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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재발견 - 삶의 풍경을 만드는 의자 디자인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세미콜론 / 2011년 8월
평점 :
다 자빠뜨려 !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경우에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 16조
시골 노총각을 결혼시키기 위한 글로벌 웨딩 프로젝트 영화인 < 나의 결혼 원정기 > 에서 노총각들은 맞선을 보기 위해서 머나먼 우즈벡'까지 원정을 떠난다. < 반지 > 원정대가 아니라 < 반려 > 원정대'다. 이들의 목적은 여자'를 다 자빠뜨리는 것이다. 아,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우즈벡 말로 " 내일 또 만나요 ! " 가 바로 " 다자빠뜨러 ! " 라고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 해서든, 다음에 또 만나야 기회가 올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자빠뜨리기 위해서는 " 다자빠뜨러 " 해야 하고, " 다자빠뜨러 " 해서 결국 짝이 될 상대를 침대에서 자빠뜨려야 한다. 수컷이란, 그런.... 존재다 ! 맞선 본 여성과 " 다자빠뜨러 " 하지 않는다면, < 반려 > 는커녕 < 승려 > 가 될 판'이다.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다행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영화 < 방가? 방가 ! > 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의자 공장 공장장인 최 반장'이 의자 공장 작업장 직원에게 의자의 품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디자인 ? 편리함?! 견고함 ?!!! 정답은 " 자빠지지 않으려는 불굴의 투지 " 이다. 전봇대는 넘어져도 의자는 넘어지면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의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이다. 그러므로 " 다 자빠뜨려 ! " 의 반대말은 " 의자 " 다. 7인조 여성 떼거지 율동단'이었던 티이라가 < 의지 > 때문에 팀이 자빠진 경우라면 가구 디자이너'는 자빠지지 않는 < 의자 >를 만드는데 의지'를 불태운다. 공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다리 세 개'인 의자'보다는 다리 네 개인 의자가 안전하고, 다리 네 개보다는 다리가 다섯 개인 의자가 보다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다리 개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보통 다리가 네 개 달린 의자'가 대중적으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하게 의자의 균형 감각만을 놓고 봤을 때는 다리가 네 개인 의자보다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가 균형 감각이 탁월하다. 왜냐하면 다리가 네 개인 의자가 다리 길이가 하나라도 길거나 짧으면 균형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의자 다리가 세 개'인 의자는 다리 길이가 모두 제각각이어도 균형을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에서도 다리가 세 개'인 의자가 안정적이다. 이처럼 제각각 다른 다리 세 개로 이루어진 의자'는 < 다르다 > 와 < 틀리다 > 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다리 세 개'가 서로 어우러져 균형을 이루는 현상은 평등과 다양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정확히 보여주는 예'이다. 반면 의자 다리가 네 개인 형태는 다리 네 개의 길이가 똑같을 때에만 안정적이다. 하나라도 길거나 짧으면 다 자빠진다.
내가 보기에는 자비로운 신은 다리가 세 개 달린 의자를 만들었고, 성정이 곱지 못한 인간은 다리가 네 개 달린 의자'를 만들었다. 전자는 다르다와 다양성'에 방점을 찍고, 후자는 틀리다와 획일성에 방점을 찍는다. 그들은 < 틀리다 > 는 이유로 동일한 길이를 요구하며 다리 길이를 자르거나 덧댄다. 그래야지만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승질머리'는 동일한 기준에서 미달되는 것을 싸잡아서 차별한다. 평균에서 어긋나는 놈은 키 작은 루저가 되거나 혐오스러운 동성애자 그리고 된장녀와 김여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자의 생태학은 인간에게 매우 깊은 인문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흔히 의자 하면 다리가 네 개 달린 의자'를 생각하지면 주위를 살펴보면 매우 다양한 다리를 가진 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다리가 네 개인 의자가 널리 사용되지만 태초에 의자는 다리가 없는 그루터기'였다.
이 그루터기 모형은 건축가 베르너 펜톤에 의해 다리가 없는 팬톤 의자'로 디자인되었는데 " 좌석 부분과 등판, 다리의 구분이 없이 한 몸으로 된 의자 ( 의자의 재발견, 51 ) " 였다. 그런가 하면 다리가 하나인 의자도 있다. 그 유명한 튤립 의자'이다. 에로 사리넨이 디자인 했는데 와인 잔을 닮아서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다. 다리가 두 개인 의자도 있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만든 B32'는 다리가 두 개로 카페에서 흔히 보게 되는 토넷 의자만큼이나 대중적인 의자'이다. 이런 식으로 다리가 셋, 넷, 다섯'인 의자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의자는 다리가 아예 없다고 해서 앉은뱅이'라는 놀리지 않고, 하나'라고 해서 절뚝이라고 조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리 개수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의자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인간은 의자를 만들었지만 의자는 인간에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의자를 보면 인간의 삐딱한 성정'이 보인다. 그래서 재미있다. 우리는 흔히 < 의자 > 와 < 자리 > 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자리(지위)가 높을수록 의자'는 화려하다. 포장마차에서 흔히 보는 스툴60 스타일 의자는 주로 서민이 앉는 의자'이다. 등받이도 없고 팔걸이도 없다. 반면 지위가 높은 양반은 등판과 팔걸이'를 갖춘 고급 회전 의자'에 앉는다. 360 도 회전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돌아가는 판옵티콘이라 할 만하다. 루이비통이 여성의 계급을 말해주는 징표라면 팔걸이가 달린 회전 의자'는 남성의 명함을 나타낸다. 자리가 낮은 계급에게는 팔걸이'가 부착된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 법이다. 멀리 볼 것 없다. 초중고 학교 교실 의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학생에게는 팔걸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5월이 되면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뻥이다.
등판과 팔걸이가 없는 스툴60 + 팔걸이가 없는 톨렛 의자 + 회전의자 ▼
꼰대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팔걸이에 팔을 걸치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들먹거리는 꼴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보다 안락한 의자'를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이처럼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권력지향적 이미지'가 강하다. 고흐는 해바라기 정물 이외'에도 다양한 정물을 그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의자'다. 고흐는 < 고흐의 의자 / 1888 > 와 < 고갱의 의자 / 1888 > 이라는 그림을 남겼는데 수평적 인간 관계를 중요시했던 고흐의 의자'는 등판만 있는 수수한 의자였던 반면에 수직적이며 권위적이었던 고갱의 의자는 팔걸이가 달린 의자였다. 이처럼 의자는 은연 중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드러낸다.
영화 < 아메리칸 사이코 > 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바르셀로나 의자( 1926 ) 를 소품으로 사용한다. X 모양의 크롬 도금된 틀 위에 가죽 시트와 등받이가 놓인 바로셀로나 의자'는 섬뜩한 살인자의 차가운 취향과 잘 어울린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명품 의자 논란이 일었던 < 라운지 체어 / 1956 > 는 의자왕 임스 부부가 친구인 빌리 와일더 감독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의자'였다. 임스 부부가 살아 있어서 동방예의지국에서 자신이 만든 의자'를 두고 피 터지게 싸우는 꼴을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의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
고흐의 의자 + 고갱의 의자 ▼

고흐의 의자 / 1888

고갱의 의자 /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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