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여보, 아버님 댁에 " 태양 " 놔드려야 겠어요.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끝인사로 " 안녕히 계십시요 ! " 라거나 " 행복하세요 ! " 혹은 " 건강하십시요 ! " 라는 말 대신 " 잘 견디십시요 ! " 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잘 견뎌야 하는지를 몰라서 당황할 것'이다. 사실 나 또한 < 견디다 > 의 목적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사람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어렴풋이 그 뜻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을 견디어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우울을, 외로움을, 이별을, 세월을, 모욕을 견디어야 할 것'이다. 인생이란 견뎌야 할 것투성이'다.
혹서'를 견뎌야 하는 사람'도 있다. 쪽방촌 사람'들이 그들이다. 1.5평짜리 관'보다 조금 넓은, 창문 없는 쪽방'에서 이 더위'를 견뎌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생존'에 가깝다. 내가 살던 양동에서도 쪽방촌'이 있어 종종 8월 혹서가 찾아오면 119 구조차의 왕래가 잦았다. 가뭄에 논바닥에 갈라지듯, 어느 병든 노인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심장이 갈라진 탓'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8월의 태양은 살인 무기'와 같다. 하지만 태양'만큼 훌륭한 자원'은 없다. 태양은 거대한 < 생활필수품 > 이다. 어느 알라디너'가 올린 <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 에피소드'를 읽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웃으면서 코 팠다. 아, 했다. 좋아서 오, 했다. 와와와.
어느 알라디너가 소개한 < 여자 만화 시리즈 에피소드 > 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 ① 날씨가 좋다 ② 빨래를 널고 ③ 화분도 내다놓는다 ④ 아, 날씨 좋네 ! 시부랄. ⑤ 빨래가 잘 마르니 태양은 훌륭한 가전제품. < 끗 ! >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정말 태양은 좋은 생활 가전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능 좋은 빨래 건조기'이니 말이다. 이 생각'을 확대하면 태양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만능 가전 제품이다. 우선 " 태양은 주요 에너지 공급원으로, 인류가 이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태양에 의존한다. 수력·풍력도 모두 태양에 유래하고, 나무·석유·석탄도 태양열을 저장한 것이며, 오직 조석력(潮汐力)·화산·온천·원자력 등이 직접 태양열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 / 두산 대백과 中 " 이니 가정용 자가 발전기이며, 열 에너지를 전달하니 곤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 태양은 우울증 환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성분을 생성하기 때문에 천연 우울증 약'이기도 하며 비타민제이다. 그리고 가장 눈부신 광원이니 백열전구이며, 살균 효과가 있으니 살균소독기'이기도 하고, 석양이 물들면 야시시한 조명'을 선사하니 알전구 스탠드'이기도 하다.
하, 너무 다양한 기능을 가진 가전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를 " 가진 거라고는 맨발의 청춘 " 이라거나 불알 두 쪽'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알거지'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근사하고 비싼 가전 제품'을 꽤나 소유한 사람이다. 밑비닥 알거지'라 해도 ㉠ 성능 좋은 빨래 건조대 ㉡ 비타민 건강보조제, ㉢ 항우울제 ㉣ 따스한 보일러 ㉤ 최소 12시간 정도 지속되는 백열전구 ㉥ 근사한 무드 스탠드 ㉦ 살균 소독기 ㉧ 공기청정기 외 기타 등등을 보유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든든한 살림 밑천'을 구비하고 사는 삶'은 아닐까 ? 이래저래 태양은 정말 좋은 가전제품'이다.
이제 8월만 견디면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다. 이 세상에 살림 밑천 없는 거지'는 없지 않은가 ! 잘 견디시라. 당신은 돈 한 푼 없는 알거지'가 아니다. 동정 없는 세상'보다 끔찍한 삶은 태양(이라는 이름의 가전제품) 없는 삶이다. 신은 공평하다. 비록 성정 고약한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쫒아냈지만, 쫒아내고 보니 안쓰러운 것이라. 그래서 기본적인 살림 밑천'을 그들에게 보내준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태양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살림 밑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