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사회 : 나는 행복에 반대한다.
한국 사회 진단 시리즈
1. 갑질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66382
2, 벼락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68210
3. 낙지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70810
4.10분 사회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5891
현대인은 < 행복 > 에 목숨을 건다. 희망사항을 물어보면 대부분 < 행복 > 하게 사는 것을 뽑는다. 이영애'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 앞에서 " 여자라서 행복해요 ! " 라고 말했을 때 < 행복-바이러스 > 는 순식간에 퍼졌다. 여자라서 불행한 대표적인 성불평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영애가 여자라서 행복하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미지'가 어떻게 현실을 조작하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 세계경제포럼(WEF) 은 대한민국 성평등 지수를 135개국 가운데 108위로 뽑았다. 하위권에서도 최하위권으로 나이지리아나 수단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며 아랍권 국가보다도 낮다.
하지만 조작한 이영애식 행복론은 사스'보다 전염성이 더욱 강하다. 사람들은 행복한 여자'가 되기 위해 피나는 공부를 하고, 알파벳 S를 만들기 위해 알파벳 A,D,H,I 는 하루 종일 다이어트에 목숨을 건다. 알파벳 I는 볼륨을 위해서 가슴에 말랑말랑한 참외 두 개'를 넣고, 알파벳 A는 하체 비만 때문에 하루 종일 뛴다. 그런가 하며 D는 뱃살을 빼기 위해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현기증이 나고, H는 허리를 바짝 졸라매서 맞지도 않은 44사이즈'를 억지로 입는다. 걸을 때마다 괄약근에서 방귀'가 피식 하고 아, 나올 것 같아. 그리고 연애할 대상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신입 연봉을 3,800으로 시작한 수컷을 찾기를 원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 행복 " 이라는 가치는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행복 > 이라는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는 말이다. 행복은 과연 삶의 목표로 삼을 만큼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 인생의 목표를 행복하게 사는 것'에 맞추면 오히려 비극이 될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집착은 종종 파국을 맞이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다. 김미경의 < 언니의 독설 > 스타일과 김난도의 < 아프니깐 청춘 > 그리고 혜민 스님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이 지향하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김미경은 악착같이 살아서 행복한 삶을 획득하라고 하고, 김난도는 고진감래'라고 말한다. 그러하니... 청춘이여 ! 고생은 사서 해라. 좆빠지고 피똥 싸는 걸 두려워 마라 ! 그런가 하면 혜민'은 < 불행 > 은 좌파들이 항상 징징대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정한다. 쉽게 말해서 88만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행한 것은 불합리한 비정규직 노동 구조 탓 때문이 아니라 만족을 모르는 삐딱한 마음 탓이라고 말한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행복은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 정규직과 비교하지 마세요. 맞벌이로 바쁘시죠 ? 더 많은 스킨쉽을 위해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서 눈을 맞춥시다. 참, 쉽죠 ?
그런데 행복은 효율 대비 성과'에 비하면 효율성이 낮은 에너지'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값은 낮다. 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효율 대비 성과가 높다. 행복하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보다는 게으른 만족자'가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시큰둥하는 이유는 < 행복이란 녀석은 불행이라는 녀석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 와 같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는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행복이란 상대적 개념이다. 나는 단 한번도 천국에 있는 천사들이 행복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에 < 천사라서 행복해요 ! > 라고 주장하는 천사'가 있다면 그 천사는 당신을 검은 허방 속에 빠트리기 위한 악마'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행복한 이유는 누군가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불행의 피'를 빨아먹는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불행하다고 진단한다. 당신이 올린 행복한 표정은 누군가를 우울하게 만든다. 행복은 이기적이다.
추운 겨울날 낙원동 낡은 극장에서 < 분노의 포도 /존 포드 > 를 보고 나오다가 문득 철탑 노동자'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바람은 낮은 데'에서는 울지 않고 높은 곳에서만 우는 짐승이어서 철탑 아래 나는 그 울음을 듣지 못하고,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는 그 울음을 듣는다. 아득해졌다. 이 추운 겨울 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일까 ? 흔들리는 철탑 위에서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 철탑 위에 오른 노동자의 불행은 결국 철탑 아래 노동자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다. 목숨 걸고 싸운 철탑노동자 때문에 노동 환경'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니 말이다.
행복보다 중요한 가치'는 불행'이다. 행복은 뻐꾸기 알'이다. 현대인은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행복을 쫒지 말고 자유로운 영혼을 쫓아야 한다. 행복을 굳이 버릴 필요는 없지만 신주단지처럼 애지중지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 모든 예술가는 대부분 불행했다. 늙어 병든 말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말에 대한 연민 때문에 미쳐버린 니체도,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도,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굶어죽어가는 표범도 모두 불행했다. 그들이 행복했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불행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적어도 불행은 행복처럼 염치없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 나는 내 주저흔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내 불행 때문에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기꺼이 납보다 어두운 낯으로 당신을 볼 것이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당신, 행복해라. 나는 당신을 위해 주저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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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재주도 없지만 글 재주도 없다. 하지만 말은 제주도'에 많고, 귤도 제주도에 많다. 재주는 곰이 부린다지만, 사실 제주는 말이 많은 고장이지 않은가 ? 제주도에 곰이 살고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말이 많은 제주는 좋아한다. 아... 이런 식의 말장난'을 좋아한다. 윗 글의 주제는 행복을 버리고 불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아.. 어쩌란 말이냐, 따위가 아니다. < 전시된 행복 > 에 대한 비판이다. 자신의 행복을 전시하려는 욕망'은 타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다. 이웃이 초상을 당했다면 최소한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도리이다. 크게 울고 작게 웃어야 한다. 무조건 행복을 쟁취해야 된다는 욕망은 결국 쾌락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행복과 쾌락은 사촌지간'이다.
우리가 종종 자유와 행복을 혼동한다. 자유(로운 삶이나 정신)를 얻으면 자동적으로 행복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행복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집단과 규율 속'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 행복 = 자유 > 라고 착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전시성 행복'은 기복(신앙)과 유사하다. 한국 기독교가 비판받는 대목은 이기적인 기복 신앙 때문이다. 현대인이 강박적으로 행복을 쟁취하려는 태도는 기독교 기복신앙을 닮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