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가수라는 타이틀보다는 " 가객 " 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가수(歌手)라는 단어가 노래를 멋들어지게 하는 재주 ( 手 : 솜씨 수 ) 에 방점을 찍었다면, 가객 ( 歌客 ) 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 客 : 나그네 객 ) 에 방점을 둔 단어'다. 전자는 테크놀로지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고 후자는 휴머니티에 대한 접근'이다. 김광석은 기교가 뛰어난 가수라기보다는 진정성'을 노래하는 가수에 가깝다. 그가 부른 노래가 다른 가수들에 비해 유독 노랫말'이 선명하게 들리는 이유는 발성법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전염성 강한 목소리의 멜랑콜리한 호소력이 서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 잊어야 한다는 마음 " 에 대한 애상'을 즐겨 다루었는데 노랫말은 대부분 " 잊혀지지 않기 위해 먼저 잊는다. "는 내용이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세상을 떠났다. 서른이 갓 넘은 즈음이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그의 부고를 들은 것은 거리를 지나가다가 레코드 가게에서 틀어놓은 스피커를 통해서였다.
그날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김광석이 부른 노래가 흘러나왔다. 쓸쓸했다. 세월이 흘러서 자신의 이름이 " 스스로의 인생 " 을 줄여서 " ○스인 " 이 되었다고 말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첫사랑이었다. 그녀가 내게 선물한 앨범이 바로 리메이크 곡 모음집인 <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2 > 였다. 여름, 우기 짙던 날에 배달된 소포에는 이 앨범과 함께 손 편지'가 들어 있었다. 배달된 소포 겉표지는 빗방울에 젖어서 파란색으로 쓰여진 글자가 번졌는데 우편배달부는 용케도 주소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쓸 때 만년필을 애용했는데 언제나 파란색 잉크'를 사용했었다) 그날 나는 온종일 김광석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게릴라성 집중 호우도 없고, 우기도 없는, 비도 오지 않는 오랜 건기가 시작되는 청명한 가을이었지만 그 편지는 우기 때 보내온 소포처럼 빗방울 때문에 파란색으로 쓰여진 글자가 얼룩이 져서 번져 있었다.
그 편지를 끝으로 더 이상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편지지에 번진 글씨는 빗방울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편지를 쓰면서 흘린 눈물 때문에 번진 글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 노래를 떠올리면 자주 지루했던 장마와 함께 파란색 잉크로 쓰여진 편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를 남겨두고 엄마를 따라 먼곳으로 떠난 여자. < 히든 싱어 : 김광석 편 > 은 그 옛날, 사라진 가객 김광석을 다시 호출한다. 몸은 없다. 소리만 생생하게 살아남아서 모창 대회 참가자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묘한 감동이 몰려왔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왔으니 헛것'이지만 사람들은 이 헛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목소리를 듣고 웃고 울었다. 문득 김광석이라는 가객은 歌客이 아니라 佳客( 佳 : 아름다울 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내는 소리이니 분명 哭 ( 哭 : 소리 내어 울 곡 ) 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행복해 한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지만 귀신이라고 해서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김광석은 가객이 되어 돌아왔지만 박정희는 망령이 되어 2013년을 떠돌아다닌다. 김광석은 즐거움을 주지만 박정희는 끔찍한 악몽을 선사한다. 4년을 근무하면 1억 4000만 원짜리 연봉을 받는 집단이 19년 근속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철도 노동자의 6000만 원짜리 연봉을 두고 귀족 노조'라고 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지만 잘 짜여진 정치적 프레임 앞에서 힘없는 철도 노동자는 대책이 없다. 메르켈'이 아닌 대처 노선을 따르기로 한 박근혜는 가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와 싸운다. 그에 동조하여 대한민국 모든 언론은 철도 노조 하나를 두고 매섭게 다구리를 놓는다. 동정도 없고 자비도 없다. 이런 식으로 난타를 당해도 되는 것일까 ? 오늘 칼바람 부는 집회 현장에서 벌벌 떨었다. 꼭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유령의 귀환, 아주 흉한 몰골로 나타난 박정희라는 이름의 헛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