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배추.
< 터앝 > 이라는 낱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싶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 집의 울안에 있는 작은 밭 " 이 터앝'이다. 반대로 울타리 밖에 있는 밭은 < 텃밭 > 이다. 쉽게 말해서 마당 안(울타리 안)에 있는 밭은 < 터앝 > 이고, 마당 밖에 있는 밭은 < 텃밭 > 이다. 지금이야 자투리땅에 남새를 키우는 밭을 통틀어 " 텃밭 " 이라고 부르지만은 그 옛날 조상들은 < ~ 앝 > 과 < ~ 밭 > 을 확실히 구분한 모양이었다. < 야생의 사고/레비스트로스 > 에서 지적했듯이 < 언어 > 와 < 사회 > 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명 사회'에서 보면 미개인 사회'에 가까운 태와족 언어'에는 초목의 잎사귀 형태를 나타내는 말이 40개나 되고, 옥수수의 각 부분을 나타내는 말은 15개나 된다.
옥수수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라고는 " 강냉이 " 가 전부인 21세기 문명인이 보기에는 옥수수의 각 부분을 세분화한 말'은 화려하고 섬세하다. 이 사실은 태와족과 옥수수 간의 밀접한 밀월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필요는 특정 분야의 언어'를 세분화한다. 레비스트로스는 " 어떠한 분류도 혼돈보다는 낫다/야생의 사고,68 " 고 말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태와족 원주민은 옥수수를 15개로 분류한다. 반면 현대 도시인은 옥수수를 단순히 < 강냉이 > 라는 1개의 말밖에는 없다. 우리는 여름 휴가철 냇가에서 옥수수를 뜯거나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 옥수수, '남자에게 참 좋은데,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 라는 장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그 답답함 이해한다. 늬낌 아니까 !
도시 현대인에게는 " 그게 그거 ! " 이지만 태와족 원주민에게는 " 그게 그게 아닌 게 " 다. 그러니깐 전자는 " 하나를 열 다섯으로 나눈 결과 " 이고, 후자는 " 열 다섯'을 하나로 통합 " 한 결과이다. 과학이라는 분야가 기본적으로 분류를 통해 차이와 유사'를 도출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태와족 원주민은 현대인보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명 사회보다 비문자 혹은 비문명 사회'가 더 과학적 사고를 갖춘 시스템이라는 것이 아니다. 문명과 야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문명 사회는 비문명 사회를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야만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레비스트로스가 증명했듯이 그 주장은 틀렸다.
< 터앝 > 과 < 텃밭 > 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터앝과 텃밭은 " 그게 그거(유사) " 처럼 보이지만 옛 조상들은 분류할 필요(차이) 가 있었을 것이다. 터앝과 텃밭'은 한국 사회가 뿌리 깊은 농경 사회였음을 증명한 예이다. 입말이 길어졌다. 마당 한켠에 작은 터앝'이 있다. 터앝이라고 하기에는 자투리 공간이라고 해두자 !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이곳은 터앝인 모양'이다. 내가 이 터앝을 보고 깨달은 것은 < 흙 > 이라는 존재의 위대함'이었다. 몇 년 전 봄날, 마당에서 싱크대 서랍'을 정리하다가 뒹구는 콩 몇 알을 아무 생각 없이 터앝에 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콩잎이 삐죽 고개를 내밀더니 이내 콩줄기가 거침없이 자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 콩 > 이 내게 와서 " 방세를 얼마를 내면 좋을까요 ? " 라고 묻길래 콩알만 한 놈 꼴이 하도 우스워서 콧방귀를 뀌었던 적이 있었는데, 콩 씨 가족은 그해 콩 300개를 내놓았다. 콩 입장에서 보면 남의 집 터앝에 전세를 얻어 사는 꼴이니 방세'라도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터앝 주인인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료를 준 것도 아니고 제초를 한 것도 아니며 물을 주지도 않았으나 콩은 땅을 빌린 값을 톡톡히 한 것이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전부인 열악한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콩은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주렁주렁 열린 콩을 볼 때마다 나는 콩의 보은에 울컥했다. 풀의 힘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바람'은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꽃씨를 물고 와 흙에게 주었다. < 흙 > 은 바람 잘 날'도 없으면서 꽃씨를 옮겨다주는 바람의 성실한 마음이 고마웠다(고 한다. ) " 고마워, 바람 ! 하루 빨리 불면증에서 벗어나길 바라. 언젠가는 바람 잘 날이 아닌 바람 잔 날'이라는 소식을 전해주는 날이 오겠지? " 흙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숨탄것이라면 차별 없이 모두 품었다. 버려진 자투리땅에 이름 모를 꽃이 피었고, 나비가 찾아왔으며, 지렁이가 고슬고슬한 똥을 누기 시작했다. 메뚜기도 방문했다. 서울이라는 아스팔트 정글'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것은 흙의 힘이다. 그들이 가진 생명력을 볼 때마다 레비스트로스가 < 슬픈 열대 > 에서 말한 경구가 떠올랐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빚 지고는 못 사는 콩 씨네 가족과 흙이 가지는 포용력'은 인간이 가진 성질머리를 압도한다. 당신이 교양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흙은 더러운 것'이라고 가르치면 안 된다. 올해에는 콩 대신 배추를 심었다. 하지만 자라지 못해 시들시들하다. 재작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재작년에는 어머니가 배추 다섯 포기를 심었는데 무서운 속도로 자라서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잘 컸다. 잘 컸어 ! 처음에는 식용으로 키울 요량이었다. 집에 리트리버 종 개 한 마리'를 키우는데 어머니는 틈틈이 개를 배추 앞으로 끌고 와 무릎 꿇게 하고는 단단히 충고했다. 콩은 전세(비)를 내고, 상추는 월세'를 냈으나 개는 기세등등하여 텃세'만 부렸다. 성정머리 없는 놈 !
하루가 멀다 하고 싹이 나오자마자 뜯거나 짓밟는 짓을 하기에 내린 잔소리'였다. 땅을 빌린 세입자는 모두 그 값을 치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개는 그 이후 단 한번도 배추를 뜯거나 짓밟지 않았다.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 아, 배추는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마음을 바꿔 관상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잘 자라는 배추와 말귀가 트인 개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 동물농장 > 에 나갈 사연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당에서 어머니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 이 개놈의 새끼가 미쳤나벼 !
검은 개 꼬리 십 년 묻어도 검은 개 꼬리라더니만 으이구, 밤새 지랄 발광을 다 했슈. " 마당에 나가보니 배추 하나는 뿌리가 뽑혀 마당에 뒹굴었고, 뽑히지 않은 배추 위에는 개가 똥을 쌌다. 30kg 정도 되는 놈이 싼 똥은, 아....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그 이후 배추와 개의 기특한 사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한가위'다. 깊은 밤, 풀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