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명과 토템 !

사대주의 근성'이라고 욕 해도 좋다. 어쩔 수 없다. 2013년 미국 월드시리즈 플레이 오프' 를 보다가 2013년 한국 플레이 오프 4차전 < 엘지 대 두산 > 경기를 보고 있노라니 유치원 어린이 야구 대회'를 보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 브라질 대 영국 > 경기를 보고 나서 < 홍콩 대 베트남 > 경기를 연이어 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질적 저하'와 비슷하다. 멋진 다이빙 캐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땅볼'조차 줍지 못해 허둥대는 꼴이나 상대팀에 대한 배려'따위는 애당초 없는 양아치 근성'은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윤요섭이 2루에서 아웃 당했다고 해서 분풀이로 상대 선수 옷을 잡고 시비'를 걸 때는 (같은 팀을 응원하는 팬의 입장으로써) 상대팀에게 미안했다. 학교에서 < 타격 > 은 배웠지만 < 인격'> 은 배우지 못한 탓이다. 윤요섭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타격이 아니라 인격이다.
선수만 탓할 일은 아니다. 김기태 감독이 보여준 용병술'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다. 타자가 안타를 치고 주자가 되었을 때 어김없이 등장하게 되는 번트 작전'을 보고 있으면 소심하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플레이 오프 4차전 < LG : 두산 > 경기'는 번트로 시작해서 번트로 망한 경기였다. 김기태 감독은 주자가 1루에 나가기만 하면 번트 작전을 지시했는데 상대팀에게 뻔히 읽히는 수'를 작전이라고 하니 민망할 뿐이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설령 번트 작전이 성공했다고 해도 반드시 점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번트 작전보다는 타자를 믿었어야 했다. 감독이 경기에 개입해서 작전을 남발하게 되면 그것은 학생 아마추어 야구이지 성인 프로 야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선수단을 타박해서 무엇하랴 !
그래도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니 큰 위안'을 삼는다. 내가 보스톤 레드삭스 팬이 된 이유는 아기자기한 빨간 양말 토템 때문이었다. 빨간 양말을 본 순간에 나는, 아... 사랑에 빠져버렸다 ! 원래 정식 명칭'은 < 보스턴 레드 스타킹즈 > 였는데 이름이 길다 보니 팬들이 부르기 쉽게 " 레드삭스 " 라고 해서 만들어졌다. " 양말 " 이라는 낱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월드 시리즈는 < 양말(들)의 전쟁 > 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빨간 양말 팀과 싸울 카디널스(Cardinals)는 주홍색이라는 뜻인데 토템이 주홍색 참새(홍관조) 다. 1899년, 구단주'였던 프랭크 로빈슨이 주홍색 양말을 선수들에게 신게 하자 야구 스포츠 기자'가 주홍 양말'에 빗대서 붙인 이름이 지금의 카디널스'다. 그러니깐 이번 싸움은 < 빨간 양말 대 주홍 양말 대전 > 이다.
그런가 하면 하얀 양말 팀도 있다. < 시카고 화이트 삭스 > 다. 선수들이 착용하는 흰 스타킹'에서 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도 양말 색깔 때문에 팀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파란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스트라이프 무늬 양말이 호랑이 무늬'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신시내티 레즈 > 도 보스톤 레드 스타킹즈'와 같다. 양말 색깔에서 유래가 되었다. 정식 명칭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즈'였다. 보스톤이 스타킹에서 삭스'로 변경했다면, 신시내티'는 레즈 스타킹'에서 스타킹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레즈'라고 불렀다. 지금의 신시네티 레즈'다. 만약에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면 이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 레드 스타킹스 대혈투 " 로 불리웠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라는 팀도 양말 색깔과 관계가 깊다.
이 팀은 1883년 우스터 브라운 스타킹즈'가 그 모체이기 때문이다. 양말 색깔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흰 양말은 시카고, 빨간 양말은 보스턴과 신시내티, 주홍 양말은 세인트루이스, 갈색 양말은 필라델피아, 끝으로 줄무늬 양말은 디트로이트'이다. 이처럼 메이저리그 팀명과 토템의 유례'를 보면 아기자기한 것이 많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지역 특성과 역사'에서 비롯된 토착형 이름이 많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 팀명과 토템은 연고지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저 먹이사슬 최상위 토템을 경쟁적으로 정했을 뿐이다. 대구에는 사자가 살고, 광주에는 호랑이가 살며, 서울에는 곰과 하늘을 나는 비룡이 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창원에는 공룡이 있다고 우기기도 한다.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 재미있는 팀명과 토템'만 소개하기로 하자. 메이저리그 팀명과 유례'를 알아두면 미국 도시 지리 생태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밀워키 브루어스 ( Brewers ) 는 그 뜻이 " 양조업자들 " 이란 뜻이다. 밀워키가 양조업으로 번성한 도시'란 사실을 알 수 있다.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Padres ) 는 신부님'이란 뜻이다. 찾아보니 미국에 스페인 성당이 처음으로 세워진 곳이 바로 샌디에이고'라고 한다. ■ 반면 시애틀 메리너스 ( Mariners ) 는 " 선원들 " 이라는 뜻이니 시애틀이 항구 도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 그리고 템파 베이( Tampa Bay rays ) 라는 이름 자체가 템파 만'이라는 이름이니 물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토템 또한 물고기인 가오리 ( ray ) 이다. 원래는 템파 베이 데블레이스'였는데 최종적으로 템파 베이 레이스'로 확정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오리와 다이아몬드 그라운드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모두 마름모꼴'이다.
마름모꼴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팀은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Diamondbacks ) 다. 애리조나주에 서식하는 방울뱀으로 등에 마름모꼴 무늬가 있는 독사 ( Diamondbacks rattlesnake ) 을 뜻한다. 만약에 템파 베이 가오리 팀과 애리조나 방울뱀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되면 사람들은 " 다이아몬드( 마름모꼴 ) 대전 " 이라고 부를 것이다. 자, 가오리가 등장했으니 청새치'가 토템으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 플로리다 말린스 ( Marlins ) 에서 marlins'는 청새치'라는 뜻이다.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웨인 후이젠가'가 낚시광'으로 유명했다고 하니 그가 청새치'를 팀명과 토템으로 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청새치'는 말 그대로 황홀한 입질의 대표적 물고기'가 아니었던가 ! 몸무게가 200kg이 넘어서 청새치를 잡으려다가 잘못하면 배가 뒤집어지기도 할 만큼 힘이 센 물고기'다.
헤밍웨이가 소설 < 노인과 바다 > 에서 묘사한 물고기도 청새치'다. 그는 말년에 이곳 플로리다 해안에서 청새치 낚시를 즐겼다. 낚시광'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는 물고기가 바로 청새치'이다. 이처럼 입질이 황홀하다 보니 청새치 낚시 대회가 인기리에 열리기도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쿠바의 카스트로'도 청새치 낚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독특한 사연을 가진 구단도 있다. ■ LA 다저스 ( Dadger ) 는 " 기피자 " 라는 뜻이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 무임승차하거나 남을 잘 속이는 부류를 뜻한다. 일설에 의하면 브루클린 시민들이 전차에 무임승차 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 그리고 시카고 컵스'는 애송이 혹은 아기 곰 ( cub ) 이라는 뜻이다. 창단 당시 신인들로만 구성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빗대어 부르다 보니 컵스'가 된 모양이다. 토템만 놓고 보았을 때는 두산 베어스( 사나운 곰 ) 와 시카고 컵스 ( 아기 곰 )가 붙으면 두산이 5회 콜드 게임으로 이길 기세이지만, 두산 전력으로는 시카고 컵스 산하 2군 선수와 격돌해도 이기기는 힘들다. 시카고 컵스'가 창단 이후 1908년 우승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기는 하나 그래도 명색이 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이다.
힘 있는 짐승만을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팀명이요 토템이다. 경상북도와 사자'는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 호랑이도 구경 못하는 판국에 머나먼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사자가 웬 말인가 ! 그래도 사자'는 봐줄 만하다. 청룡이니 비룡(와이번즈) 따위는 아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차라리 해태 타이거즈 대신 < 해태 갓김치 > 이라거나 롯데 자이언츠 대신 < 롯데 자갈치 > 라고 했다면 귀에 쏙쏙 들어왔을 것이다. 엘지 깍쟁이, 한화 핫바지, 삼성 머스마'도 좋은 작명이다. < 컵스 > 와 < 다저스 > 라는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이름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15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이 만들어 놓은 관용'이라 할 수 있다. 야구 경기만큼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하는 스포츠도 드물다.
홈런을 친 선수는 홈런 세레머니를 자제하고 빠르게 다이아몬드 그라운드'를 돌아야 한다. 홈런을 친 선수에게는 기쁨이지만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투수에게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수 차이가 큰 경기에서는 그 아무리 도루왕이라고 해도 이기고 있는 팀에서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 지고 있는 팀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어제 경기처럼 윤요섭 선수가 2루에서 아웃당했다고 해서 분풀이로 상대 선수 옷자락을 잡으며 싸울 기세로 시비를 거는 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는 짓이다. 하여튼 다음 시즌에는 엘지 트윈스와 에스케이 와이번즈'가 한국 시리즈'에서 격돌했으면 싶다. 둘 다 용'이 토템이니 < 용용죽겠지 대혈투 > 가 아니겠는가 ! ( 엘지의 전신이 바로 엠비씨 청룡'이고 에스케이 와이번즈에서 와이번즈( wyvern ) 가 비룡일 뜻하니 두 팀도 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