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 !

 

 

 

한때 나는 야구 오따꾸'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학 문제 한 번 푼 적 없지만 밤 10시만 되면 야구 경기 결과를 토대로 투수 방어율과 타자 타율'을 일일이 체크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오따꾸라 할 만했다. 참고로 학창 시절 내내 수학 성적은 늘 30점이었다. 미분, 적분을 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그나마 집합이나 도형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 하나 가지고 한 시간 동안 끙끙대며 풀거나 도형 문제의 경우엔 도형 안에다가 눈, 코, 입'을 그려 넣어서 근사한 사람을 만들고는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한번은 야간 학습 시간에 이어폰으로 야구 중계를 듣다가 역전 스리런 홈런에 나도 모르게 홈런이라고 고함을 쳐서 선생에게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야구가 흔히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느린 경기'여서 재미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야구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진정한 두뇌 플레이'라고 할 만한 스포츠다. 그래서 나는 야구 중계를 보면 쉴새없이 수다를 떤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 중에  50년대 명포수로 활약했던 요기배라'라는 선수가 있다. 배라는 쉴 새 없이 떠드는 촉새'였다. 포수인 그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 따발총 말 총알 " 을 상대 선수 뇌 속에 사정 없이 쏘아대는 바람에 타자는 공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이봐, 마이클 불끈 !  자네 아내 어제 나이트 가서 미친듯이 흔들었다더군.

-  ..... ( 솔깃 )

-  자네가 원정 경기 하고 있을 때마다 나이트 가서 흔든다는 거야 !

-  ..... ( 부글부글 )

-  맙소사,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시간이면 흔들고 있겠네 !

-  ...... ( ! )

 

   타자는 요기배라가 쏟아내는 말에 귀기울이다가 삼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상대 팀'은 요기배라의 잔재주를 잘 알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다는 배라의 힘'이었다. 이러한 수다'는 꼭 배라가 수비를 할 때만 사용하는 전략이 아니었다. 안타로 1루에 나가면 상대편 1루수와도 정열적으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 자네 ! 일본 코털제거기 써봤어 ? 놀라지 마, 행크 ! 영 점 삼 미리'까지 깎인다네. 자 봐봐 ? 내 콧구멍을 뚫어지게 보라구 !  " 배라의 수다에 1루수는 종종 배라의 콧구멍을 보다가 평범한 1루 땅볼을 놓치기도 했다. 그가 얼마나 수다가 심했던지 심지어는 1루 관중석 관객들 하고도 대화를 나눴다고 하니 놀라울 지경이다. 그러자 상대 팀들은 배라 수다 경계를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발이 빠른 배라'가 도루를 시도하면, 상대 팀은 어떻게 알았는지 피치아웃'을 시켜서 배라는 아웃을 당하기 일쑤였다. 사인이 노출되었다고 판단했으나 사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상대 팀은 배라가 1루에서 2루로 뛸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  답은 배라의 수다에 있다. 말 많은 배라'는 감독의 도루 사인'만 나오면 도루 할 생각에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이 많던 배라가 말이다. 그것은 마치 포커에서 로열 스트레이트 풀러쉬를 잡은 플레이어의 굳은 얼굴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때다. 이 시점이 배라가 뛰는 타이밍'이라는 사실을  상대팀은 배라의 버릇을 통해 간파한 것이었다. 그러니 매일 아웃당할 수밖에 !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감독은 말 많은 배라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 배라 ! 다음에도 나불나불대면 그땐 야구장이 아니라 말 많은 경마장'이나 가라고 ! 언더스탠드 ?  "  하지만 천성이 사람 좋은 수다맨이었던 배라'는 1루에 나가 수다를 떠는 버릇을 완전히 고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싶은 배라는 입이 간질간질 떨렸다. 결국 배라는 도루 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감독이 안 본다 싶으면 이때다 싶어서 조잘조잘댔다. 배라가 조잘대는 버릇을 도저히 고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감독은 극약 처방을 내린다.

 

" 이봐, 배라 !  앞으로는 입을 다물지 말고 항상 지껄이라구. 도루 사인이 나올 때도 항상 지껄이란 말이야. 달리면서도 수다를 떨라고 ! 오케이 ? 그러면 상대팀이 우리의 계획을 모를 것이 아닌가 ? "

 

신이 난 배라는 1루에서 2루를 훔치는 동안 달리면서도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이렇듯 수다는 종종 당신을 아웃시킬 수도 있다. 말 많은 사람은 말이 적은 사람보다 실수할 가능성이 크지만 반대로 현실을 완벽하게 외면하는 침묵은 섣부른 연설가보다 비겁하기도 하다. 내가 김영하와 소조의 논쟁에서 소조의 편이 된 이유는 김영하의 침묵도 한몫한다. 소설가가 꼭 투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민중보다는 먼저 그 침묵을 깨야할 의무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완벽하게 외면하는 김영하의 침묵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침묵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 차라리 이명박 시대에는 침묵보다는 수다맨이 더 정의로운 사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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