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너희가 대파'를 아느냐 ?

 

 

< 집요하게 파고든다 > 시리즈'는 말 그대로 어떤 대상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연작 모음'이다. 그러니깐 별생각 없거나 별 뜻 없이 사용한 것'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별생각 있게 만들거나 별 뜻 있게 만들려는 의도'다. 예를 들면 < 올드보이와 군만두 > 가 그렇다. 왜, 하필  군만두'인가 ?  짬뽕도 있고 짜장면도 있고  기스면, 울면 (안 돼 !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서비스로 군만두를 안 주신다)  김치찌개도 있고, 된장찌개도 있지 않은가 ? 내가 내린 결론'은 사설 교도소 직원이 최민식에게 지급해야 할 식대비'를 갈취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으로  종결지었다. 식대비는 교소도 직원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 음식인 군만두'를 식사 대용으로 배급한 것이다. 최민식은 결국 중화요리 대표 스끼다시'만 15년 동안 먹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들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오늘 별생각 없이 오른 생선은 < 대파 > 다. 그렇다, 나는 오늘 도마 대신 쾌도난마 위에 대파를 올려놓고 총총썰기를 해서 대파를 해부할 생각이다. 해부한다고 하니 " 대파가 가진 효능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이 바로 혈액순환에 관한 것인데요, 이는 대파에 있는 황화아릴 성분으로 인한 것인데, 혈액순환을 원할하게 하여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 따위를 앵무새처럼 낭송하는 요리연구가 멘트'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산은 송탄 다음 역이다. 드라마 속 주부가 시장 장바구니'를 들고 등장할 때 항상 보이는 소품이 바로 대파'다. 장바구니 속은 온통 신문지를 구겨서 채우더라도 싱싱한 대파는 보랏듯이 장바구니 입을 뚫고 나온다. 드라마,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파가 장을 보는 장면에서 소품으로 인기가 많은 이유는 대중성과 모양'에 있다. 박경리의 < 토지 > 에 나오는 다음 예문'을  촬영으로 그대로 재현한다고 하자.

 

"중년 아낙이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른 가자미가 두 마리, 볼락이 한 마리, 조갯살 조금, 그리고 푸성귀며 콩나물, 미역 등이 들어 있다.  "

- 토지 中

 

촬영 감독이 리얼리티'를 살린다고 ①  마른 가자미 두 마리  ② 볼락 한 마리  ③ 조갯살 ④ 푸성귀 몇몇 ⑤ 콩나물 ⑥ 미역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고 치자. ( 헤어조크 같은 미친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장바구니 속에 넣었을 것이다. ) 하지만 관객에게는 배 부른 장바구니'을 볼 뿐이지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배우만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낑낑거릴 것이다. 모양새'도 그렇다. 장을 보고 온 풍경보다는 단순히 짐을 진 모습처럼 보인다. 그때 등장하는 소품이 바로 대파'다. 위에 열거한 식재료는 다 필요 없다. 속은 신문지로 채우고 밖으로 싱싱한 대파만 삐죽나오면 근사한 장바구니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 더군다나 대파는 거의 모든 음식에 양념으로 들어가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이처럼 대파는 가장 흔한 한식 식재료'에 해당된다. 조중동은 별일 아닌 일도 " 일파만파 " 라는 단어로 독자의 뇌'를 녹이지만, " 대파 " 는 자박자박 끓인 국물 속에 진한 몸내를 드러내며 손님의 혀를 녹인다. 좋은 식재료이며 훌륭한 소품이다. 하지만 대파의 운명'도 천민자본주의 앞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찌개'나 국거리'에 들어갈 파는 대부분 어슷썰기'를 한다. 그런데 곰탕'이나 설렁탕'을 파는 식당'에 가면 영락없이 십원짜리 동전 모양처럼 생긴 파( 통썰기 = 총총썰기 ) 가 나온다. 대파'를 한번이라도 썰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체구조상 팔은 삐딱한 각도로 어슷썰기'를 해야지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당장 주방으로 달려가서 통통한 대파 하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후 어슷썰기와 총총썰기'를 해보라.

 

일반 가정에서야 대파 하나 써'는 일'은 일도 아니겠지만, 하루종일 대량으로 대파'를 썰어야 하는 식당에서는 왜 굳이 힘들게 총총썰기'를 할까 ? 궁금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들기로 했다.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맑스'였다. 오! 대파 썰기'에서 맑스의 흔적을 찾아내다니 ! 옛날 '생활의 달인 코너'에서 대파 썰기 달인이 나온 적 있다. 얼마나 빠른 시간'에 대파'를 써는가'가 그 달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가 그날 방송에서 선보인 방식은 대파 스무 개 정도'를 가지런히 모아서 커다란 중국식 칼'로 한꺼번에 총총썰기'를 하는 거'였다. 다, 다.다.다.다.다.다.다 ! 순식간이었다. 칼로 썰다'라기 보다는 칼로 절단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그 달인'이 바로 유명한 마포 모 설렁탕 20년 차 주방 직원'이었다.

 

그렇다 !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생산량을 최대로 뽑아내자는 욕심'이 바로 대파 총총썰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대파 하나를 썰 때는 어슷썰기가 빠르겠지만 대파 한 묶음을 한 번에 썰 때는 총총썰기가 빠르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다. 그렇다면 대파 썰기'에 이골이 난 달인은 열 사람 몫'을 짧은 시간에 혼자 해치웠으니 그만큼 쉬는 시간이 늘어났을까 ? 천만에 ! 오히려 이 재주'는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부담 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포드는 대파 총총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포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포드주의'다. ( 믿거나 말거나 )

 

포드는 바로 이 반복에 따른 빠른 작업 속도'에 목숨을 건 기업가'였다 : 1. 콘베이어'가 조립제품'을 안전하게 b라인 노동자에게 옮겨준다. 2. 나사 하나를 조이면, 3. 바로 다음 조립제품이 기다린다.  4. 만약 속도가 늦어져 나사를 조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전체 라인'이 비상벨을 울리며 정지된다. 왜냐하면 c라인은 반드시 b라인에서 일감이 건너와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숙련 노동자 1명이 전체 노동 라인'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쪽팔린가 ! 이 비상벨은 " 삐이익 ~ " 이라는 의성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행간은 " 선생님 ! 쟤, 바지에 똥 쌌어요 ! " 라는,  새침데기 짝꿍이 전하는 고자질이나 다름없다.

 

노동자는 싸늘한 동료들이 던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나사를 조인다. 아, 포드 ! 잔머리'를 제대로 굴렸다. 물론, 포드는 성공했다. 노동자들이 이 콘베이어 속도'에 익숙해지자 좀더 악랄한 포스트 포드'는 콘베이어 속도'를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높이기 시작했다. 반복에 따른 신체 반응'은 곧 속도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결론은 뻔하다. 콘베이어 속도'는 아우토반이 되어 갔다. 노동자는 그렇게 소비되어가는 것이다. 오직 속도전이다. 속도. 속도는, 오 ! 무섭다. 수천 년 내려오던 어슷썰기'가 어느 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폐기처분된 것이다.

 

총총썰기'로 잘린 동전 같은 대파'를 보면 맑스와 포드'가 보인다.

 

 

 

 

 

 

 

 

 

 

+

 

총총썰기에 대한 글은 전에 써두었던 내용이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0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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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8-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파를 다.다.다.다. 절단하기나
인간이 콘베어에 안절부절하기나
훌쩍거림은 피할 수 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1 08:41   좋아요 0 | URL
덧글이 늦어서 다다다다 급히 덧글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