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구의 심리학 - 야구경기 그 이면에 숨겨진 놀라운 심리법칙
마이크 스태들러 지음, 배도희 옮김, 송재우 감수 / 지식채널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 클러치 히터 ( clutch hitter ) 와 쵸크 히터 ( choke hitter )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아나운서가 즐겨 사용하는 야구 용어 가운데 하나가 < 클러치 상황' > 이라는 말이다. 별 뜻 없이 흘러넘기다 보니 그 상황이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으나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클러치 ?! 그 클러치'가 내가 알고 있는 그 클러치인가 ? 그렇지 ! 이럴 땐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사전을 찾아보니 " 움켜쥐다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 클러치 상황 " 이란 경기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손을 꽉 움켜잡고 경기'를 보게 되는 상황'이란 뜻이다. ( 여담이지만 손에 땀을 쥐는 것은 좋으나 인턴의 엉덩이를 쥐지는 마라. 어쩌면 윤창중은 엉덩이를 땀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
저잣거리 입말'을 빌리면 " 손에 땀을 쥐거나 불알에 땀 차... " 게 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7회 이후 1점 차 경기가 진행되거나 3점 차로 뒤지더라도 만루 상황이어서 역전이 가능하다면 그 상황은 < 클러치 상황 > 이 된다. 혹자는 우리말 고운 말을 쓰자며 스포츠 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 클러치 상황 >을 " 손에 땀을 쥔 상황 " 이라거나 " 불알에 땀 찬 경우 " 라거나 < 홈 플레이트 > 를 " 집구석 " 으로 부르자는 것 !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꼴불견'이다. 태권도 경기에서 심판은 각자 태어난 국적은 모두 달라도 한결같이 우렁차게 한국어로 " 차렷 ! ", " 시작 ! " , " 그만 !" 이라고 외친다.
태권도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100여 가지'가 넘는 한국어'를 암기해야 한다. 스포츠 중주국에 대한 예우 차원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 히트 앤드 런 " 을 " 넌 쳐라 난 존나게 달린다, 잇힝 ~ " 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순우리말로 야구 용어를 갈아치우면 꽤나 웃긴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 최강타 선수, 불알에 땀 찬 경우에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첫 번째 공은 포수 불알 근처에 떨어진 받아치기 좋은 공'이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공 던졌습니다 !!!! 최강타 선수, 쳤습니다 ! 2루에 있던 황만근 선수 3루 돌아 집구석으로 돌진 ! 아, 아아아 ! 집구석에 들어오자마자 곰 같은 두산 베어즈 남자와 뒹굽니다. 집구석, 엉망이군요. 하지만 1점 추가합니다, 잇힝 !!!! "
스포츠 외래어'를 순화해서 부르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야구 용어'를 순화해서 부르지 않는 태도를 두고 단순하게 혀를 굴리는, 있는 척하려는, 보그 병신체'라고 매도하지는 맙시다. 말꼬리가 길어졌다. 본론으로 바로 가자. 클러치 상황'은 동점 내지 역전이 가능한 상황을 뜻한다.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이야 손에 땀을 쥐지만 클러치 상황에 등장하는 타자는 똥구멍에 습기 찬다. 잘하면 영웅이지만 못하면 역적'이다. 클러치 상황에서 타자가 가지는 심리적 부담감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야구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미학'을 다룬다. 4번 타자'란 3할'을 쳐야 하는데 < 3할 > 이란 7번 실패하고 3번 성공하는 기록이다.
4번 타자가 클러치 상황에서 등장한다고 해도 영웅보다는 역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 같은 소양인'은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 아, 곰곰발 선수 ! 클러치 상황에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오줌을 지렸군요 ! 집구석에다 오줌을 싸다니... 집구석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 " 그런데 유독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선수'가 있다. 찬스에 강한 타자'를 < 클러치 히터 > 라고 부른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오티스 형님'이 대표적이다. 3점 뒤진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홈런을 치고는 한다. 반대로 클러치 상황에서 안타는커녕 곰곰발 선수처럼 오줌만 지리다가 아웃되는 선수를 < 쵸크 히터' > 라고 한다.
한 마디로 찬물만 끼얹는 선수다. " choke " 가 1. 질식시키다. 2. 목을 주리다. 3. ( 감정에 겨워 목이나 목소리가 ) 메이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설명을 안 해도 대충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한 마디로 목을 조르고 싶은 선수'가 바로 쵸크 히터'다. 저잣거리 관중석 입말로는 < 아... 병신 새끼 > < 아, 저 새끼 > < 감독은 왜 자꾸 저걸 내보내는 거야 > < 팀에 도움이 안 되는 놈 > 라고 고함을 친다. 타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아무리 잘 친다 한들 3번 성공하고 7번 실패하는 것이 타자'다. 타석에 들어서면 최소한 6,70%는 실패한다. 억울한 것이다. 과학적 확률로 보자면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아웃'을 당하는 경우'는 당연한 결과'이다.
쵸크 히터' 입장에서는 경기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진짜 실력이 안 나온다, 라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투수도 타자와 같은 입장이니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클러치 히티'는 존재하는 것일까 ? 찬스에 유독 강한 타자'가 있을까 ? 마이클 스태들러의 < 야구의 심리학 > 은 기술적 측면보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심리적 측면에서 야구를 분석한다. ( 몇몇 통계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 확률과 통계에 의하면 클러치 히터'는 없다. 클러치 상황에서 유독 강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다. 안타 칠 때가 되었으니깐 안타가 나온 것이고, 홈런 칠 때가 되니깐 홈런이 나온 것이다. " 그것은 클러치 상황에 대한 능력이 특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좋은 타자였기 때문이었다/ 야구의 심리학 中, 마이크 스태들러 "
클러치 상황에서 타율이 3할이라고 해서 그 선수'를 그 선수를 클러치 히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에 그 선수의 평균 타율이 3할이라면 그 선수는 클러치 상황에서 평균 성적을 냈을 뿐이다. 다만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확률적으로 안타가 나올 시점이 공교롭게도 클러치 상황과 일치했을 뿐이다. < 클러치 상황에 강한 선수 > 라기보다는 < 운이 좋은 선수 > 가 정답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쵸크 히터'를 너무 욕하지는 말자. 그 또한 확률적으로 아웃이 될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을 뿐이다. 언젠가는 팀에 도움이 될 날이 오리라 !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티스와 푸홀스는 확실히 위기에 강한 남자였다. 그들은 진정한 클러치 히터'였다. < 야구의 심리학 > 을 쓴 마이크 스태들러는 미주리大 심리학 부교수'이다. 얼핏 보면 심리학자가 야구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이 외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야구는 투수와 타자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저자의 전공 분야'처럼 읽히기도 한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 실패 > 와 < 우연 > 으로 이루어진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은 타구라고 해서 무조건 안타가 되지는 않는다. 야수가 잡기 좋은 곳에 떨어지면 아웃이 되기 때문이다. 神은 말한다. " 넌 때려라, 낙하점'은 내가 정한다 ! "
반대로 빗맞은 공이 반드시 아웃이 되는 것도 아니다. 텍사스 존'에 떨어진 공은 행운의 안타'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땅볼은 투수 앞으로 가느냐 아니면 3루에 2루 사이로 빠지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갈린다. 흔히 말하는 연속 안타 행진'도 사실은 운이 지배한 결과'이다. 어떤 선수는 7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8번째 경기에서는 무 안타를 친다. 이러한 패턴을 주기적으로 8번 반복한다고 치자. 반면 어떤 선수는 56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내리 8일 동안 안타를 치지 못했다고 치자. 비록 두 타자가 같은 기간 동안 올린 56 안타는 동일하지만 역사는 180도 바뀐다.
전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후자는 야구 역사에서 커다란 획을 긋는다. 조 다마지오 ! 그는 1941년에 56게임 연속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은 3할 5푼 7리'였다. 같은 해, 테드 윌리엄스'는 4할 6리'라는 전설적인 타율을 기록했지만 56게임 연속안타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 신은 다마지오'를 선택했다. 이유는 모른다. 십일조를 열심히 헌납했을까 ? 모를 일이다. 인간은 공을 던지지만 신은 주사위를 던진다. 그것이 바로 야구'다. 하지만 테드 윌리엄스'가 조 다마지오'보다 레벨이 낮을 수는 없다. 1941년 이후 4할 타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뉴욕 양키스 광팬이었던 스티븐 제이 굴드는 < 풀 하우스 > 에서 앞으로 4할 타자'가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타자의 실력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타자와 투수 모두 실력이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호이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 또한 스티브 제이 굴드처럼 메이저리그 골수팬'이었는지도 모른다. 야구 선수야말로 좀 놀아본 인간'들이다. 일반인들은 가끔 주말에 party를 열며 " play " 하지만 야구 선수들은 날마다 park 에서 " play " 한다, " baseball "을 가지고 말이다. 태진아 노래방 전속 성우가 야구장에 가서 홈런을 치는 선수'를 보았다면 다음과 같이 외쳤을 것이다. "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 "
+
개인적으로 다저스 선수 가운데 < 닉 푼토 > 의 허슬 플레이'를 좋아한다. 화려한 경력은 없다. 슬슬 은퇴를 준비할 나이가 되었고 타율도 2할 중반이니 잘 치는 선수는 아니다. 더군다나 몸값은 다저스에서 가장 적은 선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는 온몸'을 던진다. 최선을 다한다. 성실한 선수'다. 자이언트 팬으로서 홈런 왕 배리 본즈'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야구팬 입장에서 보면 배리 본즈'는 재수 없는 이기적 인간'이다. 반면 야구팬이라면 모두 다 닉 푼토를 좋은 선수'라고 기억할 것이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좋은 선수는 < 홈런 > 을 치면 기쁨을 숨기고 묵묵히 트랙을 돈다. 기쁨은 벤치에서 나온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로 나눈다.
홈런을 친 선수가 트랙을 빠르게 도는 이유는 상대 투수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홈런을 친 타자야 하늘을 날고 싶을 만큼 기쁘지만 상대 팀 투수 입장에서 보면 지옥 아니겠는가. 배리 본즈는 종종 커다란 홈런을 치면 걸어서 1루를 걷고는 했다. 으스대는 꼴을 볼 때마다 재수 없었다. 그는 신화가 될 만한 기록을 욕심스럽게 달성했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금지 약물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다. 약물 파동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을 받던 그가 최소 연봉을 받겠다며 자세를 낮춰 각 구단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 어떤 구단도 그를 받아주지는 않았다. 시작은 위대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그를 좋아한 동료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