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를 웃긴 꽃 ㅣ 문학동네 시집 90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바다거북이'는 몸이 뒤집어지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왜냐하면 혼자 힘'으로 뒤집어진 몸을 다시 뒤집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등에 민둥산' 같은 갑옷 하나쯤을 짊어진 녀석'들이 그렇다. 뒤집어지면 곧 죽음이다. 그런데 뒤집으면 뒤집을수록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라는 장르다. 나는 간혹, 외로운 기러기 '라는 식의 시구/詩句 ' 를 보면 짜증이 확 난다. 언제부터 기러기는 항상 외로운 존재였'는지 묻고 싶다. 발정난 기러기. 술취한 기러기. 속이 쓰려 겔포스'를 먹는 기러기. 뭐. 이런 것은 없나?
발견의 결핍이고 상상의 빈곤'이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 외로운 기러기'에 한 마리'라는 시어'까지 덧붙인다면, 음... 나는 주저없이 시집'을 덮으리라. 외로운 기러기 한 마리'라니. 가장 웃기는 표현 중 하나는 비만 오면 장대 같은 비'란다. 아휴, 그렇게 빈곤하냐. 시란 사물'을 새롭게 보는 인식이다. 관찰과 발견'을 통해 죽은 일상 속에 쓰이는 언어'를 팔딱팔딱 숨쉬는 시어'로 건져올리는 작업'이 시 쓰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시인들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를 뒤집어 본다. 어떻게? 발라당. 까. 뒤집어서.
< 소를 웃긴 꽃 > 은 발상의 전환'이 무척 재미있는 시다. 시작'은 이렇다. 나주 들판에 소가 웃는다. 소가 웃어? 정말 소가 웃을 일이네. 시인은 이 상황'을 괴이/ 怪異'가 아니라 신이/神異'로 받아들인다. 소를 웃긴 것'은 발 밑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다. 오호라, 하늘하늘 피어난 꽃술'에 발바닥이 간지러웠던 거구나, 그렇구나 ? 그. 런. 데 " 그것만이 아니" 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 꽃이 소를 들어 올린 것" 을 발견한다. 어머.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 전환'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연약한 꽃'에서 시인은 소를 들어올리는 강한 힘'을 발견한다. 소'와 꽃'이 가지는 기존 이미지'를 서로 전이시킨 것이다. 소는 꽃보다 가볍고, 꽃은 소보다 힘이 쎄다. 왜 그랬을까? 답은 명쾌하다. 시인은 역할 바꾸기'를 통해서 더불어 삶, 공존'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한 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甲이 乙을 제압하고, 벤츠가 티코를 무시하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짓밟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닌 더불어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하는 삶이다. 꽃이 소를 들어 올릴 수도 있다는 거. 나도 최홍만'을 이길 수 있다는 거.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개길 수도 있다는 거. 솔직히, 나는 꽃이 소'를 들어 올렸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가 꽃을 짓밟지 않기 위해 발을 들어 올렸으리라. 배려. 약자에 대한 배려'가 공존이며 곧 평화이다. 이 시집, 참... 좋다. 띄띄빵빵하다. 인생이란 외로우니깐 솜사탕이 아니었던가 !
+
띄띄빵빵하다 : < 깨알오소리입말사전 > 에 의하면 기분이 좋아서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을 나타내는 형용사'라고 한다.
외로우니깐 솜사탕 : < 깨알오소리입말사전 > 에서는 " 외로우니깐 솜사탕 " 이란 뜻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 몫이다. 묶어서한말'은 열린 텍스트를 지향한다.
※ < 묶어서한말 > 은 관용어구를 풀어쓴 말이다. 참고로 섹스를 하는 모든 행위를 < 묶어서한몸 > 이라 풀어쓴다.
예 ) " 철수야, 묶어서한몸'이라는 묶어서한말, 참 예쁘지 않니 ! "
※ < 깻잎오소리입말사전 > 을 쓴 소율은 국립국어원이 정한 외래어표기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甲이 乙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권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가 예로 든 것이 바로 < 셰익스피어 > 다. 소율은 셰익스피어가 섹스피어'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한 후, 차라리 셰익스피어'라고 할 바에는 < 새싹 피어라 > 라고 표기할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 깻잎오소리입말사전 > 에서 셰익스피어'는 새싹피어라'로 표기한다.
예 ) " 철수야, 새싹피어라'가 쓴 햄릿 읽었니 ? "
가벼운 것 vs 무거운 것.
현재 < 별별 국어사전' > 을 집필 중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이 사실을 알랑가 몰라 ?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을 7년 전에 형설시공사'에서 출간한 적이 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출판사'라 그럴싸한 광고 한 번 한 적 없다. 좋은 매대'는커녕 서점 화장실 바로 옆 변두리 매대 끝에서 근근이 버티다가 그나마 출판사 창고에 불이 나서 형설시공사는 부도가 났다. 창고에 쌓인 재고'는 한순간에 사라졌어요. 팔린 책은 고작 37권이 전부였다.
설상가상 국립국어연구원'은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이 한글 문법을 파괴하여 언어 체계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들은 티브이'를 티븨'로 표기한 사례를 들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 곰곰생각하는발 ! 당신은 지금 한글을 목욕하고 있어 ! " 결국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할 말은 많다만 참는다. 눈물이, 아... 앞을 가린다. 딱 하나만 물어보자. 섹스피어 대신 셰익스피어'라고 표기하는 이유는 뭐냐 ? 티븨'는 안 되고, 셰익스피어는 되냐 ? 섹스피어라고 하기엔 쪽팔리니깐 어설프게 셰익스피어'가 된 것은 아니더냐 ?
하지만 나는 문법 체계를 혼란스럽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단어와 단어 사이에 맺는 상투적인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다. 지금은 이 사전을 다듬어서 다시 쓰고 있다. 출판 금지가 되었으니 같은 제목으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대신 < 깨알 오소리 입말 사전 > 으로 정했다. 몇몇 장은 추가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기로 하자. < 가벼운 것 > 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우리는 흔히 < 무거운 것 >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가벼운 것 > 의 반대말은 < 더 가벼운 것 > 이다. 비, 웃지 마라. 비(올 때) 웃으면 미친년 소리 듣는다.
반대말이란 무엇인가 ? 성질이 전혀 다른 속성으로 서로 적대적 관계인 상태를 의미한다. 물의 반대말이 불인 이유는 물은 차갑지만 불은 뜨겁기 때문이다. 불의 반대말이 물인 이유 또한 물은 불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 가벼운 것 > 의 반대말은 < 가벼운 것 > 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 소형차'인 < 티코 > 는 한때 한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그 많던 티코'는 어디로 간 것일까 ? 티코'가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유는 사실 이천 씨씨 중형 세단 때문이 아니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제압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티코의 적'은 마티스'였다. 가벼운 티코는 가벼운 마티스와 경쟁을 해서 진 것이다. 그러므로 티코의 반대말은 마티스'다.하지만 너무 서러워 마라. 티코는 페루에서 택시로 사용되고 있다. 잘... 나간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분명 속으로 웃으면서, 코 파면서, 잇힝 하면서, 축 늘어진 불알을 긁으면서, 내 글을 조롱할 것이다. " 엉터리 사전이군. 그러니깐 안 팔리지. 깔깔깔. " 하지만 그렇지 않다. 21세기 산업 경제는 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놈이 경쟁에서 이기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더 가벼운 놈이 무서운 놈이 되고, 더 무거운 놈이 별 볼 일 없는 루저'가 되는 신세가 된다. < 가벼워지는 세계 > 라는 책에서 다이앤 코앤은 이 사실을 지적한다. 무거운 컴퓨터'보다 가벼운 컴퓨터가 잘 팔린다. 그리고 중량이 1kg이 나가는 초경량 자전거는 10kg가 나가는 일반 자전거'보다 몇 십 배'나 비싸게 팔린다. 가벼울수록 상품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러니깐 가벼운 것의 적은 가벼운 것이다. 무거운 놈은 죽는다 !!!
같은 이유로 루이비통 가방이 비싼 이유는 품질 때문이 아니다. 루이비통이 파는 것은 크로커다일 거죽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이다. 루이비통의 무게는 명품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0g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가벼운 것의 반대말은 가벼운 것이 된다. 가벼운 놈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다 ! 그런데 우리는 티코를 타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중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위에서도 밝혔듯이 시대착오적인 근대적 발상이다. 옛날에는 크고 무거운 놈이 높은 가치를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가벼운 존재는 이제 더 이상 힘없는 乙이 아니다. 티코 몰고 다닌다고 무시하지 마라. 마티스'는 지금도 달린다. 그러니 몸집이 작다거나 키가 작다고 놀리지 마라. 중요한 것은 심장의 크기이다.
남양유업 사태'를 지켜보다가 문득 윤희상 시인의 < 소를 웃긴 꽃 > 이 생각났다. 이 시는 소와 꽃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이 세상 모든 꽃은 바닥이 고향'이다. 밑바닥, 땅바닥에서 자라는 존재가 꽃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꽃은 이 시대의 乙이다. 반면 소로 상징되는 주체는 꽃을 밝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보자면 甲이다. 하지만 시 속 풍경에서는 꽃이 소보다 힘이 세다. 乙은 甲을 번쩍 들어올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배려'가 숨어 있다. 소는 꽃을 짓밟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중심을 잃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을의 힘과 갑의 배려, 그것이 바로 상생이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甲의 사과'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갑을 시티'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렁이, 밟으면 꿈틀거린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밟고 나서 사과하면 늦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57301 : 깻잎오소리입말사전 구입은 여기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