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甲과 멘토'는 다르지 않다.
옛날 조폭은 사시미칼 들고 싸웠다.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은 떼로 몰려다닌다고 했던가 ? ( 웃자고 한 소리다. ) 휠라'를 입고 일수 가방을 손에 든 남자는 대부분 조폭이었다. 오셨습니까, 행님 ! 조폭 세계에서 乙은 느닷없이 하와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존재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말할 때는 이미 乙이 아니다. 하와이는 조선 시대 흑산도'다. 수많은 乙들이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서 귀양'을 갔던 그 흑산도 말이다. < 넘버 3 > 의 송강호가 증명했듯이 조폭 세계는 甲이이라는 이미지의 과잉'이다. 갑과 을이 명확한 세계가 바로 조폭이다. 그들에게는 딱 두 가지다. 현정화와 임춘애. 갑이 현정화라면 현정화인 거다. 을이 " 임춘애입니다, 행님 ! " 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녀석은 존나게 맞게 된다. 조폭은 그런 놈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다.

그런데 조폭'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사시미칼을 들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는다. 휠라 대신 아르마니'를 입었다.뭔가 바뀌긴 바뀌었다. 그런데 조폭의 우아하며 동시에 이상한 세계'를 변화'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진화한 것이지 변화한 것이 아니다. 휠라 입은 조폭이나 아르마니 입은 조폭이나 다른 것은 없다. 폭력의 논리'로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빼앗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라는 뜻이다. 인간이란 자기합리화의 달인이어서 박정희와 (몇몇) 강철군화들은 君을 軍으로 이해하기도 했고, 또 몇몇 양아치'는 頭'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통일된다. 甲'이다 !

< 갑 > 을 다른 말로 하면 명령하는 주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갑의 커뮤니티에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 닥치고 내 말 들어 ! " 오로지 명령과 지적과 충고'가 있을 뿐이다. 현대의 조폭이 휠라에서 아르마니로, 순금 목걸이에서 넥타이로 진화를 모색했다면, 갑'은 색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며 자신의 정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보다 극단적이며 극적이다. 변화보다는 변장'에 가까운 허물 벗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재수없는 君, 軍, 頭 '는 어떤 식으로 변신했을까 ? 궁금하신가 ? 정말 궁금하신가 ?! 궁금하면 500원.
< 신화 > 의 핵심'은 변신'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건국신화는 변신'이 핵심이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 조선 호랑이는 부실한 반찬에 성질이 뻗쳐서 밥상 엎고 김밥천국으로 달려갔고, 조선 곰은 견디어서 고조선 천년왕국의 시조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참는냐 못 참느냐에 따라서 누구는 김밥천국의 다꽝이 되고, 누구는 천년왕국의 대빵'이 된다. 모든 것은 한 끗 차이'다. 이 한 끗이라는 아슬아슬한 간극은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 " 이라는 유행가 가사로 설명된다.

여기서 님'은 나와 너를 동일시하는 사랑의 욕망이고, 남'은 나와 너를 확연하게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미움의 욕망이다. 사랑에 눈이 멀면 님이며, 미워하면 남이 된다. 하이데거나 들뢰즈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들이 말하는 < 동일성과 차이 > 를 쉽게 풀면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인생사 " 다. 이 얼마나 쉽고 간결한가 ! 독일에 위대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김명애'라는 가수가 있다. 하이데거와 들뢰즈'가 나오니 복잡하신가. 독자여, 지루하신가 ? 대한민국 티븨 드라마에 빠져서 머리가 똥이 된 독자여. 좋다, 쉽게 가자 ! 님과 남이라는 아슬아슬한 한 끗'은 " 변신 " 이라는 현상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변신의 핵심은 A에서 B 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A에서 약간 다른 A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김명애'라는 가수가 말한 < 님과 남 > 은 동일인물이다. 김명애 씨가 말한 사람은 황만근 씨다. 사랑에 눈이 멀어 황만근의 불기둥을 받아들일 땐 님이었으나, 니미럴 ! 도장 찍었더니 남이다. 님도 황만근 씨요, 남도 황만근 씨다. 동일인물이다.

자,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자. 위에서 지적한 군림하는 갑'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바로 멘토와 힐링'으로 바뀌었다. 갑이라는 꼰대의 이미지'가 부정적이다보니 변신을 모색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요즘은 특정 직업군을 외국어'로 부르는 것이 대유행 아니었던가. 주방장'보다는 셰프'라고 하면 고급스럽다. 그래서 甲은 한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선택한다. 사실 갑이나 멘토나 힐링의 공통점은 잔소리 늘어놓는 갑'이다. 그런데 젊은 乙은 이러한 변신'을 알지 못한다. 엄마가 하는 잔소리'는 늙은이의 쉰소리가 되고, 멘토 이은미의 잔소리'는 깨달음이 된다. 김난도가 < 아프니깐 청춘이다 > 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젊은이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잔소리'다. 청춘은 다 아픈 법인가 ? 나도 아팠으니 너도 아파야 한다는 말인가 ? 김난도가 하고 싶은 잔소리는 " 어릴 땐 다 방황하는 법이란다. " 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렇다, 당신의 아버지가 늘 하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왜 돈 주고 잔소리'를 사서, 잔소리를 듣고, 잔소리에 감동하는 것일까. 지금 당신은 김난도 씨의 < 아픔이라는 감성'은 가족력'이다 > 라는 황당한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이다. < 아프니깐 청춘이다 > 는 새빨간 혀'다. 청춘은 아플 수 있다는 전제는 가능하지만 아프니깐 청춘이다는 성립이 될 수 없다. 전자는 전체에서 부분을 말하지만, 후자는 부분에서 전체를 규정짓는다. 논리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저런 소리 못한다. 당신이 김난도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아픔이라는 감성은 가족력에 따른 유전병'이라는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라 마케팅'이다. 잔소리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악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정도면 강물을 판 김삿갓'이다.

김난도가 청춘을 위로하는 것은 주접이다. 같은 이유로 이은미가 < 위대한 탄생 > 에서 멘티'에게 쏟아내는 사랑의 매 또한 주접이다. 김태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러한 잔소리에 감동하는 시청자나 독자도 주접이다. 그들의 말은 위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잔소리다. "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 라는 전제 하에 쏟아내는 충고는 이미 "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 라고 발화하는 순간 (본론을 듣기도 전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열정을 무료로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벌이'를 위해서 멘토를 수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멘토링이 굴러가기 전에 미장원 가서 몇 시간 동안 머리를 하고, 최고 비싼 옷을 입고, 비싼 화장으로 자신의 공작 깃털을 펼치는 태도'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한 맨발' 밖에 없는 멘티'를 대하는 진심어린 태도인가 ? 그것이 무슨 멘토의 자세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에 나오는 말을 살짝 바꿔 " 乙이여, 우리 적어도 < 똥 > 은 되지는 말자 ! " 이다. 무식하게 멘토로 변신한 갑'도 못 알아보고 열광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해야 하나. 돈 주고 잔소리'를 산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까 ? 휠라 입은 양아치나 아르마니'를 입은 양아치'나 모두 한 끗이다. 변신의 핵심은 차이'가 아니라 동일성'이다. 깨닫지 못하면 당신은 하와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