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지 점프'를 하다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허구'다.
언캐니는 프로이트'의 주요 개념이다. un-canny의 독일어'인 un-heimlich'에서 un-은 접두사로 형용사, 부사, 명사에 붙어서 " 반대, 부정 " 을 뜻한다. 우선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heimlich의 뜻을 알아야 한다. < heim > 은 < house > 다. 집'이란 뜻이다. 이 세상에 집'보다 편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 ! 낡은 쇼파'에 누워서 리모콘으로 티븨를 보며 사타구니'를 긁을 수 있지 않은가 ! 똥구멍을 긁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 그래서 heimlich 은 " 편안함, 익숙한, 친숙한 " 이라는 뜻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접두사 un-이 붙어서 < 기괴한 > , < 두려우면서 동시에 낯선 ( 것, 곳 ) > , < 악마적이면서 소름끼치는 것(곳) > 으로 확장된다. 그러니깐 heimlich와 unheimlich는 서로 상극이다. 반대말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heimlich 는 편안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 알 수 없는 > , < 위험한 >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반대말이면서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반의어/反義語는 곧 동의어/同義語'라는 사실을 유추해 낸다. < 反 = 同 > 라는 황당한 공식'을 주장한다. uncanny와 canny는 같은 뿌리다 ! 프로이트는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김삿갓'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한 놈'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프로이트'의 이 주장'은 맞는 말이다. 로보트'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심리'는 정확히 " 언캐니 " 개념과 부합한다.
인간을 닮은 초기 로보트 아시모'를 볼 때 사람들은 이 로보트에 깊은 호감'을 드러낸다. 하는 짓이 얼마나 귀엽나 ! 하하하, 호호호. 여기서 사람들이 이 로보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 흉내를 내는 로보트'가 장난감처럼 어설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로보트의 외양이 점점 인간을 닮아가면 호감은 급격하게 불쾌함'으로 변한다. 인간과 로보트의 구별이 모호해지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실사 인형'이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인형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 ! 바로 이 감정이 언캐니'다.
우리가 인간을 닮은 로봇이나 인형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매우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괴함'이라는 심리 상태의 중심에는 " 익숙한 " 이 자리잡듯이 말이다.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더 나아가 그 귀신은 내가 알던 사람일 때 더 두렵다.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사춘기 여고생이 집에 왔더니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이 엄마라며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상황은 담임 여선생이 자신을 엄마'라고 주장할 때이다. 그렇지 않은가 ?
영화 < 번지 점프를 하다 > 는 " 언캐니 " 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이병헌'은 어느 날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 속으로 들어온 이은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멜로라는 장르는 어긋남'이 기본'이다.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은주는 이병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 사고'로 죽는다. 그 아픈 트라우마'가 서서히 잊혀질 때인 십 몇 년 후, 교사'가 된 이병헌은 제자에게서 익숙한 클리쉐와 오브제'를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남자 제자에게서 말이다. 십 몇 년 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쇼스타코비치 왈츠는 제자의 핸드폰 벨 소리로 환기 되고, 숟가락과 젓가락에 대한 농담은 제자의 질문과 겹쳐진다. 그리고 그녀가 아끼던 라이터는 제자가 가지고 있다. 최민식이 교사 역을 연기했다면 " 너, 누구야 ? " 대신 " 누구냐, 넌 ?! " 이라고, 보다 마초적으로 말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병헌은 혼란에 빠진다. 이 지점에서 잘난 척 한 번 하고 넘어가자 ! 제자'의 에티튜드'는 죽은 애인의 에티튜드와 겹친다. 그러니깐 제자의 에티튜드는 자꾸 익숙한 것에 대한 데자뷰'를 만들어낸다. 낯익은 것이다. 어쩌자고 저 새끼는 내 죽은 애인을 모방하는 것일까 ? 더군다나 불알 달린 수컷이 아니었던가 ! 결국 제자가 재현해내는 낯익은 행위는 이병헌에게는 매우 낯선 행위'가 된다. canny에서 uncanny를 목격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 구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내용은 SF 소설인 < 솔라리스/ 램 > 에서도 다룬다. 끝내주는 소설이다 ! ) 이 영화는 죽은 여자가 남자 제자로 환생한다는, " 아, 어쩌란 말이냐 ! " 류의 엇나간 퀴어 멜로의 형태를 취했지만, 사실은 언캐니'에 대한 이야기'다.
첫눈에 빠진 사랑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허구'다. 당신이 첫눈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처음 본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얼굴이지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이미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1 ) : 실험 참가자에게 다양한 이성 사진'을 보여준 후 가장 매력적인 사진 한 장'을 뽑으라고 한다.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10장의 사진 중 한 장은 실험 대상자인 얼굴을 포토샵으로 약간 수정해서 성별'만 바꾸어 놓는다. 물론 실험 대상자'는 이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실험 결과에서 그들은 가장 매력적인 이성 사진으로 누구를 선택했을까 ? 놀라지 마시라. 거의 대부분은 자기 얼굴을 수정한 얼굴을 뽑았다. " 음... 그러니깐, 음... 그게.. 딱히 예쁘지는 않은데... 음, 그게.. 에헴.. 흠흠. 그냥... 편안한 얼굴이어서 좋아요 ! " 그렇다, 그들은 도발적이며, 섹시하고,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뽑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잘 생각은 안나는, 그냥 평범한 이성의 얼굴을 선택한다. 자기 얼굴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이처럼 첫눈에 호감을 가지는 이성'은 뭔가 언캐니'적인 존재다. 어디서 본 익숙한 얼굴이지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심장이 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이 심장이 뛴다는 사실을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괴하고, 두렵기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사랑 때문에 뛰는 심장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
실제로도 이런 실험이 진행된 적이 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2 ) : 두 개의 실험군을 준비한다. A 상황은 는 남녀가 처음 만나는 미팅 장소'로 카페를 선정하고, B는 구름다리 같은 위험한 장소를 미팅 장소'로 선정해서 두 집단 간에 퍼지는 이성 호감도'를 조사하는 것이다. 결과는 위험한 미팅 미션을 수행한 B에서 서로 호감도가 높았다. 그 이유는 심장과 뇌'가 서로 따로 놀기 때문에 그렇다. 구름다리 위에서 만난 남과 여'는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인데, 뇌는 이 사실을 사랑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결국 B 집단에서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착각이다.
이처럼 사랑은 본질적으로 언캐니'이면서 동시에 자기애적 성향이 강하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이우진/유지태와 누이인 이수아/윤진서'가 나른한 오후에 과학실에서 벌이는 근친상간' 장면은 기이할 정도'로 자기애'적이다. 영화 속 캐릭터 이수아'는 병적일 정도로 나르시즘에 빠져 있다. 그녀는 남동생과 근친상간'을 하면서도 거울로 자신의 황홀한 얼굴'을 바라본다. 결국 이 쾌락은 1인칭적 욕망이 만들어놓은 자위행위'이다. 스스 로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수음'이다. 그녀 이름인 수아는 혹시 秀我'가 아닐까 ? 아름다울 수에, 자기 아 ! 이 이름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자기애/ 나르시소스'가 된다. 나르시소스'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해서 우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이수아는 다리 아래 물 속에 빠져 죽는다. 심지어 죽는 그 순간에도 수아는 동생 목에 걸려 있는 카메라로 아름다운 자기 얼굴을 찍고는 강에 빠져 죽는다.
영화 제목 < 번지 점프를 하다 > 는 꽤 의미심장'하다. < 번지점프 > 는 두려움을 의미하고, < ~ 하다 > 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을 의미한다. 서로 상이하게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사랑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바닥으로 뛰어내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 108번 올빼미 뛰어내릴 수 있습니까 ? " 라고 군대 훈련소 조교가 외칠 때 당신은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 108번 올빼미 하 ! 강 ! 준 ! 비 ! 끗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