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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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방, 새벽 3시.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어두워지면 집집마다 불이 켜진다. 저녁 7시가 되면 하나 둘 창문에 불이 들어오고 아버지 가방에 들어오신다. 하지만 창문의 풍경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녁 8시의 불 켜진 창문도 마찬가지다. 9시도 마찬가지이고, 10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밤 9시와 10시 사이에는 불이 켜지지 않은 컴컴한 창문이 더 궁금해진다. 궁금하다기보다는 쓸쓸한 느낌이다.

 

 

하지만 예외'가 딱 하나 존재한다. 새벽 3시에도 꺼지지 않는 창문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저 사람은 새벽 3시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 그것은 묘한 동료애'를 불러일으킨다.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늦거나 이른 새벽 3시에 서로 깨어 있다는 사실은 위로'에 가깝다.  너 잠들지 못하고, 나 깨어 있다. 이 황량한 도시에서 말이다. 마법과 같다. 새벽 3시에도 꺼지지 않는 창문은 휴머니즘'이다.

 

 

 

인본주의'란 본래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었던가 ? 나는 < 새벽 3시의 불 켜진 창문 > 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왜 잠들지 못할까, 아파서 깨어났을까, 책을 읽고 있을까, 시를 쓰고 있을까, 아니면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내가 < 쇼생크 탈출 >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그렇고 그런, 따분한 헐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할리우드 탈옥영화라고 생각했다. 돈 시겔의 걸작 < 알카트라즈 탈출 > 에 대한 오마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쇼생크 탈출 > 보다는 < 알카트라즈 탈출 > 이 더 좋았다. 재미있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영화는 될 수 없다. 궁금하지 않았다. 저녁 7시가 되면 쨍 하고 불 밝히는 창문처럼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몇 번을 더 봤다. 저녁 8시의 관람도 마찬가지였다. 9시, 10시, 11시.......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3시의 창문처럼 모든 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앤디는 어떤 사람일까 ?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된 곳은 석수역에 위치한 < 내 안의 너’ > 라는 모텔 403호실에서 였다. 그날 나는 애인과 함께 벌거벗고 뒹굴었다. 창 밖에는 장맛비가 쉴 새 없이 내렸다. 나는 여자의 봉긋한 젖가슴과 촉촉한 동굴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자가 새빨간 혀’로 내 젖꼭지를 아릿하게 깨물 때도 좋았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강아지가 어미 젖을 찾듯이 말이다. 침대시트는 흠뻑 젖었고 우리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티븨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앤디를 연기한 팀 로빈스가 말했다. “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 있는 일하는 동료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 병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 

 

 

장면이 전환되면 옥상의 죄수들은 땡볕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나는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자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신 후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입 속에 있는 맥주를 내 입 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우리 헤어지지 말자, 아프지 말자,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영혼이 되자. 나는 방긋 웃었고 여자도 방긋 웃었다. 우린 모두 이 영화를 좋아했다. 아니, 여자는 원래 이 영화를 좋아했었다. 

 

 

우린 이 영화를 함께 서너 번 더 보았다. 세월이 흘렀고 우린 헤어졌다. 헤어졌다기보다는 내가 그녀 곁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녀는 감옥이었고 나는 죄수였다.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았고, 두 번째는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으며, 세 번째도 깊은 밤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가 티븨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번째, 여섯 번째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보게 되는 순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며 스무 번을 넘기면 영원한 걸작이 된다.

 

 

그 여자와의 만남도 그랬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여자는 그냥 좋은 여자였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예의 바른 여자였고, 세번째 보았을 때는 조금 쓸쓸해 보였다. 네 번째는 많이 쓸쓸해 보였고, 다섯 번째는 적당히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일곱 번째 보던 날, 나는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마스터피스였다.

 

 

처음부터 보자마자 좋아지는 영화가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이라는 영화가 그렇다. 갈대를 흔들리게 만든, 그 느닷없이 다가온 바람의 속도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더 이상 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에는좋았으나 다시 보면 실망을 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싫었으나 나중에 좋아지는 영화도 있다. < 카사블랑카 > 가 그렇다. 옛 애인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영화가 끝날 때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쇼생크 앤딩.  

 

 

 

펼친 부분 접기 ▲

 

 지금까지 쇼생크탈출 시리즈'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에게 영광 있으라.

 

- E N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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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스리 2013-06-01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로필 사진 멋져부러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1 02:53   좋아요 0 | URL
프로필 5년 전입니다.

새벽 2013-06-01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 쇼생크 탈출을 예전보다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OD로 한 번 더 봐야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1 02:54   좋아요 0 | URL
네에... 이제 보시면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남성 로맨스 영화로 봐보세요. 은근 재미있습니다.

lacemaker 2013-06-01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새벽까지 안 자고 있습니다. (안 자고 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습니다, 만!)
이상하게도 요새는 자꾸 낮에 있었던 일들이 몽땅 다 거짓말 같이 느껴지곤 합니다.
(어쩌면 낮이라는 시간 자체가.)
그래서 이 밤에 안 자려고 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1 12:1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레이스메이커 님. 레이스메이크 님은 늘 깨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도 야행성 같습니다. 밤엔 묘하게 활기가 샘 솟습니다.

히히 2013-06-0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휴머니즘=눈물 ; 내 안에 저장된 불쌍한 진리.
[새벽 3시에도 꺼지지 않는 창문은 휴머니즘'이다] 역시 변이가 매력있어.

곰곰생각하는발 2013-06-01 16:4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어느날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오는데 새벽 3시에 말이죠. 언덕길 위로 불켜진 창문이 보이더라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뭐 하고 있을까 ? 어떤 사람일까. 글을 쓰고 있을까 ? 그런 생각말입니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아닙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니 인문학과 새벽3시 창문은 동일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