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 생활의 발견 >서사는 바로 가난 때문에 자신의 주거지를 빼앗긴 가난한 외각 거주자의 씁쓸한 풍경을 다룬다. < 생활의 발견 > 이 주는 웃음은 장소와 사연 ( 둘 중 하나는 이별을 통보한다. ) 의 엇박자가 주는 골 때리는 장면에서 쏟아진 페이소스'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물고는 우리 헤어져 ! ” 를 진지하게 말한다. 이별과 식욕의 관계는 마치 < 금각사 > 의 미시마 유키오< 인간실격 > 의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한 상극이다. 이별 앞에서의 왕성한 식욕이라니 ! 부자들이야 밥은 식당에서, 술은 술집에서, 이별 통보는 마지막에 들린 찻집에서 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럴 수가 없다. 돈도 돈이거니와 시간도 없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놈의 퇴근길은 지옥 같다. 걸레처럼 지친 몸으로 잠이 들고, 다시 걸레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음먹고 제대로 이별을 통보할 수도 없다.그냥 한곳에 앉아서 오늘 해야 될 모든 코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가 이별 고백을 했던 감자탕 집 < 풍전옥 >은 식당이었으며, 술집이었고, 커피숍이었다. 짬짜면이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웃기는 짬뽕 같은 식당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 생활의 발견 > 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사는 찌르레기가 한 마리가 찌르르르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별조차도 멋지게 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별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넘치는 노동 시간 앞에서, 퇴근길 지옥 앞에서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모두 지친 우리는 슬픔 앞에서도 침이 고인다. 마치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밥그릇 앞에서 무한 대기해야 하는 개처럼 !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19243, 개그 콘서트 中

 

 

 


 

 

 

공깃밥 하나 : 한 줌의 밥과 한 줌의도덕

 

 

 

 

 

 

< 적당/適當 > 은 결핍과 과잉 사이'에 있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적량'을 의미한다. 공깃밥이다. 허기가 진 자에게는 공깃밥 하나의 적량'이 부족할지는 모르겠으나 반찬을 통해 얻게 되는 칼로리 양을 계산하면 한 끼 섭취량으로는 적당하다. 인간에게는 한 줌의 쌀만 있으면 된다. 공깃밥은 손으로 쥘 수 있는 한 줌의 양이다. 공깃밥을 볼 때마다 심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한 줌의 쌀로 살아가다가 한 줌의 재가 되거나 흙으로 사라지는 존재'다.  반면 부적당/不適當'은 적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 부당하다 " 라는 뜻과도 뜻이 통하니 뿌리글이다. < 부적당 >에서 " 적 " 이 빠지니 " 부당 " 이 남는다. 결국 " 부당하다 !!! " 고 외치는 함성에는 나에게 돌아올 공깃밥이 적량보다 적거나 남에게 돌아갈 공깃밥이 터무니없이 많을 때 수정을 요구하는 속내를 품고 있다. 박근혜'는 철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밥그릇이 작다며 더 큰 밥그릇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정권이 장악한 방송국에 퍼트린다. 방송국이 동네 이장댁에 설치된 빨간 핸드마이크 신세가 된 지'는 이미 오래. 언론은 철도 노조를 귀족 노조라며 배부른 돼지'라고 비난하기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민영화 투쟁의 근본은 < 내 밥그릇 > 에 대한 투쟁이기보다는 몇몇 이권 개입 세력의 드럼통 밥그릇'을 채우기 위한 항의에 가깝다. 내 밥그릇이 작다는 불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철도 파업을 지지한다. 철도 노조 탄압은 부당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강경 진압을 "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집행 " 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비정상은 철도 노조가 아니라 정부다. 이 말투를 그대로 돌려서 말하자면 철도 노조의 민영화 반대 투쟁은 " 부적당을 적당으로 돌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파업 " 이다.

 

<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 도 결국은 밥'에 대한 이야기'이다. " 안녕하세요 ? " 와 " 식사하셨어요 ? " 는 동일한 인사말'이니 결국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라는 대자보는 모두들 식사하셨습니까, 라는 말로 고쳐 써도 된다. 이웃의 허기를 외면한 채 꾸역꾸역 밥을 먹다 보니 채한 탓이다. 그 대자보를 쓴 사람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십니까, 라는 말을 배운 사람답게 서정적으로 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다. 모든 전쟁은 이데올로기 따위를 내세우며 싸움질을 거창한 것으로 위장했지만 결국은 보다 더 큰 밥그릇을 훔치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느닷없이 김훈이 궁금하다. 항상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한 밥벌이'를 강조하던 그는 적량보다 더 많은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몇몇 이권 세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

 

배부른 자의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 덜어내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 요즘은 목숨 걸고 다이어트를 하니 오히려 이 숟가락질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배고픈 자의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내는 문제는 배부른 자의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내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 감량 > 의 문제이고 후자는 < 생존 > 에 대한 문제이다. 한 숟가락 덜어내는 문제를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을 떨고 자빠졌냐고 말하면 안 된다는 소리이다. 어떤 이는 눕기 위해 밥을 먹고 어떤 이는 서기 위해 밥을 먹는다. 산해진미로 보양식을 먹는 자는 대부분 침대에서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정력을 위해 밥을 먹는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일어나기 위해 밥을 먹는 자는 내일의 끼니를 위해 밥을 먹는다. 적어도 하루 끼니를 위해 밥을 먹는 자의 밥그릇에 숟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 적당 " 이 결핍과 과잉 사이에 놓은 포지션'이라면, " 겨우 " 는 결핍과 부족 사이에 놓여 있다. < 없음 > 보다 있으나, 그렇다고 < 있음 > 보다는 턱없이 없는 상태'가 바로 겨우'다. < 겨우의 삶 > 은 부처와 예수'가 지향하는 소비 형태'이다. 만약에 기독교 신자인 당신이 예수가 말하는 " 겨우 " 를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사쿠라'다. 예수가 늘 강조했던 것은 < 빵 하나 > 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 빵 하나 > 가 아니라 < 빵 한 조각 > 이다. 하나의 빵으로는 배를 채울 수 있지만 빵 한 조각으로는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그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 겨우 " 다. 예수가 말하는 " 겨우 " 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성자에 비하면 한없이 낮은 부류인 인간은 이 겨우를 실천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 뜻을 알고 넘치지 않으려는 삶을 살면 된다.

 

노동자들이 적당한 밥그릇을 위해서 투쟁한다고 해서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할까 ? 예수나 부처가 아닌 다음에는 그 어느 누구도 이 적당한 밥그릇을 위해 투쟁에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기 주먹 크기의 공기(空器)가 아닌 드럼통에 밥을 담으려고 하는 이권 세력에 대해서는 손가락질을 해도 된다. 예수님이 이런 소리를 했다 " 사람은 그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나오는 것을 통해 더럽혀진다(마태 15 : 18) " 이 말은 보다 적게 싸는 놈이 보다 많이 싸는 놈보다 낫다는 뜻이다. 드럼통에 담긴 밥을 다 처먹은 놈은 그만큼 싼다. 네 똥 굵을 수밖에 없다.

 

 

 

 

+

 

http://imnews.imbc.com/replay/2013/nw1800/article/3389539_12114.html : 자비도 동정도 없는 세상, 눈 오는 추운 겨울에 꼭 철거를 해야 했을까, 꽃 피는 봄이 올 때 해도 늦지 않는 짓을 굳이 강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 2013-12-2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 "그래 니 똥 굵다!" 라는 쌍욕 아닌 욕의 심오함..
밥은 먹고 다니냐는 명대사..
새삼 송강호는 정말 대단하다는..(읭)

요즘처럼 추운 연말연시.. 특히 어제 같은 날.. 죽을 심정인데 세상은 흥청망청..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막히고 원망스런 날이었을까요..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사람이 부끄러워 하고 나눌 줄 아는 염치를 갖춘 세상.. 그려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6 11:16   좋아요 0 | URL
밥은 먹고 다니냐, 는 정말 어마어마한 명대사였습니다.
어디서 그런 소릴 하게 되었을까요 ?
정말언발란스한 대사인데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어룰리는 대사였습니다.

엄동 2013-12-2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블로그에 오기 직전.
조남준화백의 '균형'이라는 만평을 봤어요

가진자들의 횡포죠
겨우" 먹고는 살게 해주다가
그 권력에 대항하면 그마저도 가혹하게 뺏고
결국 독점"이죠.

시대는 변하는데
세상은 정말 안 변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6 11:17   좋아요 0 | URL
기득권은 늘 겨우 살게만 남겨두잖아요.
가만 보면 기득권은 연가시 같은 놈들이죠.
숙주가 죽으면 안 되니깐 살려는 두되
싸우지는 못하게 만드는 거죠....


정말 시대는 변하는데
세상은 아주 지독하게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