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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2 -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
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애들은 항구에 가 고기잡게 말지어다
여덟발 문어에게 걸려들까 무서워라
- 정약용
큰 놈은 길이가 7~8자에 이른다. 동북 바다에서 나는 놈은 길이가 2장(丈) 정도 된다. 머리는 둥글고 머리 밑은 어깨처럼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여덟 개의 긴 다리가 나와 있다. 다리의 아랫면에는 국화꽃 모양의 단화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이것으로 물체에 달라붙는데 일단 물체에 달라붙고 나면 그 몸이 끊어져도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 바위굴 속에 숨어 있다. 돌아다닐 때는 다리 밑의 국제( 국화 모양이 발굽 ) 을 사용해서 나아간다. 여덟 개의 다리 한가운데에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입이다. 입에는 매의 부리와 같은 이빨이 두 개 있으며, 매우 단단하고 강하다. 장어는 물에서 나와도 죽지 않지만 그 이빨을 빼버리면 곧 죽는다. 배와 장이 오히려 머리 속에 있고, 눈은 목 부분에 있다. 몸빛깔은 홍백색이지만 껍질을 벗겨내면 눈처럼 흰 살이 드러난다. 국제는 붉은 빛깔이다. 맛은 달고 전복과 비슷하다. 회로 먹어도 좋고 말려 먹어도 좋다. 뱃속에는 사람들이 온돌이라고 부르는 물체가 들어 있는데 이것으로 종기를 치료할 수있다. 물에 개어 바르면 단독( 피부병의 일종 ) 에 신통한 효험이 있다.
- 자산어보, [ 장어, 속명 문어 ] 중. 현산어보를 찾아서 2'에서 발췌
文漁 : " 어머, 어머머머 ! 그건 정말 오해예요. "
우리 선조들은 유선형의 몸매에,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는 비쥬얼'을 선호했다. 그래서 맛은 있지만 비쥬얼이 약한 갈치나 멸치'는 대상을 낮잡아 부르는 ~ 치'로 끝나는 반면에, 맛은 그리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몸매는 훌륭한 숭어나 민어'에게는 한자 ~ 魚' 로 분류했다.
한글은 상놈들이나 배우는 문자'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한글 경시 사상'은 물고기 이름에서도 그 흔적을 알 수 있다. 못난 물고기는 순우리말 이름'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여기서 눈치가 빠른 독자'는 내 주장에 헛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반격'을 할 것이다. 문어, 그렇다 ! 문어'는 사실 징그러운 바다 물고기'이다. 유선형의 몸매도 아니고, 비늘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다. 더군다나 뱀처럼 생긴 다리 8개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이란 ! 이토록 흉물스러운 물고기'에게 왜 고고한 족보인 < ~ 魚' > 를 선사했을까 ?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먹물'이다. 문어의 먹물'은 선비가 늘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는 문방사우 중 하나가 아니었는가 ? 사정이 그러하니 이 징그러운 물고기에게 ~ 어'라는 직급을 하사하고 그 앞에 文'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 잘난 양반들의 그 지랄같은 한문 숭배란......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 해서 한글을 만드신 것이 아닌가 ? 그 깊은 뜻도 모르니 세종대왕은 광화문 광장'에 앉아 한숨만 쉰다. 그 먹물은 그 먹물과는 다른 먹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먹물이 그 먹물과 같다고 우기는 먹물들의 검은 속내'에 또 한 번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줏대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 그에 비하면 서양인은 최소한 일관성'을 유지했다. 다음에 나열한 물고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
쥐가오리, 문어, 낙지, 아귀.
서양에서는 위의 물고기를 모두 devilfish'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쥐가오리, 낙지, 오징어, 문어, 아귀'를 통틀어서 악마의 물고기'라고 부른다. ( 사실 아귀의 경우는 조선 어부들도 재수없다고 해서 그물에 잡혀 올라오는 즉시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물텀벙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 이처럼 서양 사람들이 데빌피쉬'라고 하면서까지 이들 물고기를 혐오하는 까닭은 성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보면 지느러미가 없고,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마라, 라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느러미가 있고 비닐이 있는 생선을 선호하는 취향은 동서양 모두 동일한 모양이다.
사실 美는 어느 정도 전세계적 공통분모다. 아무리 문화적 차이가 난다고 해도 콩고 사람들 또한 박지선 사진보다는 김태희 사진을 보며 미인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문화적 속사정'이 있다 보니, 서양인들이 보기엔 한국인의 산낙지 시식은 언빌리버블한 것이다. 오, 오오오오마이갓'이다. 박찬욱의 < 올드보이 > 에서 서양인들이 경악스러워 했던 장면은 망치'로 사람 머리'를 공격하는 장면이 아니라 최민식이 산낙지 먹는 장면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살아 있는 다리로 입술을 더듬는, 아 ! 낙지 낙지 산낙지. 그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을 것이다. 므, 므므므므므므므시므시하다.
문어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허먼 멜빌의 < 백경 > 에서도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는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가 한판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들은 존나 스펙타클하게 싸웠다. 서양인들은 당연히 문어나 오징어 따위'를 악마라고 해서 고래를 응원했겠지만 먹물을 숭배하던 조선 선비들은 입장이 달랐을 것이다. 고래 이기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서양인을 보며 쌍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맞아, 그래 그래.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 뜬금없이, " 그래 그래 그랬을 것이 분... " 따위'는 곰곰생각하는발의 독특한 문장력이라고 이해해달라. " 고래 이기라고 고래고래 ~ " 에 대한 라임을 맞추기 위한 장단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게 무슨 책 리뷰인가, 라고 욕을 하시는 분도 계시리라. 한 마디 한다. 내 맘이유 !
서양인의 문어/오징어 혐오증은 크라켄'이라는 괴물에서 정점을 이룬다. 크라켄은 일종의 대왕오징어나 대왕문어'인데 쥘 베른의 < 해저2만리 > 에서 괴물로 등장한 이후, 해양 어드밴쳐 영화에서는 거의 단골로 등장하는 괴물이 되었다. 악당으로써 오죽 인기가 많았으면 < 케리비안의 해적 3 > 에서도 크라켄이 등장했겠는가. < 스파이더맨 > 에서의 그 유명한 " 닥터옥토퍼스 " 는 어떤가 ? 크라켄은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를 두 동강 내는 주범으로 찍혔다.
하지만 문어'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보면 서양인들의 이 혐오'는 지극히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아닐 수 없다. 문어는 물고기 중에서도 머리가 매우 뛰어난 종이다. 오죽하면 물속의 유인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를까. 또한 문어는 자신의 몸을 주변 환경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꾼다. 바위가 되었다가, 산호초가 되기도 하고, 얼룩무늬뱀이 되기도 한다. 정말 똑똑한, 스마트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녀석이다. 나는 옛날부터 옥토퍼스'를 좋아했다. 인간과 괴물의 대사투'에서 언제나 괴물을 응원했다. 인간들은 죽거나 말거나......
사실 괴물'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니스트'이다. 왜냐하면 괴물'이란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괴물과의 사투를 통해서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911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나서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심리와 동일하다. 911이후 콘돔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사실은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한 괴물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 아니었을까 ? 이처럼 괴물은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티'를 복원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존재이다. 우리는 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통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성찰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재발견이다. 괴물은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옥토퍼스의 난동이 끝나면 생존자들은 비로소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랑이란 폐허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것, 타이타닉에서 두 청춘 남녀가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빙하'라는 이름의 옥토퍼스가 배를 두 동강 냈기 때문이다. ( 옛날 사람들은 배를 두 동강 내는 주범으로 대왕오징어나 크라켄을 지목했다. ) 옥토퍼스'란 어쩌면 그들의 사랑을 빛나게 하기 위한 조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페허에서 나눈 키스는 괴물이 당신들에게 선사한 선물이다. 문어는 그런 존재다. 그는 휴머니스트이다.
- 이미지 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