. 영국에서 만든 초기 무성 영화들은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하품이 나왔지만 오로지 히치콕 영화 목록에 V 표시를 하겠다는 의지로 억지로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 허세 " 는 개가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서 뒷다리를 들어 오줌을 싸는 꼴이어서 쓴웃음이 나온다. 한때, 나는 시네필들이 히치콕이 헐리우드 황금기 시절에 만든 60년대 영화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마다 일침을 놓고는 했다. " 너희들, 1926년에 만든 무성영화 < 쾌락의 정원 > 보았니 ? 안 봤다고?! 맙소사, 감독 데뷔작도 안 본 주제에 무슨 히치콕 팬이냐 ? "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Stranger on a Train, 1951 > 은 내가 중2병에 걸려서 장근석 허세 스타일을 완벽하게 완성하던 시절에 본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이스미스 장편소설 < 낯선 승객 > 을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소설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범죄 소설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뽑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히자만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와와, 하다가 중간에는 어어, 하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에는 우우, 했다. 실망이 컸다. 심지어는 히치콕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주먹 불끈 쥐었다. 일단, 출연 배우들이 그닥 매력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히치콕 감독도 이 영화를 주력 상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실패한 작품이군 ! " 나는 웃으면서 코 팠다.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유투브에 한글 자막이 깔린 이 영화가 돌아다니길래 " 밑져야 본전 " 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 ㅡ (으) " 자 자세로 침대에 누워서 보았다. 5분 정도 보다가 마음이 通하지 않으면 < 하이눈 > 으로 갈아타리라. 영화가 시작되면서 카메라는 택시에서 내리는 두 사람의 발걸음을 로우 앵글로 잡는다. 생각보다 좋았다. 5분이 지나자 나는 " ㄴ ( 니은 ) " 자세로 황급히 고쳐 앉았고 결국에는 " ㅣ (이) " 자세로 뻣뻣하게 일어나 새벽에 기립박수를 쳤다. 10년 만에 다시 본 <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은 10년 전에 내가 본 그 영화가 아니었다. 꾀죄죄하고 쩨쩨하던 코찔찔이가 어느새 삐까삐까한 놈이 되어 동창회에 나온 꼴이다. " 놀라서 다시 본다 " 는 극찬은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 아니라 이 영화에 헌정해야 할 듯 싶다. 도대체 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원래 레이몬드 챈들러(였)다. 챈들러는 원작 줄거리가 히치콕이 제시한 줄거리( 트리트먼트 : 시나리오가 아닌, 대강의 줄거리 요약 ) 보다 우수하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며 개똥같은 소리를 하자 히치콕은 박차고 일어나 그 자리를 나왔다. 늘상 술에 취해 비틀거렸던 챈들러가 히치콕 뒤통수를 향해 " 뚱땡이, 망나니, 서해 짠 바다 뻘에서 놀던 개불같은 자식 ! 넌 커봐야 십 센티야, 이 자식아 !!!! " 라고 소릴 질렀다. 결국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시나리오는 폐기처분되었고 무명에 가까웠던 첸지 오먼드가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히치콕은 첫 기획 회의 시간에 챈들러가 쓴 원고를 집어들고는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리는 시늉을 하면서 쓰레기통에다 원고를 버리는 " 죽은 쥐새끼를 쓰레기통에 버리기 - 쑈 " 를 해서 챈들러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 아, 위대한 챈들러를 이런 식으로 모독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
결과만 두고 말하자면 : 나는 하이스미스의 열렬한 팬이며 동시에 레이몬드 챈들러 소설도 좋아하지만 히치콕이 무명 작가인 첸지 오먼드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들은 모두 오먼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실 오먼드가 시나리오를 쓰기는 했으나 사실 히치콕의 머릿속에 떠도는 이미지를 오먼드가 베꼈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이다. 히치콕에게 중요한 것은 서사'가 아니라 기술'이었다.
이상한 짝패 관계인 가이와 브루노는 " 지킬과 하이드 " 를 빼다 박았다. 그들은 " 영혼을 서로 교류하는 - 더블, 러버, 도플갱이, 일란성 쌍둥이 " 다. 브루노는 가이의 " 어두운 마음 " 을 반영하는데, 그는 도덕적 검열 때문에 금지된 가이의 욕망을 거침없이 실천하는 쾌활한 하이드'이다. 아마도 히치콕 영화 속 악당 가운데 브루노만큼 매력적인 악당은 없을 것이다. 브루노는 < 케이프 피어 > 에 나오는 맥스 캐이디(로버트 드니로 역) 와 < 사냥꾼의 밤 > 에 나오는 미치광이 전도사(로버트 미첨 역)를 반반 섞어놓은 캐릭터'이다. 무엇보다도 이 이상한 짝패 영화는 동성애적 코드로 묶여 있다. 그 유명한 테니스 경기 장면에서 관중들은 공을 따라 고개를 기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는데 브루노는 경기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정면만 응시한다. 다음 경기에 나서는 가이'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일편단심 민들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는 엄마로부터 손톱 손질(매니큐어를 칠한 것처럼 보이는... )을 받는 마마보이'이며 새처럼 재잘거린다. 반면 테니스 선수인 가이는 매력적인 이성애자 역할이지만 이 역을 소화한 팔리 그레인저'라는 배우는 실제로 게이'였다. 그는 히치콕이 48년도에 만든 < 로프 > 에서도 상대 배우인 존 달'과 함께 게이 커플로 등장했다. 그러니깐 이성애자인 로버트 워커(브루노 역)는 동성애자를 연기하고, 동성애자인 팔리 그레인저(가이 역)는 매력적인 이성애자를 연기한다.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자면 브루노는 guy이지만 gay'이다. 가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제로 gay이지만 극중 이름은 guy이다. 히치콕은 영화 속 동성애적 코드'를 몰랐다고 잡아뗐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 확실하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가이와 브루노를 게이 커플로 묘사한다.
이 기묘한 < 엇박자 앙상블 > 이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둘은 모두 성적으로 모호하다. 이 성적 불균형이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 영화는 열린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영화'다. 놀이공원에서의 살해 장면은 기괴함을 넘어 정교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회전목마 격투 장면은 지금 보아도 경이롭다. 스크린 프로세스로 촬영되었는데, 막말로 " 티 " 가 안난다. 감쪽같다 ! " 회전목마 폭발장면은 미니어처와 배경영사, 클로즈업과 다른 인서트들로 구성된 특히 경이적인 장면이었다. ( 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781쪽 ) " 이 영화를 다시 평가하자면 " 압도적 걸작 " 이다. 주연배우가 매력적인 영화는 사실 매력없는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 영화에서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주체는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당이다. 주연배우란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매력적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가 돋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주연배우가 돋보일 뿐이다. 하지만 악당이 돋보이면 영화 전체가 풍부해진다. 내가 아무리 입이 닳도록 이 영화를 칭찬한다 한들, 당신에게 와닿지 않을 테니 직접 이 영화를 보라. 후회하지는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