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김동인이 쓴 < 붉은 산 > 에 나오는 삵을 닮았다. 삐쩍 마른 몸, 유난히 튀어나온 광대뼈, 찢어진 눈. 무엇보다 콧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콧털'은 삵이라는 캐릭터의 화룡점정'이었다. 그는 콧털을 뽑을지언정 다듬지는 않았다고 고집을 피웠다. 우리는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 미친개 >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브리샤'라는 변명도 있었다. 그가 몰고 다니는 차 브랜드가 브리샤'였는데 돈이 없었다기보다는 클래식 차 수집광다운 열정 때문에 똥차를 몰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가 가진 촌스러운 취향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만하다. )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지리 선생 이야기'다. 그는 주로 몽둥이 대신 주먹을 날렸다. 쉭, 쉭, 쉭. 주먹을 날릴 때마다 주먹에서는 바람 소리'가 났다. 하여튼, 아무튼, 이와 가튼 이유 때문에 지리 시간은 지옥이었다. 따분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전설적인 주먹왕인 지리 선생이 나의 고3 담임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는 복 지리 같은 새끼'라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지리학이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생각없이 읽게 된 피터 손더스의 < 도시와 사회이론 > 은 " 도시 " 란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작동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왜 옥탑이나 반지하'에서 살았을까 ? 이 동네 골목길은 재미있네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출근 거리가 먼 것일까 ? 이러한 공간과 지리에 대한 궁금증은 앙리 르페브르나 하비가 쓴 책이 답을 주고는 했다. 지루하기는커녕 존나 재미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맑스주의자 앙리 르페브르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 공간은 정치적이다 ! " 그렇다, 공간은 정치적이다.
■ http://myperu.blog.me/20148051329 : 선을 넘는다는 의미.
■ http://myperu.blog.me/20182271048 : 숨겨진 차원.
아파트 : 공간은 정치적이다.
아파트를 다른 말로 하면 공동 주택이다. 서구에서는 이 공동 주택'이라는 주거 공간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쯤으로 인식한다. 프랑스 사회학자가 강남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고 여기가 대한민국 할렘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을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들이 보기엔 신기한 것이다. 가난한 주거 공간 형태가 대한민국에서는 부의 상징이 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파트가 살기 좋다는 말은 뻥'이다.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울 자유가 없다. 이 정도 제약은 아무것도 아니다. 층간 소음은 거의 전설적이다. ( 아파트가 사생활을 지켜준다고 ? 웃기고 자빠졌다. )
윗층 아저씨는 장이 안 좋은지 설사만 하는 모양이더라. 그는 항상 아침 6시 47분에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 용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는 늘 6시 47분이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아줌마는 새벽 1시 24분에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 소음으로 보아서 엘지 동글이 모델이다. 제품 사양이 구형으로써 서민 보급판인 것을 보면 넉넉한 살림은 아닌 듯싶다. 반면 애들은 주의력 결핍'을 앓고 있을 것이다. 윗층이 조용할 때는 방구대장 뿡뿡이'를 할 때가 전부다. 그 녀석은 뿡뿡이 마니아다. 그 시간 외에는 천장에서 온종일 번개가 친다. 우르릉, 쾅, 쾅.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윗층 부부는 종종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고는 한다. 왜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는 것일까 ? 주의력 결핍인 그 녀석이 안방을 차지하고 막내 딸은 작은 방을 차지했으리라. 4월 11일 새벽 2시 30분에 그들은 안방 대신 화장실에서 섹스를 했다. 신음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깰까 봐 자주 물을 내린다. 신음소리 아와 아아아'는 물 내려가는 소리에 묻힌다. 쉬, 쉭, 쉭, 쉭. 주의력 결핍인 그 녀석에게 들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 엄마, 아빠 동시에 똥 싸는 중이야. 문 열지 마. 그러는 거 아니야. "
이런 공간이 사생활을 지켜주는 곳인가 ? 아파트는 사생활을 지켜주는 곳이 아니라 침해하는 공간이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살인 사건은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아랫층과 윗층은 진중권과 변희재만큼이나 서로 앙숙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윗층은 소음 가해자도 아니요, 아랫층 또한 까탈스러운 입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시체 놀이를 하지 않는 이상은 뛰어놀아야 한다. 그들은 죄 없다. 모두 피해자들이다. 이 책임은 아파트를 만든 건설사에 있다. 공공의 적은 아파트 건설사'다. 그리고 아파트 신화'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 탓이다.
군 제대 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6개월 동안 일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당신이 사는 천장은 온통 나무토막, 빵 봉지, 우유 펙, 스티로폼'이 섞인 칸막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시멘트 공구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공사 현장에 널부러진 온갖 것들을 다 채운 후 공구리'를 치기 때문이다. 농담이라고 ?! 맙소사.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곱게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노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신만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더 충격적인 장면도 본 적 있다. 인부들이 바빠서 현장에서 싼 똥을 치우지도 않고 공구리를 친 경험도 있다. 그러니깐... 음, 윗층과 아랫층 사이엔, 나와 당신 사이엔 누군가의 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세련된 주거 환경'이 되었을까 ?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건설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바로 아파트 건설이다. 땅 위에 집을 짓고, 그 집 위에 다시 집을 짓는다. 여기에는 아파트 생활'을 현대적인 문화 생활 이미지'로 세뇌시킨 국가 정책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박정희가 보기엔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아파트보다 효율적인 주거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은 개인보다는 집단 속일 때 안정을 찾는 민족이지 않던가 ? 그들은 < 집단 - 속 > 과 < 집 - 단속 > 을 착각한다. 그들은 아파트가 안전한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할렘을 의미했던 주거 공간이 대한민국에 수입되면서 고급화로 둔갑한 이유에는 국가와 짜고 친 건설업자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공로라기보다는 음모에 가깝지만 말이다. 하여튼... 눈물이 앞을 가린다.
대한민국은 이제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아파트는 1층부터 13층까지 모두 동일한 구조'이다. 그러니깐 아파트 입주자 또한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조지오웰의 < 1984 > 가 연상된다. 이처럼 한국인은 획일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촌스러운 주거 환경을 근사한 모던 라이프'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국가가 모던 라이프'라고 하면 모던 라이프'인 것이다. 딴지는 김어준에게 해야 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명심하자. 공간은 정치적이다. 아파트가 사람들기 살기 좋은 주거 형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이라고 믿는 맹신에는 국가 정책과 부동산 재벌 그리고 건설업자의 이해타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궁금하다면 르페브르와 하비'를 읽으면 답이 나온다. 흥미즨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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푄 : 표현을 압축시킨 신조어다. 내가 방금 만들었다. 제2의 아햏햏'을 기대해 본다.