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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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쇼생크와 여성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8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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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왼쪽 어깨가 부러지고 왼쪽 팔이 탈골이 되었다. 성정이 거칠어서, 정이 오고가면 좋으련만 정 대신 주먹이 오고갔다. 팔과 어깨를 고정시키느라 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석고로 팔과 가슴 전체를 하나로 고정시켜야 했다.  석고 밖으로는 간신히 손바닥만 나와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무심코 책상에 놓인 팽귄 나무 조각을 보다 피식 웃었다. 기브스한 꼴이 마치 팽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왼손으로 하는 일은 공을 던질 때가 전부여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공만 던지지 않으면 되니깐 ! 숟가락도 오른손으로 쥐면 되고, 연필도 오른손으로 쥐면 되고, 책도 오른손으로 넘기면 된다.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에도 오른손으로 그리면 된다. 생각해 보니, 왼손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른손이 부지런한 개미라면 왼손은 빈둥빈둥 노는 베짱이.

하지만 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으려고 했으나 오른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다음 과제는 옷을 입는 숙제였다. 옷을 입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결정적 문제는 머리를 묶는 일이었다. ( 오해는 마시라. 나는 남자다. ) 이 일만큼은 혼자서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다.

머리를 묶는 것을 포기하고 신발을 신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신발 끈이 풀려 있는 것이 아닌가 ! 이렇듯 하나부터 열까지, 오이도에서 당고개까지, 수서에서 구파발까지 오른팔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알게 모르게 왼팔은 오른팔이 하는 일을 묵묵히 도와 준 조력자였던 것이다. 다 된 밥상 위에 놓인 염치없는 숟가락 하나가 아니다.  결핍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상실했을 때 발생하게 되는 불편이다. 

 

영화 < 쇼생크 탈출 >은 부러진 왼팔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다룬 한 의 드라마 같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부러진 왼팔이 주는 교훈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감옥이란 결핍의 세계이다. 부러진 왼팔이며, 서랍 속 잡동사니'이다. 우리는 감옥을 통해서 중요하지 않은, 쓸모없는흔해빠진 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죄수들이 야외 건물 옥상에서 마시던 시원한 맥주는 평상시 동네 술집에서 마시던 그 맛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맥주를 마시고 있던 죄수들의 얼굴을 카메라가 느리게 보여줄 때이다. 카메라는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에 부는 바람처럼 천천히 얼굴를 훑는다. 이 기막힌 맥주 맛에 감동한 그 얼굴을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때 마신 맥주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감옥이란 잡동사니'가 주인공으로써 대접 받는 세계이다. 일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 서랍 속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지만 감옥에서는 절대적인 연장이 된다. 로빈슨 크루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페르가모 구두나 페텍 시계가 아니라 망치, 담배 한 개피, 성냥, 풍만한 엉덩이가 매력적인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 하모니카, 낡은 야구공, 포르노 잡지이다. 어쩌면 감옥은 무인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결핍을 통해서 일상에서 소홀하게 다루었던 것을 소중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화 < 쇼생크 탈출> 에서 죄수는 모두 왼팔이 부러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왼팔과 서랍 속 잡동사니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앞으로 당신은 명품 < 아르마니 > 보다 더 값 비싼 < 얼마나 > 의 희망 목록을 보게 될 것이다. 시원한 맥주가 얼마나 달콤했는가, < 피가로의 결혼’> 이라는 음악은 얼마나 훌륭했는가, 코털 가위는 얼마나 유용했는가, 가려운 등을 긁을 수 있는 효자손은 또 얼마나...... 훌륭한 발명품인가.

 

이런 나열은 끝이 없다. 코카콜라, 얼큰한 교동 순대국, 남대문 갈치 조림, 종로3가 할머니 손칼국수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들은 이곳에 와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자유란 종로 3가 할머니 손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권리라고 말이다. 자유란 얼큰한 교동 순대국을, 코카콜라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여유이다.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 그 잘난 소설가 양반들이 자유를 너무 거창하게 설명해서 그렇지, 자유란 사실 서랍 속 잡동사니와 함께 사는 친구이다.

 

왼쪽 어깨가 부러지고 왼팔이 탈골된 적이 있다. 팔과 어깨를 고정시키느라 몸통을 석고로 고정시켰다. 그때 깨달았다. 세상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심지어 똥을 닦을 휴지를 접을 때에도 두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성 월간지 < 리빙 센스> 에 나오는 근사한 건물 내부의 멋진 풍경들은 전적으로 잡동사니를 안 보이도록 서랍 속에 가둔 덕분에 얻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정작 우리가 무인도에서 필요한 것은 근사한 대리석이나 최고급 커튼이 아니다. 잡동사니다.

 

 

 

 

 

 

 

 

 

 

 

 

쇼생크 탈출 > 맥주 마시는 장면.

 

 

스티븐 킹'은 종종 성경 속 예수'를 죄수에 비유하고는 한다. < 그린 마일 > 에서 무시무시한 아동 성폭행 살해범으로 나오는 흑인 JC ( 존 커피 ) 는 지져스 크라이스트'의 약자이다. 기적을 행한다는 측면에서 존 커피'는 예수의 은유이다. 그런가 하면 맥주 장면'은 물고기 한 마리로 기적을 행하는 < 오병이어 > 을 닮았다. 음식을 나눈다는 측면에서 이 장면은 기독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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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5-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영화관람전 화장실을 줄서 들어가는게 왕 싫어요.
梅가 떨어질 판국에 문앞의 그녀에게 코를 틀어막아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우리집 화장실에 자유가 뽀송거리고 있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30 15: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뜬금없이 웬 매화인가 했습니다. 문맥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저도 공중화장실 잘 못 씁니다. 참았다가 집에와서..ㅎㅎㅎㅎ

새벽 2013-05-3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쇼생크 연재를 읽으며 서서히 가닥을 잡던 얘길 밑에 답글에서 직접 해주셨네요.
저도 어제 오늘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 얘기라고 너무 리얼리즘에 집착했구나. 하고.
그러고 보면 주인공을 뺀 나머지 인물들이 참 느긋느긋한 편이었어요. 앤디는 자각을 거쳐 실천으로 가고..
더구나 스티븐 킹! 원작임을 생각할 때 리얼리즘보다는
우화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고 재밌는 감상법인 듯합니다.

그리고 이제.. 굳이 따로 허락 구하지 않아도 이 연재물은 다 모셔다 놓는 거 아시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30 22:01   좋아요 0 | URL
밑천이 다 되었습니다. 그 전에 써둔 글인데 정리 좀 할까하고 보았더니 요렇게 4,5개 빼고는 영 형편이 없네요. 다시 다듬어서 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쇼생크 보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는 겁니다. 영화 보기'에 실증을 내고는 했는데 새로운 재미를붙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